하석미와 떠나는 무장애 여행지 "대만 가오슝-①"
휠체어로 떠나는 해외 대만 남부 예술 도시 산책
【에이블뉴스 하석미 칼럼니스트】7월, 본격적인 여름의 한가운데입니다. 무더위와 장맛비가 번갈아 드나드는 계절이지만, 짧은 휴식과 여행이 더욱 간절해지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바다와 도시, 예술과 자연이 한데 어우러진 특별한 여행지를 찾고 있다면, 대만의 제2의 도시 ‘가오슝(Kaohsiung)’을 추천합니다. 휠체어 사용인도 편하게 다닐 수 있는 구조와 다양한 볼거리, 그리고 따뜻한 감성이 깃든 공간들이 가득한 곳입니다.
늦은 밤 도착도 문제없어요
이번 여행은 늦은 밤 비행기를 타고 떠났습니다. 새벽에 도착하는 일정이라 시내 이동이 부담스러웠는데, 공항에서 불과 1.2km 떨어진 인터내셔널 플라자 호텔에서 하룻밤을 머물며 무리 없이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휠체어 접근성도 좋고, 체크인도 수월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공항으로 다시 가 가오슝 MRT를 이용해 시내로 들어갔습니다. 엘리베이터와 휠체어 전용 통로가 잘 갖춰져 있고, 교통비도 저렴해 부담 없이 이동할 수 있습니다.
낡은 창고가 예술로 변한 보얼 예술특구
첫 목적지는 보얼 예술특구(Pier-2 Art Center)였습니다. 공장과 창고였던 공간이 대규모 예술지구로 탈바꿈한 곳이죠. 벽화와 조형물, 창고형 전시장, 카페, 편집숍 등이 모여 있어 골목을 걷는 것만으로도 전시를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벽면마다 펼쳐진 입체 벽화, 물탱크까지 예술로 탈바꿈한 풍경은 사진 찍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남성 기능공과 여성 어부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상징처럼 서 있고, 곳곳에 앉거나 쉬기 좋은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 휠체어 이용자도 불편 없이 즐길 수 있었습니다.
하마싱 철도 문화원구 '철도 위에 핀 문화'
보얼 예술특구 근처에는 하마싱 철도 문화원구가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해안철도로 개발됐지만 전쟁 중 파괴되고, 이후 녹지와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곳입니다. 미니 철로와 기차, 다양한 예술 조형물들이 설치돼 있어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즐길 수 있습니다.
기차는 어린이용으로만 보이지만 실제로 어른들도 함께 타고 즐기며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휠체어 접근도 용이한 평지 구조라 천천히 산책하며 여유를 느끼기에 좋습니다.
검은 모래의 해변, 치진섬
가오슝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여행지, 바로 치진섬(Cijin Island)입니다. 본토와 떨어진 이 작은 섬은 페리로 단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으며, 장애인과 동반인은 50%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있는데, 장애인 할인에 대해 꼭 말을 해야 할인을 해줍니다.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함께 탑승하는 페리의 독특한 풍경은 그 자체로도 색다른 재미를 줍니다.
선착장에 내리면 고풍스러운 붉은 벽돌 터미널과 노란 택시들이 먼저 여행자를 반깁니다. 골목길을 따라 들어서면 신선한 해산물과 길거리 음식들이 줄지어 있고, 몇 년 전 이곳에서 처음 마셨던 버블티 가게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처음 그 맛에 반해 이후로 종종 떠올리곤 했는데요. 이번에도 변함없이 같은 자리에 있는 그 가게를 발견하고 너무 반가웠습니다. 버블티 한 잔을 손에 들고,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천천히 음미했습니다. 여전히 그 맛, 한결같이 쫀득한 타피오카와 부드러운 밀크티는 시간을 거슬러 나를 예전의 여름으로 데려다주는 듯했죠.
그 골목길을 지나 쭉 가다 보면 드디어 치진섬의 해수욕장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다른 해변과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모래 입자가 아주 고우면서도 검은빛을 띠는 특유의 신비로운 분위기가 인상적입니다. 그 부드러운 모래 위로는 맨발의 사람들이 거닐고, 해변 가장자리에는 야자수가 줄지어 늘어서 있어 이국적인 휴양지의 정취를 더합니다.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사람들은 자유롭게 수영을 즐기거나 보드를 들고 파도를 타는 서퍼들의 모습으로 해변은 생동감으로 가득했습니다. 나는 모래밭 안쪽까지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다행히 해변 옆으로 길게 이어진 나무 데크길이 잘 마련되어 있어, 휠체어를 타고도 바닷바람을 맞으며 여유롭게 바다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 데크길 위로는 커플 자전거들이 여유롭게 달리고 있었고, 나도 그들과 나란히 휠체어를 타고 천천히 움직였습니다. 덜컹임 없는 부드러운 길 위에서 자유롭게 바다와 어깨를 나란히 한순간, 그 무엇보다 특별한 여름의 한 장면이 되었답니다.
치진섬 속의 시원한 쉼표, 치진터널
치진섬을 여행하다 보면 무더운 햇살 아래 걷다가 문득 그늘이 간절해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강한 햇볕과 높은 습도, 여름의 열기는 잠시만 서 있어도 금세 땀이 맺히게 하죠. 그럴 때 마치 비밀 통로처럼 나타나는 곳이 있으니, 바로 치진터널(Cijin Tunnel)입니다.
치진터널은 원래 군사용 방공 터널로 사용되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여행자들을 위한 시원한 피서처이자 산책길로 새롭게 단장되었습니다. 터널 입구에 다가서자, 안에서부터 불어오는 서늘한 기운에 발걸음이 저절로 빨라졌습니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마치 에어컨을 켠 듯한 시원한 공기가 온몸을 감싸며 여름의 열기를 단숨에 씻어내 줍니다. 터널 내부는 예술적 꾸며 놨습니다.
천천히 걷거나 밀고 가다 보면, 어느새 출구가 가까워지는데 예전에 갔을 때 여러명의 도움을 받아서 나갔던 기억에 주춤했으나 새롭게 단장되어 불편, 없이 갈 수 있었습니다. 눈앞엔 장엄한 절벽과 푸른 바다가 펼쳐집니다. 출구 너머로 이어지는 절벽 산책길은 바위 사이로 부딪히는 파도 소리와 함께 또 다른 세계를 보여줍니다. 탁 트인 시야,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 그 위로 부서지는 햇살….
말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장관이 바로 그 앞에서 펼쳐집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절벽 위에서 잠시 멈춰 서 있는 그 순간, 더위도, 피로도, 복잡한 생각도 모두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치진터널은 숨을 고르며 바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가오슝의 여름을 한입에 '해지빙 망고빙수'
치진섬을 나와 다시 가오슝 시내로 돌아온 오후, 지친 몸과 입 안을 시원하게 적셔줄 디저트를 찾던 중 현지인 추천 맛집 ‘해지빙(海之冰)’으로 향했습니다. 노란 외벽에 귀여운 캐릭터가 반기는 건물. 멀리서도 한눈에 띄는 이 빙수 가게는 가오슝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곳입니다. 가게 앞에 도착하니 실내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에어컨도 없는 탓에 후끈한 공기가 가득했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고 웃으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휠체어로 실내로 들어가기에는 다소 좁고 번잡했지만, 다행히 인도에 마련된 테이블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또 하나의 특별한 경험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낯선 사람들과 테이블을 함께 나누어 앉는 문화였죠. 누군가 먼저 먹고 일어난 자리에 앉도록 했습니다. 그 자리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우린 서로 눈인사를 나누며 묵묵히 빙수를 나누는 그 시간은, 언어와 국적은 다르지만, 따뜻한 온기가 오가는 순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지만, 곧 이 작은 테이블 위의 눈웃음이 오가며 여행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진짜 매력임을 깨달았습니다.
배가 불러 가장 작은 망고빙수를 주문했지만, 양은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유리그릇 가득 담긴 노란 망고 조각들이 촤르르 뿌려진 연유와 함께 눈앞에 놓이자, 그야말로“가오슝의 여름이 그릇에 담겨 있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숟가락을 넣어 한입 떠먹는 순간, 망고의 과즙이 입안 가득 퍼지며“아, 이 맛이야!”라는 탄성이 절로 터졌습니다. 달콤함, 부드러움, 그리고 시원함까지. 열대 과일의 풍미를 그대로 살린 맛은 잊고 있던 여름의 행복을 다시 떠올리게 했습니다.
빙수를 다 먹고 돌아서는 길, 주변 거리 곳곳에서는 실제 망고 나무들이 주렁주렁 열매를 맺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초록빛에서 노랗게 익어가는 망고가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비닐봉투에 싸여 매달려 있었고, 길을 지나는 사람들 역시 그 풍경을 카메라에 담느라 분주했습니다. 가오슝의 여름은 단순한 계절이 아닌, 망고로 오감이 열리는 시간이었습니다. 길에서 망고를 보고, 향기를 맡고, 맛보며, 그리고 모르는 사람과 나란히 앉아 함께 즐기며, 그 순간만큼은 나 역시 가오슝의 사람처럼 여름을 맞이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무리하며
이번 가오슝 여행은 단순한 관광을 넘어 휠체어 사용자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무장애 여정이었습니다. 뜨거운 햇살과 시원한 바람, 그리고 감동적인 순간들이 어우러진 여름 여행. 빠르게 흘러가는 계절 속에서 나만의 속도로 걸을 수 있었기에 더 특별했던 시간~ 천천히, 그러나 깊게. 가오슝은 그런 여행이 가능한 도시였습니다.
대만 가오슝 여행 준비
항공권 : 항공권 예약 후 예약한 항공사에 휠체어 접수 및 휠체어 서비스 신청 /항공사마다 요청 사항 다름으로 본인이 확인 필요
숙박 예약(장애인 객실) : 카오슝 인터내셔널 플라자 호텔 (Kaohsiung International Plaza Hotel)No.436, Daye N. Rd. 가오슝 대만 81249(문의사항에 장애인객실 요함으로 작성)
준비 물품 : 여권, 전동휠체어 배터리 관련 영문서류, 튜브, 퓨즈, 충전기(해외에서 작동되는지 업체에 미리 확인 필요), 멀티플러그, 멀티선, 핸드폰 보조배터리, 우비, 우산, 선크림, 모자, 선글라스
준비할 앱 : 통역 앱, 가오슝 지하철 노선표, 구글 지도 앱
MRT 지하철: 휠체어 승차 가능한 엘리베이터 완비, 낮은 턱 구조로 비교적 수월한 이동 가능
보얼 예술특구: 대부분 평지, 진입로 일부 요철 있음
하마싱 철도 문화원구: 잔디 구간 외 평지로 이동 용이
치진섬: 페리 진입 가능, 검은모래해변 공영 장애인 화장실
망고빙수 카페: 접근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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