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석미와 떠나는 무장애 여행지 "신륵사, 여주 출렁다리"

휠체어로 떠나는 여행이야기 "여주여행"

2025-05-30     칼럼니스트 하석미
강 건너에서 바라본 신륵사의 평화로운 풍경. ©하석미

5월의 끝자락, 모두의 발걸음이 머무는 곳

【에이블뉴스 하석미 칼럼니스트】 5월은 유난히 특별한 달이다. 봄이 가장 깊어지는 시기이자,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같은 큰 행사가 줄줄이 이어지는 달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이맘때면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바깥나들이를 꿈꾸며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여행을 계획하곤 한다.

요즘은 그 여행의 기준도 달라졌다. 단지 풍경이 좋거나 음식이 맛있는 곳을 넘어서, 아이와 함께 가도, 부모님과 동행해도, 그리고 휠체어를 타고 있어도 불편함 없이 다녀올 수 있는 곳, 바로 무장애 여행지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다녀온 경기도 여주는 오랜 역사와 자연의 품, 그리고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길을 갖춘 의미 있는 여행지였다.

여정의 시작, 마음을 훔치는 골목

배를 채우고 신륵사로 향하는 길목, 발걸음을 붙잡는 골목이 있다. 한 걸음 들어서는 순간 눈이 먼저 바빠진다. 정겨운 고무신, 대나무로 만든 제품들, 유기그릇, 천연석 팔찌, 수공예 인형들까지. 가게 안에는 시간이 머무는 듯한 물건들이 빼곡히 진열되어 있었다

아기자기한 소품의 세계~. ©하석미

특히 나를 사로잡은 건 바로 여주에서 만든 유기 제품들이다.

반짝이는 유기 수저세트는 오래 두고두고 쓰고 싶을 만큼 묵직한 품격이 느껴져 결국 수저 세트 하나를 구매했다. 솔직히 말하자면다 사고 싶은 마음 꾹 참고 돌아섰습니다.

이 골목, 그냥 지나치면 후회할 뻔했네.” 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정감 있다. 이렇게 마음을 살랑거리게 하는 골목을 지나면, 어느새 천천히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여주의 고찰, 신륵사가 기다리고 있다.

강을 건너다 영혼을 건지다신륵사

신륵사는 고려 우왕 때 왕실 원찰로 지정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이름부터 참 의미가 깊다. ‘신륵(神勒)’강을 건너다 영혼을 건졌다는 뜻을 담고 있는데, 실제로 남한강을 굽어보며 자리한 사찰의 위치와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신륵사는 단순히 오래된 절 하나가 아니었다. 이곳은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걸어야만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말 그대로 풍경의 박물관같은 공간이다.

사찰의 마당을 품은 나무 아래, 토끼와 아이들. ©하석미

신륵사 경내로 들어서자마자, 예상치 못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고즈넉한 절의 분위기 속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건 다름 아닌 토끼들이었다. 넓은 잔디밭 위를 토끼들이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이들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다가가도 놀라 도망치는 법이 없다. 오히려 풀 좀 줄래?” 하고 말하듯 여유롭게 풀을 뜯거나, 느릿느릿 몸을 돌리며 사람들과 공간을 공유한다.

사찰의 정적과 자연,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작은 생명들의 존재는 예상치 못한 감동을 안겨줬다. 엄숙함이 감도는 사찰에서 토끼가 주는 생기와 따뜻함은 묘한 대비를 이루며, 이곳을 찾은 누구에게든 미소 짓게 했다. 어른도, 아이도, 잠시 멈춰서 카메라를 꺼내 들고, 웃으며 그 순간을 담았다. 신륵사는 단지 역사가 깊은 절만이 아니다. 시간과 생명이 공존하는 공간이며, 우리가 잊고 있던 함께 살아가는 풍경을 일깨워 주었다.

길 따라 들어가면 가장 먼저 나를 맞이한 건 다름 아닌 나무들이었다. 600년을 넘긴 은행나무와 향나무 보호수들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수백 년의 바람과 비, 계절의 순환을 묵묵히 견뎌온 나무들 앞에 서 있으니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잎사귀 하나하나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묘한 경건함이 밀려왔다. 마치 이 나무들이 사찰의 역사와 함께 숨 쉬어온 또 하나의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화려한 장식도, 큰 소리도 없지만, 이곳에서는 자연 그 자체가 가장 깊은 울림을 전해주고 있었다. 신륵사는 그래서 걷는 사찰이고, ‘머무는 사찰이며, 무엇보다 느끼는 사찰이지 않을까 싶다.

나무 사이로 고요히 우뚝 선 신륵사 다층전탑. ©하석미

보호수 옆으로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보물로 지정된 다층전탑이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유일한 고려시대 벽돌탑으로, 벽돌을 하나하나 구워 쌓아 올린 구조라고 한다. 그 독특한 형태와 깊은 역사성 때문에 예전에는 신륵사를 벽절(甓寺)’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탑은 계단식 지대 위에 있어 가까이 다가가긴 어렵지만, 멀리서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그 웅장함은 충분히 느껴진다.

사찰 내부로 들어가면 곳곳에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극락보전과 오층석탑, 정돈된 전각과 단청 뒤뜰로 가면 붉은 작약이 절 마당을 더욱 생기 있게 만들어 준다.

무엇보다 이 모든 장소를 휠체어를 타고도 어렵지 않게 둘러볼 수 있었다는 것이 다. 사찰 입구부터 내부까지 경사로가 잘 연결되어 있었고, 길도 비교적 평탄해 천천히 이동하며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이곳이 모두에게 열린 사찰이라는 말이 실감 났다.

고즈넉한 극락보전과 만개한 작약꽃의 조화. ©하석미
전동휠체어로 만나는 극락보전, 열린 사찰의 참모습. ©하석미
남한강을 가로지르는 모두의 길, 여주 출렁다리. ©하석미

모두의 발걸음을 허락한 다리, 여주 출렁다리

신륵사에서 내려와 강변 쪽으로 이동하면, 이번 여주의 새로운 명소가 등장한다. 바로 여주 남한강 출렁다리다. 20255월에 막 개통한 이 다리는 길이도 길지만, 그 설계 자체가 인상 깊다. 휠체어 사용자도 안전하게 다리 위로 접근할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와 경사로가 완비되어 있다.

출렁다리 위는 바닥이 철망 구조로 되어 있어 남한강이 그대로 내려다보인다. 처음엔 조금 아찔하지만,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새 그 스릴이 설렘으로 바뀌고, 출렁이는 발걸음마저 여행의 일부가 된다. 휠체어를 타고도 다리 한가운데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도 감동이었다.

다른 지역에서 출렁다리를 휠체어로 건너지 못해 아쉬웠었던 기억이 있었는데, 여주는 달랐다. 모두를 위한 설계가 실현된 공간이었다. 다리 끝에는 넓은 경사길이 이어지는데, 이곳 역시 안전하게 설계되어 있어 휠체어 사용자도 무리 없이 내려갈 수 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조금만 이동하면, 남한강을 끼고 조성된 강변 산책로가 펼쳐진다.

산책 허용이라는 커다란 글자가 마치 마음까지 열어주는 듯했다. 바람을 맞으며 강 따라 천천히 걷는 이 길은, 어떤 말보다도 여행이라는 단어를 실감하게 해줬다.

황포돛배, 그리고 여주 한글 시장까지

설렘을 안고 도착한 황포돛배 선착장~

전통과 운치를 담은 황포돛배 선착장.©하석미

남한강을 따라 실제로 운행되던 전통 돛배를 타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전동휠체어로는 탑승이 어려웠다.

하지만 선착장 너머로 바라본 신륵사의 풍경은 그 자체로 위로가 되었다. 강물 너머, 절집과 전탑, 정자가 어우러진 장면은 마치 한 폭의 수묵화 같았고, 마음은 오히려 더 차분해졌다.

500년 장터의 역사를 품은 여주 한글시장 입구. ©하석미

이후 도착한 여주 한글시장은 장날이 아니어서 다소 한산했지만, 바닥에 새겨진 한글 문장들과 오래된 시장의 골목골목이 주는 정서는 묘한 울림을 남겼다. 북적이는 활기가 없어도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시간의 흔적들은 여전히 여행자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열린 길에서, 모두의 여행을 꿈꾸다

신륵사의 고요함, 토끼의 여유, 보호수의 위엄, 출렁다리의 짜릿함, 강변의 평온함까지. 여주에서의 하루는 마치 마음의 풍경 하나하나를 천천히 지나쳐 온 듯한 여정이었다. 무장애 여행은 특별한 여행이 아니다. 그저 누구나 갈 수 있어야 하는 여행일 뿐이다.

그리고 여주는 그 소박하고도 당연한 꿈을 이미 현실로 만들어놓은 도시였다. 이번 주말, 여행을 고민하고 있다면 여주로 발걸음을 옮겨보는 건 어떨까. 바퀴가 있어도, 연세가 많아도, 아이가 있어도 편안한 곳. 모두에게 열린 길이 있는 여행지, 여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장애 여행을 위한 편의시설

장애인 화장실: 신륵사 입구 근처에 마련되어 있으며, 비교적 이용이 용이하다.

식당: 신륵사, 출렁다리 가기 전 천서방고깃간(경기 여주시 신륵사길 6-25) 주차장 쪽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0507-1480-3483

신륵사 정보

주소: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길 73

문의: 031-885-2505

신륵사 , 여주 출렁 다리 가는 길 대중교통 이용 방법

수도권 전철 경강선 여주역 하차 후, 경기 광역콜택시 1666-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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