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시설이 무서운 진짜 이유 아시나요
장애인시설, 그 지워지지 않는 기생계층의 각인
그곳은 사육당하기 적합하도록 길들여지는 곳
연극은 현실을 능가하지 못 한다. 요즘 현실과 동떨어지고 저질인 TV 드라마들이 막장 드라마라고 일컬어지며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아무리 막장 드라마라도 현실을 능가할 수 있을까?
90년대 초 특수학교를 졸업한 후, 딱히 갈 곳이 없었던 나는 생활시설(이하 시설)을 찾고 있었다. 집에 있어봐야 부모 형제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살아야 하는 삶이 싫었기에…. 다른 동창들처럼 기술 교육을 받는다는 미명하에 재활시설이라도 전전할 수조차 없는 중증장애인이었던 나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생활시설에의 입소가 20대 초반에 인생을 포기하는 것이란 것을 어렴풋이나마 인지하고 있었기에 그것을 부정하고 합리화시키기 위한 온갖 이유들을 창작하느라 뇌세포를 혹사시켜야만 했다. 그러는 것이 가족들과 함께 사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할 수 있으리라는 순진한 어리석음 때문에 말이다.
내가 찾아들어간 시설은 4층의 별로 크지 않은 건물이었으며 옥상에 십자가 탑이 올려져 있었다. 맨 위 층은 원장(목사)과 가족들이 생활하는 공간이었으며 3층은 예배당, 1, 2층은 30~50명가량의 남녀 장애인들이 일고여덟 개의 방에 7~9명씩 나뉘어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 곳에서는 새벽 5시에 거의 강제적으로 전 원생을 깨워서 새벽 예배를 드리게 했다.
그 시설에는 원장 가족들 외에 조카 몇 명과 무연고의 비장애인 몇 명도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원장은 하반신 소아마비 장애인이었지만 그 외에는 모두 비장애인이었으며 거의 경제활동이 없는 중·고등학생들이었다.
3층이 교회이긴 하나 등록된 외부의 교인은 서너 명에 불과 했으며 그 시설의 목사(원장)가 다른 교회나 집회에 가서 간증이나 설교를 하고 받아 오는 사례금이 수입의 전부였다. 그 시설을 유지하기에는 턱~~~도 없는 금액이었다.
시설유지비의 거의 모두를 장애인들 앞으로 나오는 보조금과 후원자들의 후원금으로 충당하고 있었다.
나도 입소하자 곧바로 후원자를 연결 받았으니 그 후원자가 내 앞으로도 후원금을 얼마정도씩 보내 주었을 것이나 나는 단 1원도 받은 적이 없다. 내가 그 시설을 나온 후에도 상당 기간 동안 내 이름으로 후원금이 나왔을 것이고 그 돈은 그들이 모두 받아 쳐먹었으리라.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에게 빌붙어서 사는 꼴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장애인들을 이용해서 잘 먹고 잘 살고 할 짓 다 하면서 정작 장애인당사자들은 헐벗고 배고파하는 현실이었다.
창고에 쌀이 몇 부대나 쌓여 있었는데도 원생들의 점심은 언제나 기증 받아온 라면이었으며 가끔 죽어도 밥이 먹기 싫은 날을 제외하곤 비장애인들이 함께 식사한 적은 거의 없었다. 도대체 어디서 그렇게 많은 공짜 라면을 받아 오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이다.
이것은 내가 그 곳에 있었던 짧은 동안에 일어났던 작은 에피소드의 하나이다. 그 날은 설을 지낸지 얼마 안 된 시기였다. 어느 교회에서 떡국을 만들어 왔다. 오후 3~4시경에 1층 식당에서 나누어 주었는데 넉넉하게 돌아가지도 않았고 작은 대접으로 반 대접 정도 먹었을 뿐이었다. 당연히 간식 정도로 생각했다.
떡국을 선물한 그 교회 사람들은 흐뭇한 마음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봉사를 했다는 뿌듯함을 가슴에 품고…. 불쌍한 장애인들에게 맛있는 떡국을 대접했으니 하나님 아버지께 복 받을 것이라는 믿음과 기쁨을 가지고 말이다. 하지만 (비록 고의로 한 짓은 아니었지만) 자신들이 한 짓거리로 인해 우리가 얼마나 굶주리고 배고팠는지 짐작도 못 했을 것이다. 누가 누구에게 봉사를 한 것일까?
그날 저녁 식사는 없었다. 초저녁 쯤 되니 배가 고파 환장할 것 같았다. 생각해 보라! 돌도 소화시킨다는 20대 초반의 한창 나이에 점심에 푹 퍼진 라면 한 그릇 먹고 오후 3~4시경에 멀건 떡국 반 대접 정도 먹은 후에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면 어떨지를….
가죽 구두라도 있었으면 뜯어 먹었을 것이다. 원생 중에 경증장애인이 하나 있었는데 워낙에 경증인데다 제법 똑똑하다고 인정받아 외출이 -비교적- 자유로운 거의 유일한 장애인 원생이었다. 돈을 주고 먹을 것 좀 사오라고 시켰더니 싸구려 순대를 사왔다. 다른 원생들에게는 미안 했지만 몰래 먹어야 했다. 하도 배가 고파선지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한 참에 다 먹어 치웠다.
교도소에서 겨울철 저녁밥을 5시 반경에 배식했다고 인권유린이라며 재소자들이 농성을 한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있었다. 장애인들은 범죄자들보다도 못한 존재인가?
그 곳에 오래 있었던 원생들은 심심찮게 겪는 일이라고 했다. 당시 PC 보급이 많지 않았던 시절이었는데 나는 학교에서 쓰던 PC를 거기에 가져 갔었다. 그런데 원장이 어느 기업에 세탁기의 무상 기증을 요청하는 문서를 워드로 쳐서 프린터로 뽑아 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해 주긴 했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식당의 한 쪽에 세탁기가 몇 대나 있었으며 빨래도 모아 두었다가 한꺼번에 다른 교회에서 온 봉사자들이 손으로 거의 다 해 주었기 때문에 세탁기가 별로 필요치 않았다. 그런데 왜 그런 요청서를 프린트해 달라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시설이란 곳이 어떤 곳이란 걸 뼈저리게 알 수 있었던 나는 얼마 후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 곳을 나온 지 몇 달 후 우연히 라디오 튜너를 돌리다가 기독교 계열의 모방송에서 그 목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불쌍한 장애인을 위해 얼마나 헌신하고 고생하고 있으며 자신의 인생 전부를 장애인들을 위해 살겠다고 했다. 거기에 맞장구 쳐주는 사회자에 의해 그는 세상의 소금이며 장애인들을 위해 희생, 봉사하는 숭고한 하나님의 종이 되었으며 방송의 마지막에 재정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말과 함께 후원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그 목사는 현재 시설을 3개나 거느린 복지재단의 이사장으로 크게 성공하였다. 또한 가엾은 장애인들의 아버지로 사회의 존경도 받고 있다. 그가 믿는 하나님의 축복인가 보다. 이런 막장 현실을 능가하는 드라마가 있으려나??? ㅎㅎㅎㅎㅎㅎㅎ
그런데 내가 그 곳에서 참으로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은 그런 현실에 대해 항거는 고사하고 불평하는 원생도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지적장애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이었지만 소수이긴 해도 비지적장애인들도 있었는데 배 고프다는 등의 상황에 대한 불평을 얘기해도 원장이나 시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원생은 거의 없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시설에 대한 욕을 했다간 나만 나쁜 장애인이 될 것 같아서 나 역시 아무 소리 못 하고 부글부글 끓는 속만 억지로 짓누르고 있었다. 아마도 그 분들은 길들여졌던 것이다. 나도 그 곳에 조금 더 있었더라면 그처럼 착하고 순한 장애인으로 길들여졌을 것이다. 현재도 많은 장애인들이 자의로든 타의로든 시설을 선택하는 것을 볼 때마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 분들이 보기에 시설은 같은 처지의 장애인이 모여서 오순도순 사는 천국처럼 보일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높은 인격의 시설장과 헌신적인 직원들이 있고 아무리 좋은 편의 시설을 갖추었다하더라도 시설은 분리와 배제를 정당화시켜 놓은 요새일 뿐이다.
시설의 문제점은 인권 유린, 시설장의 치부 등 많은 문제점이 말해 지고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시설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이 사육 당하기 적합하도록 길들여진다는 것, 또 다르게 표현하면 본능만 남도록 길들여진다는 것이다.
시설에서는 욕망이나 욕구는 허락되지 않으며 제어 당한 욕망이나 욕구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밑바닥의 쌓여갈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무조건적인 집착으로 표현된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우물 안의 모든 것에 집착 한다. 그것이 어떤 가치를 지녔느냐는 중요치 않다. 집착 할 대상이 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뼈다귀 하나 던져주면 그 걸 차지하기 위해 서로 할퀴고 싸우는, 그리고 던져주는 사람에게 꼬리치는 강아지처럼, 몽둥이로 얻어터지고 발길로 걷어차여도 아파서 깨갱거릴 뿐 고개를 들지도, 바라보지도, 최소한의 저항조차 못하는 개새끼처럼…. 아무리 깨지고 터지고 학대당해도 주인을 떠나지 못 하고 주인에게 버림 받을까봐 두려워하는 애완견처럼….대뇌가 퇴화되어 오직 본능만 남아 꿈틀대는, 어둠에 적응하여 거대한 눈만 휘번득거리는 하수구에 살고 있는 하등동물처럼 길들여진다는 것이다. 똑똑한 인간이라면 저항의 흉내를 내겠지만 서서히 또 하나의 복녀(소설 감자의 주인공)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을 한정된 공간에 분리시켜 놓을 때 발생하는 필연적인 결과일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국가에서 이런 현실을 - 당사자의 모습이 다르다는 이유로, 소수자란 이유로 - 애써 외면하고 방치, 은폐해 놓고 그것을 ‘정의’라고 인정해버린다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TV 화면 속 드라마가 아니라 문만 열면 보여지는 현실이라면 어찌 해야 되나???
*이 글은 새날동대문장애인자립생활센터 교육홍보팀장 박창우님이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