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시대에 산다는 건…

2003-06-29     방귀희

차라리 비가 죽죽 쏟아지면 좋으련만

잔뜩 찌프리고 있네

눅눅한 바람이 축축하게 가슴을 적시고

엄만 어때?

이런 날엔 그놈의 신경통이 엄마를 못살게 굴었었는데

육신의 옷 훌훌 벗어던졌으니까

이제 신경통 따윈 걱정 없네

잘 됐다

조금 전까지 음악 들었어

솟대문학 광고 협찬 공문 보내는 일 하느라고

나중에 하려고 하면 꼭 못하게 돼서

원고보다 앞서 하기로 했거든

원고는 밤을 새워서 라도 하는데

다른 일은 그렇게 악착 같이 안하게 되잖아

내일 들어갈 원고 쓰려고 컴퓨터를 열었는데

갑짜기 일이 하기 싫은 거야

내가 많이 지쳤나봐

요즘 내일은 푸른 하늘 일로 하루에도 수없이 똑같은 말을 반복하지

늘 조마 조마 가슴 졸이고

누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탐색하고

그러다 인간에 대해 실망을 느끼고

다 때려치울까 두 주먹 불끈 쥐고

만약 장애가 없었다면

아냐 그건 바라지도 않어

만약 일을 아예 하지 않았더라면

더 마음 편했을 것 같아

좁은 세상에서 작은 일에 만족하며 살았을테니까

무기도 들 수 없는 몸으로

전쟁터에 나와서

동지도 없이 혼자 싸우고 있으니

정말 한심해

내일은 푸른 하늘마저 죽을래나봐

아직 엄마의 죽음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데

내일은 푸른 하늘을 kbs 제1라디오에서 빼는 건

살인 행위야

나한테도 책임이 있어

죽이는 걸 알고 뻔히 있고

그 현장에 있으니까

난 지금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기분이야

불확실한 시대에 산다는 건 고문이네

엄마, 엄마가 도와줘

장애인의 입과 귀를 막아버리는 행위를

그대로 보고 있어서는 안돼

아직도 장애인계는 잠자고 있어

깨워도 일어날 생각을 안해

불이 나서 활활 타고 있는데도

아까은 재산이 재가 되고 있는데도

잠을 깨우는 순서를 놓고

논의 중이래

참 우습지

불확실한 시대의 음모가

여러 사람들의 목을 조이고 있는데도

계속 논의 중이래

참 어리석지

아마 사람들이 나를 보고도

우스울꺼야

장애인을 위한답시고 바보짓을 하고 있으니까

차라리 일을 하지 말껄 그랬어

그랬으면 지금보다는 마음 편했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