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에서 듣게 된 비장애 자매들의 속마음
비장애인 형제자매, 신용카드 아닌 퇴직연금과 같은 마음으로 봐야
몇 달 전 징검다리 연휴에 급히 기차를 타고 이동해야 할 때가 있었다. 서둘러 코레일톡 어플을 살펴봤다. 결과는 모든 열차 매진, 다행히 출발 세 시간 전에 극적으로 자유석을 발견해 표를 구입했지만 아직 앉아서 목적지에 갈 것이라는 확신을 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자리가 있으면 좌석으로 가고, 없으면 입석으로 가야 하는 것이 자유석이기 때문이었다.
분주한 마음으로 서울역 교통약자 전용 창구에 도착해 장애인 도우미 서비스 이용을 요청하니, 연휴라 도우미 서비스를 이용하는 장애인 승객이 많다며 조금 일찍 열차에 승차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렇게 열차에 오르고 보니 남은 자리는 객실 밖 양쪽 끝에 설치된 간의의자에 앉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며 그것도 감사해야 할 정도였다.
그렇게 열차가 출발하고 두 시간 정도를 달려 객실 안에 입석 승객만 없어질 무렵, 누군가가 전화통화를 하며 객실 출입문을 열고 나왔다. 고속열차를 탈 때마다 “긴 통화는 객실 밖을 이용해 주시기 바란다”는 안내방송을 들었던 터라 무심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이야기하는 내용에 자연적으로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내가 학교에서 끝나고 집에 오면 엄마는 그놈 고쳐보겠다고 병원 가서 집에 없고, 언니 오기 전까지 나는 늘 혼자였어. 남들은 엄마가 학교 공부는 잘하고 있는지 걱정도 해주고 그랬는데, 우리는 그런 얘기 한번 들어본 적 없잖아.”
어떤 상황인지 알 것 같았다. 장애가 있는 남동생의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간 어머니, 그리고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혼자 있어야 했던 두 자매가 속에 쌓인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것 같았다. 그리고 통화는 계속 이어졌다.
“언니. 내가 왜 갑자기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 알아? 공부라도 잘해서 반에서 1등 하면 그땐 엄마가 나한테 관심 한번 주려나 싶어서 그랬어. 엄마 관심 한번 받아보고 싶어서. 근데 엄마는 내 성적에는 관심이 없더라고 그져 00이 걱정밖에 없었어.”
장애를 가진 남동생도 그 남동생의 누나로 지냈던 두 자매도 모두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람들이었다. 다시 말해서 아들 못지않게 어머니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었던 두 딸이었던 것이다.
“내가 엄마한테 서운했던 게, 내가 늦게 일어나서 00이보다 먼저 급하게 준비물을 챙기거나 하면 엄마가 아침 준비하느라고 바빠서 동생을 못 챙기면 니가 챙겨야 할 것 아니냐고 혼냈어. 넌 왜 그렇게 이기적이냐고 말야. 너는 빨리빨리 움직일 수 있지만 00이는 그게 잘 안되니 당연히 도와줘야 하는데 왜 네 것만 먼저 챙기냐고 그러면서 뭐라고 했거든? 그땐 동생이고 뭐고 안 챙기고 싶더라고 난 그때 고작 두 살 차이 나는 누나였는데 엄마는 나를 필요할 때마다 부르는 인간 신용카드로 생각한 것 같아.”
인간 신용카드라는 표현이 낯설게 들리기는 했지만 장애인 형이나 동생 언니를 둔 비장애인 형제자매들의 고층으로 기억하고 싶어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내가 지(남동생을 말하는 것 같았다)를 위해서 이것저것 해줬을 때 누나 고마워 나 때문에 고생하네라고 말이라도 해주고 내 생일 때 막대사탕이라도 하나 줬으면 내가 이렇게까지 서운하지는 않을 거야. 이제 엄마도 가셨으니까 나는 모르겠다. 엄마 살아계실 때까지 한 것만 해도 난 충분히 했어. 몸이 성치 않다고 아무것도 시키지 않은 엄마 탓이야 이건. 혼자 뛰어다니지는 못해도 걷기는 하고 하루에 5시간씩 일도 하는 애가 왜 그러냐 진짜. 지가 혼자 나가서 살던 알아서 하겠지.”
장애가 그렇게 심하지는 않지만 몸이 불편함을 이유로 자립심을 키워주지 못한 엄마와 도움에 대해 감사 인사를 하는 방법을 교육받지 못한 아들의 결론은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누나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것이었다. 비장애인 누나들에게도 관심과 사랑을 주고, 장애인 당사자인 아들에게는 타인의 도움에 대한 고마움을 알려줬다면 이들 가족의 사이는 지금보다 훈훈해졌을지도 모르겠다. 장애인의 자립의 궁극적 목적은 부모의 사후에 대비하기 위함이니까.
장애인 사이에 있는 비장애인 형제자매는 그 부모에게 신용카드가 아닌 퇴직연금처럼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취업 후 퇴직 시까지의 적립금을 모아 은퇴 혹은 유사시에 사용하는 것처럼, 장애인이 부모의 생존 시까지 자립심과 타인의 도움에 대한 고마움을 배워 형제자매 사이를 유지하고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은 그러한 존재로 세상을 살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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