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시설 장애인 접근권 방치 ‘국가 배상책임’ vs ‘직무 과실 인정 어렵다’

장애인 접근권 관련 국가배상 사건 대법원 공개변론-②

2024-10-24     백민 기자

국가가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을 장기간 개정하지 않아 그동안 장애인 접근권이 보장되지 않은 것은 국가의 책임일까? 또 해당 시행령을 오래 개정하지 않은 것이 위법하다고 판단된다면 장애인의 정신적 손해가 인정돼 국가는 배상책임이 있을까?

대법원은 이에 대한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23일 오후 2시 대법정에서 대법원장 및 대법관 전원이 참석하는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을 열었다.

사건의 쟁점은 피고 대한민국이 소규모 소매점의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과소하게 규정한 구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을 개정하지 않은 것이 위법한지에 관한 여부와 행정입법 부작위가 위법하다고 볼 경우 그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의 인정 여부다.

대법원 전경. ©에이블뉴스DB

1998년 시행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하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은 바닥면적 300㎡(약 90평) 이상인 이용시설에만 편의시설이 설치하도록 규정했다. 이후 24년이 지난 2022년이 돼서야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바닥면적의 합계가 50㎡ 이상의 시설’에도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가 의무화되도록 규정됐다.

장애인들은 “국가가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 규정을 20년 넘도록 개정하지 않아 장애인등편의법,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보장한 접근권이 형해화됐다”고 주장하며 국가배상을 청구했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와 2심 재판부는 구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 조항이 모법의 위임범위에서 벗어난 행정입법권의 일탈·남용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장애인의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위헌, 위법한 시행령으로 무효라고 판단했지만, 그 과정에서 고의·과실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려워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 바 있다.

현행 국가배상책임 제도, 국가의 배상책임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인정 ‘지적’

원고 측 대리인 법무법인(유한) 지평 정상용 변호사는 “현행 국가배상책임 제도는 국가의 배상책임을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인정한다는 문제가 있다. 원심은 이같은 소극적 기조 아래 이 사건의 담당 공무원들의 고의과실, 객관적 정당성 상실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봐 국가가 배상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며 현행 국가배상책임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어 “원심은 고의과실을 부정한 것은 국가배상책임의 공법적 성격을 감안하지 않은 것뿐 아니라 현행의 민사법리에도 맞지 않는다. 민사법도 관여된 사람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한명 한명의 관여도는 희석되기 때문에 개인의 과실과 조직의 과실을 달리 취급하고 있고 그리하여 큰 조직에 대해서 조직 과실의 개념을 인정해 왔다”며 “국가배상책임에 대해서도 과실관념 객관화, 조직 과실, 과실 추정이 필요하다. 이는 국가가 잘못했음에도 공무원 개개인에게 고의과실이 없다는 이유로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부당한 결론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또한 원심은 객관적 정당성이 상실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는데 이처럼 고의과실 요건 이외에도 객관적 정당성 상실요건이 국가배상책임 성립을 대폭 제한하고 있다”면서 “이번 기회를 통해 객관적 정당성 상실요건 존치 여부에 대해 재고해 주시길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부작위의 경우 위법성 인정된다면 과실도 인정된다는 것이 대법원 ‘미니컵젤리’ 판결의 입장이기도 하다. 인식가능성과 회피가능성은 위법성과 과실의 공통된 토대다. 작위의무와 부작위 위법성이 인정되면 그 토대인 인식 및 회피가능성이 있다는 뜻이고 이는 곧 과실도 존재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턱 때문에 전동휠체어가 접근하지 못하는 카페 입구.ⓒ에이블뉴스DB

최소한의 금액으로라도 손해배상 인정돼야 장애인 권리침해 확인받을 수 있어

원고 측 대리인 법무법인(유한) 지평 이온달 변호사는 “국가배상제도는 국민 개개인에게 발생한 손해를 구제하기 위한 제도다. 이에 행정입법부작위로 인해 국민 개개인에게 사적 법입 침해가 발생했다면 손해 발생이 인정돼야 한다. 특히 행정입법부작위에 있어서는 상위 법령 목적이 고려돼야 한다. 상위 법령 목적이 국민 개개인의 사적 법익을 보호하려는 것이라면 하위 법령의 행정입법부작위는 바로 그 사적 법익을 침해하게 되는 것으로 손해 발생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행정입법부작위가 원고 장애인들 접근권 침해 근본적 원인이므로 상당인과관계도 인정할 수 있다. 행정입법부작위가 원고들 접근권 침해 근본적 원인이므로 상당인과관계도 인정할 수 있다. 소규모 소매점의 편의시설 미설치는 쟁점 규정에서 설치 의무를 면제했을 때부터 발생이 예정된 결과였다. 그러므로 인과관계가 단절된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규범적으로 국가가 행한 불법에 상응하는 위자료가 상정돼야 한다. 이미 판례도 평등원칙 위반 등 위법행위와 권리침해는 확인되지만 손해 확장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불법을 진지하게 확인할 수 있는 상징적 금액, 예컨대 1인당 100~200만 원을 배상을 명해왔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원고들의 권리침해를 확인받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금액으로라도 손해배상이 필요하다. 시행령이 위헌 무효임이 확인되더라도 손해배상 청구가 인용되지 않는다면 국가가 위법행위를 했다는 사실, 그로 인해 원고들이 접근권을 침해받고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은 확인받지 못한다. 최소한의 금액으로라도 손해배상이 인정돼야 이를 확인받을 수 있다”고 피력했다.

턱 때문에 휠체어가 접근하지 못하는 편의점 입구.ⓒ에이블뉴스DB

“구체적 상황에서 발생했다는 검토없이 주장만 근거로 국가배상 인정할 수 없어”

피고 측 대리인 정부법무공단 유일한 변호사는 “국가배상 제2조 1항은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을 국가배상책임으로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에 위법한 공무집행이라는 요건이 인정된다면 당연히 공무원 과실 추정한다거나 그대로 인정된다고 평가할 순 없고 행정입법부작위의 위법성 판단과 별도로 공무원의 과실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이어 “이번 사안의 경우 공무원이 쟁점규정을 개정하지 않은 것이 객관적 주의유무를 위반한 것인지 문제가 되는 사안이다. 그런데 쟁점규정의 개정은 궁극적으로 장애인 접근권 강화를 위한 목적임을 고려해 공무원이 쟁점규정을 개정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장애인 접근권 강화를 위한 상당한 노력을 수행한 것이 맞다면 객관적 주의의무를 결여해 해당 직무 과실을 인정하긴 어렵다고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피고 대한민국은 2014년 유엔 권고 내용을 고려해 모든 공공시설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인증을 의무화했고 장애인등편의법 및 하위 법령을 최근까지 87회 개정하며 장애인 접근권 강화를 위한 조치를 계속해 진행했다. 또한 장애인 활동 보조 서비스 도입 및 확대를 통해 접근권 강화를 위한 충분한 노력을 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유 변호사는 “원고들이 주장하는 손해는 첫번째 행정입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실 자체만으로 발생하는 정신적 고통과 두번째 행정입법부작위로 인해 원고들에게 비재산적 사적 법익이 침해됨으로 발생하는 정신적 손해로 구분하고 있다. 그런데 행정입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실 자체와 관련된 손해에 대해서는 피고가 이 사건 쟁점규정을 소송 진행 과정에서 개정함으로써 회복됐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다음으로 행정입법부작위로 인해 비재산적 사적법익 침해가 돼 발생한 정신적 손해가 인정될 수 있는지 여부다. 원고들이 주장하는 손해와 관련해서는 권리이익이 침해돼 구체적으로 손해가 발생했음이 요구되고 특히 정신적 손해배상과 관련해서는 원고들의 개인적 범위 침해로 인해 정신적 고통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주장책임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장애인이 당사자로서 접근권 이 사건의 쟁점규정을 개정하지 아니하여 접근권의 어떠한 손해를 입게됐 다는 것인지 명확한 주장을 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결론적으로 원고들이 주장하는 손해가 행정입법부작위로 인해 접근권에 대한 침해 제한으로 발생하는 손해로 의미한다면 그러한 손해가 실제 구체적인 상황에서 발생했다는 검토도 없이 원고들의 주장만을 근거로 국가배상법의 손해를 인정할 수 없고 쟁점규정에 따라 행정입법부작위로 인한 원고들의 손해를 섣불리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피고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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