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샤워하기

2003-05-30     방귀희

엄마가 없어도 나는 밥을 먹고

텔레비죤도 보고

잠도 잔다

어디 그뿐인가

크게 웃기도 하고

소주도 마시고

노래방에 가서 꽥꽥 소리를 질러댄다

마치 달라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양

난 잘 지내고 있다고

허풍을 떤다

생각해보니까

정말 난 그대로 이다

달라진 건 나 혼자 샤워한다는 것 뿐이다

엄마가 있었을 땐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일이다

혼자 샤워하기

나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다

화장실을 개조하면서 낮게 설치한 샤워기로

샤워를 하려고 하는데

갑짜기 순서가 생각나지 않았다

뭐부터 해야할지 몰라 멍 하니 허공을 쳐다보다가

갑짜기 떠오른 생각

-아, 옷부터 벗어야 하는구나-

만약 몰카가 있었다면 배꼽잡을 장면들이었겠지만

어쨌든 난 샤워를 마쳤다

그리고 외출하며 향수도 뿌렸다

한 남자 아이가 내게 물었다

-선생님 향수 뭐 쓰세요?-

-버버리-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비극적인 샤워였지만

내 향기가 죽여준다고 그 사내는 너스래를 떤다

일단 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