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활화산을 만나는 행운

여행박사 감동투어, 장애인들의 일본여행기③

2008-12-01     예다나 기자
많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 아소산 활화산에서 지현씨가 기념 사진을 찍었다. 장애인들도 분화구 바로 앞까지 다가가서 장엄한 풍경을 구경할 수 있다. ⓒ여행박사

운좋은 사람만 볼 수 있는 아소산의 깊은 속살

구마모토항에서 아소산으로 가는 길, 2호차 김정기 가이드는 “소풍 갈 때 비온 적 없는 사람, 손들어보세요” 했다. 시시각각 변덕을 부리는 활화산의 코 앞에서 입산금지 경보가 내려 발길을 돌려야 했던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상 운을 타고나지 않았으면 헛걸음을 할 거란 거였다.

우리 차 안의 대부분이 운 좋은 사람이어선지, 숨어 있었던 태양이 반짝이는 금니를 드러내며 눈부신 미소를 지었다. 차창 밖으론 산과 산 사이 구릉지가 펼쳐지고, 굽은 길을 돌면 삼나무숲이 나타나 눈길을 앗아갔다. 육질이 최고라는 일본산 검은 소와 고개 숙인 말들이 넓은 목초지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억새풀, 긴 머리채가 바람결을 따라 나부끼는 목가적인 풍경이 계속됐다.

좋은 가이드를 만나면 해박한 지식까지 얻어갈 수 있는 게 여행. 2호차 김정기 가이드는 내내 마이크를 잡고 일본의 역사와 지리를 안내해 주었다. ⓒ여행박사

산 아래 차를 주차해야 하는 관광버스 사람들은 케이블카로, 분화구 바짝 앞까지 차를 댈 수 있는 미니버스 사람들은 차에 탄 그대로 나카다케 분화구에 다다랐다. 운전기사 미키씨가 조작해주는 휠체어 리프트에서 내리자 완만한 아스팔트 길이 펼쳐졌다. 난생 처음 마주친 화산지대의 황량함이라니! 전동휠체어로 분화구 앞까지 달려갈 수 있을만큼 길은 잘 닦여져 있었다.

산봉우리가 웅덩이처럼 움푹 깎여져 나간 분화구는 켜켜이 패인 검은 속을 드러내며 무섭도록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사람들마다 고개를 빼고 내려다보는 저 아래를 들여다 보니, 비취반지 녹아 흐르듯 신비한 옥빛 물이 끓고 있었다. 흰 연기를 뿜어 올리며 유황가스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있는 풍경이 신비로웠다. 날개가 있다면 훨훨 날아, 손바닥을 적셔 보고 싶다는 유혹이 밀려 왔다. 마침 등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질식할만큼 악취가 난다는 유황 냄새를 몰아가 주었다.

다운이 어머니 지영씨는 “이 때까지 온 곳 중에 제일 웅장하고 멋있고 일본다워요”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그녀는 중학생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자폐성장애가 있는 아들과 또래친구들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가르쳐 주고 싶어서란다. 장애가 있거나 없거나 아이들은 부대끼면서 서로 배우는 게 있는 법. 그녀의 공부방엔 장애, 비장애의 벽이 없다.

자폐성장애를 갖고 있는 다운이는 춤추고 노래하는 걸 지켜보는 게 고역이었다. 그렇지만 딴청을 하면서도 동참했다는 점이 어머니 지영씨에게는 값지다. ⓒ여행박사

하지만 그렇게 아들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느라 엄마는 공부 자료를 만들며 가르치며 바삐 지내야 했다. 엄마보다 누나를 더 잘 따르는 아이라, 이번에도 시험기간만 아니었다면 누나가 올 예정이었다. 얼마만에 일손을 놓고 아들과 단 둘이 지내보는 건지…. 오롯이 아들과만 마주하는 시간 속에서 그녀는 성장한 아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다운이가 매일 바뀌는 일정과 장소를 견뎌내고 낯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은 지켜보기만 해도 흐뭇한 일이었다.

혼자만 행운을 잡은 게 미안해서 그녀는 다운이 친구 엄마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찬값을 아껴서 다같이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가슴 시원한 청량제가 될 것인가. 돌아가 건네줄 선물을 고르느라 기념품점마다 기웃거려 보았지만 환율도 비싸고 주머니도 넉넉하지 않아서 쉽사리 지갑을 열진 못했다. 그러다 발견한 연필 한 자루. 문구 코너 그 많은 상품 속에서도 그것은 그녀의 눈에 확 띄었다. 손끝이 무딘 장애학생들에게 안성맞춤인 손잡이가 달린 연필이었다. 행동반경을 바다 건너 일본으로 옮겨 보아도 이렇게 그녀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언제나 아들과 관련된 것. 돌아가 어서 빨리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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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다나 기자는 ‘장애 경력 18년’을 자랑하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