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안마사 합헌을 보고
안마사가 시각장애인만의 직업이라는 사실을 헌재가 결정했다. 이 결정을 보면서 오래전부터 가슴 속에 생생하게 남아두었던 일이 기억난다.
1991년 韓中수교가 정식으로 이루어지기 전, 나는 중국을 방문했다. 얼마나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어야 했는지.
자본주의 국가에서 살아오면서 다른 체제를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나에게 사회주의(社會主義, socialism)는 낯선 체제였다. 게다가 학교교육을 통하여 사회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만 주입되었던 나에게 사회주의는 열등한 제도였다.
다행히도 대학에서 이데올로기(Ideology)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우리가 배운 사회주의 보다는 사회주의 자체에 대한 접근이 가능해지면서 사회주의에 대한 나의 생각이 180도 변화되어 가는 과정에 나의 생각이 머물고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국에서 경험하게 된 중국의 장애인복지정책은 나에게 신선한 도전이 되었다.
중국 동북부 지역에 위치한 어느 지역(안도 혹은 도문 쪽이었다.)에서 지체장애인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았다. 하반신 지체장애인들은 구두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소위 제화(製靴)사업이었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기성제품으로서 구두를 만들고 있는 듯 하였다. 나는 회사의 책임자에게 물었다. "이 구두를 어떻게 소모하나요?" 이 때 책임자는 간단히 대답했다. "우리는 만들고 구매는 정부가 하고, 구입은 국민이 하고.." 결국 전량구매는 정부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체제였다. 그저 장애인들은 열심히 만들되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면 되었다. 따라서 판매가 확정된 상품을 만드는 일은 장애인이게만 독점적으로 보장된 것이다.
일하는 장애인, 수입이 있는 장애인, 세금을 내는 장애인, 일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독립적으로 책임지는 장애인. 알고보면 장애인 복지가 지향하는 모습이 아닌가? 이와같은 꿈이 이루어지게 되는 그 이유는 장애의 사회적 책임을 국가가 흔쾌히 감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저 장애인에게 수당을 더 주는 것은 장애인 복지가 아니다. 이는 장애인을 도움을 받는 자, 구걸하는 자로 전락시키는 방책이다.
일할 수 있는 장애인에게 일을 제공하고, 아울러 일한 만큼 소득을 보장하는 것이 장애인 복지요, 이것이야 말로 국가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지적장애인이나 중증 장애인도 그들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일을 하도록 하여야 한다. 오늘날 사회는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사회는 아니다.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가지고 모두가 힘을 합쳐서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가장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것은 장애인의 능력에 따라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비생산적인 것은 10가지 할 수 있는 사람이 지적장애인이 할 수 있는 단순 노동 혹은 단순 작업에 투입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외모 혹은 젊음이라는 것을 수단으로 하여 비생산적인 비효율적인 일자리가 너무도 많다.
융통성이 있고, 다양한 능력이 있는 사람은 그러한 일 자리에 배치를 하고, 단순한 작업을 할 수 있는 그러한 자리에 배치하는 것이 생산적이고, 효율적이다.
시각장애인의 안마사 독점이라는 헌재의 결정은 사회정의를 단적으로 증명해 주는 것이다. 모두가 살아야 하고, 모두가 자유와 결정권이 있지만, 사회적 약자에게 차별적이고 적극적인 권리와 자유가 우선 보장되는 사회에서만 모든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다. 이를 기초로 하여 사회전체가 진정한 정의를 세워가는 모습이 보여지기를 기대한다.
10월의 마지막 말. 기쁨의 소식을 듣게 되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