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으로 된 집, 아직 실감 안나요”

부모님 품 떠나 자립생활체험홈 입주…자립 시작
8개월 살다가 임대아파트 나와 내 집 마련 성공

2008-05-23     기고/박주현
부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운영하는 장애인자립생활체험홈을 통해 자립생활을 실천하게 된 박주현씨. ⓒ박주현

에이블뉴스는 장애인시설의 비리 운영과 인권 침해 문제가 사회적으로 고발된 이후에 주목한다. 비리 시설에서 살아왔던 장애인들이 지역사회로 나가지 못하고 또 다른 시설로 전원 조치되고 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것은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시설에서 나오거나, 집에서 독립하려면 가장 먼저 살 곳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교육과 노동에서 배제된 장애인들에게 거액의 주택 자금을 마련하는 것은 매우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이는 현실성 있는 장애인 주택정책이 없기 때문이다. 에이블뉴스는 제28회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 주거권 실현을 위한 실질적인 대안을 모색해 보는 특집을 진행한다.

[내집 마련 수난기]⑫부산시 북구 금곡동 박주현(여·30)씨

아주 어렸을 때는 부모님들이 나랑 영원히 사신다고 믿고 살아왔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만약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나도 같이 죽어야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너무나 큰 두려움에 휩싸여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두레벗’이라는 모임에 나가게 되었고 그 모임은 중증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자립을 할 수 있다는 개념을 가진 모임이었다. 내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갈지 갈팡질팡 했던 차에 ‘두레벗’이라는 모임은 내게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그때는 지금같이 활동보조서비스가 제도화가 되어 있지 않았기에 외출을 자유롭게 못했으며, 그때는 그 흔한 수동 휠체어조차 없어서 집에만 있으면서 그 모임에만 나갔다. 그 모임에 나가니 정보공유도 되고 사람들과도 친분이 쌓였다. 내가 그 동안 우물 안에 개구리였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모임에 나가던 중에 내게 기회가 찾아왔다. 지금 활동보조서비스라는 비슷한 개념으로 하는 사업이 ‘두레벗’에서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시범이용자로 선정이 되었고 내게는 엄청난 기회가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살아가면서 세 번의 기회가 온다던데 하나는 이거라는 생각이 든다. 시범이용자로 선정이 되어 사회활동을 시작하게 되면서 집회에도 나가고 많은 사람들과 만나며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살다가 내게도 꿈이 생겼다. “나도 자립을 해서 살고 싶다”라는 꿈 말이다.

그래서 부모님께 내 의견을 말을 했다. 하지만 반대라는 벽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부모님 손길이 닿았던 나이기에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고 부모님이 반대가 심했다. 하지만 내 꿈을 쉽게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부모님께 되물었다. 만약에 부모님들이 돌아가시면 나는 어떻게 되냐고 말이다.

그러니 부모님 하시는 말씀이 “언니들이 책임 질거다”라는 답을 해주셨다. ‘나도 사람인데 눈칫밥을 얻어먹으면서 살아야 되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이 비관적인 성격으로 바뀌게 되었다. 언니들도 나 때문에 시댁에 흠이라도 잡히면 어떡하나라는 걱정과 함께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그러다가 아버지 사업이 부도를 맞으셔서 내가 시설이라도 가야 할 형편에 이르렀다. 그때 너무 앞이 캄캄했다. 내가 시설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있었기에 두려움부터 밀려왔다.

근데 내게 두 번째 기회가 찾아 온 것이었다. 부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운영하는 체험홈이라는 곳에 입주를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부모님들이 걱정을 많이 하셨다. 하지만 내겐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게 바로 활동보조서비스 제도화가 작년부터 실시되었기 때문이다.

체험홈에 입주를 하면서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가 되어 완전한 독립을 맛보게 되었다. 돈을 어떻게 써야 되는지 계획도 세우고 임대아파트도 신청을 하고. 하나 둘씩 나만의 삶을 만들게 되었다. 그 동안에는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만 살아왔는데 나만의 삶을 만들어 간다는 게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몰랐다. 물론 책임이라는 무게가 따라 오지만 말이다. 체험홈에 살면서 계획부터 세웠다. 내 삶을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가라는 계획.

‘체험홈이라는 곳이 없었다면 철장 없는 감옥이라는 시설에 가 있었겠지.’ 체험홈에 10개월을 거주하다가 임대아파트가 나와서 들어왔다. 드디어 내 이름으로 된 집이 생겼다. 너무 좋다. 아직 실감이 잘 안 나지만 앞으로 진정한 독립생활이 뭔지를 보여 주고 싶은 바람을 가져 본다.

*이 글을 보내주신 박주현(여·30)씨는 부산시 북구 금곡동에서 살고 있습니다. 에이블뉴스와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는 제28회 장애인의 날 특집으로 ‘나의 내 집 마련 수난기’ 공모를 진행해 릴레이로 수기를 연재했습니다. 수기 연재는 이번 글로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