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로 내몰리는 장애인야학들

인천 장애인야학들, 거리에서 13일째 천막교실
교육청 대책 전무…시민들에 문제 알리려 선택

2008-04-28     주원희 기자
인천지역장애성인교육권쟁취를위한대책위원회가 설치한 장애인야간학교가 13일째 천막농성 중이다. ⓒ에이블뉴스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앞 중앙공원에 들어선 천막 한 동. ‘장애성인 교육권을 보장하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을 뿐, 교패가 달려있지는 않지만 ‘인천지역장애성인교육권쟁취를위한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설치한 장애인야간학교이다. 28일 현재 13일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곳은 장애성인들을 위한 검정고시교육과 자립생활교육을 실시하는 민들레장애인야간학교(이하 민들레야학)가 임시로 교실로 쓰고 있는 공간이다. 장애인들이 직접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운영되던 민들레야학은 수개월 치 임대료가 밀려 지난 18일자로 기존 건물에서 퇴거당했고, 이곳으로 옮겨왔다. 기존에 사용하던 집기와 교구는 담보로 잡혔고, 지역 시민단체들로부터 책상과 칠판을 빌려왔다.

이곳에서 수업을 하지는 않지만 작은자야간학교도 이 천막 야학을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작은자야학은 한 장애인생활시설 안에 가건물을 올리고 20여년 동안 교실로 써오면서 몇 차례 철거위기를 당한 경험이 있다. 수년째 교육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보조금을 지급해온 인천시청은 올해부터 지원금을 끊겠다고 전해왔다. 민들레야학처럼 현재 당장 교실을 비워야하는 처지는 아니지만 더 나을 것도 없는 처지다.

두 장애인야학이 주축이 된 대책위가 무작정 천막부터 설치한 것은 아니다. 대책위는 그동안 수차례 인천시교육청과 인천시청에 민들레야학과 작은자야학의 사정을 알리고, 대책을 마련해줄 것을 촉구했다. 1인시위도 벌이고, 길바닥에도 누워봤다. 상황의 급박함을 알리려 인천시교육청 앞에 천막교실을 설치하려다 몇 번이나 경찰에 끌려가기도 했다.

이들의 외침에 대한 인천시교육청의 대답은 ‘장애인야학을 지원해 줄 수 있는 법적 근거도, 권한도, 예산도 없다’는 것. 결국 대책위는 장애성인 교육권 침해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고, 적절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서 인천시교육청에서 조금 떨어진 이곳에서 천막수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천막야학의 하루 일과표. 일정이 빼곡하다.ⓒ에이블뉴스

시민들 만나 장애성인 교육문제 알려

천막야학의 하루는 일정이 빼곡하다. 수업은 밤에만 하지 않는다. 오전 11시 30분께 인천시교육청 정문 앞에 책상과 칠판으로 옮겨 거리를 지나다니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한다. ‘차별이 차별을 만나다’라는 주제 하에 각 분야에서 사회운동을 벌이고 있는 당사자들을 초청해 우리사회에서 소외계층들이 겪는 다양한 차별에 대해 알아보는 자리 이른바 ‘열린야학’이다.

수업 후 천막으로 다시 돌아온 장애인 학생들과 교사들은 간단한 점심식사 후, 거리로 나선다. 오후 3시부터 6시 30분까지 신세계백화점 앞 사거리에서 교육에서 소외받고 있는 장애성인들의 열악한 현실을 알리는 선전전을 펼친다.

한 장애인학생은 “지나는 시민들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합니다. 공부하고 싶다고. 우리의 외침이 시민들에게는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헛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알아주길 바랍니다. 그래서 인천시교육청이 하루라도 빨리 우리의 소리에 대답하기를 바랄 뿐입니다”고 말했다.

마지막 일정은 천막 안에서 진행된다. 민들레장애인야학의 학생들이 모여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수업을 한다. 기존 야학에서 공부를 했던 것처럼 국어, 수학, 영어 등 교과를 배운다.

김순미 학생은 “전기마저 끊긴 교실을 보면 가슴이 아프고, 이곳에서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이 솔직히 좋지는 않아요. 학교를 빼앗긴 학생들은 장애인들 밖에 없겠죠. 교육청이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는 이곳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아니, 이제 돌아갈 곳도 없어요”라고 말했다.

30일 나근형 교육감과 면담 예정

대책위는 오는 30일에는 진행되는 나형근 인천시교육청 교육감과 면담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지난 24일 장애인의 날 행사장을 찾은 나 교육감을 직접 만나 어렵게 받아낸 약속이다. 면담 결과가 좋으면 천막교실을 끝낼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판단하고 있다.

작은자야간학교 장종인 행정부장은 “인천시교육청은 예산배정은 인천시청의 몫이라며 자신들은 권한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한다. 하지만 교육의 주체는 교육청이 될 수밖에 없다. 건물임대비는 시청에서 지원하더라도 프로그램비나 교재지원비 등은 교육청이 지원하는 것이 맞다. 타 시·도에서도 모두 이 같은 방식으로 야학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부장은 “교육청이 의지가 없는데 시청이 어떻게 예산을 지원하겠는가. 양측이 서로 책임이 없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협상을 위한 논의테이블을 만들어야 한다. 일단 이번 면담에서 교육청의 책임 있는 답변이 나오면 시청과 3자 면담을 추진할 것이고, 책임이 없다는 답변이 나온다면 전국적인 투쟁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이 천막야학은 민들레장애인야간학교가 임시로 교실로 쓰고 있다. ⓒ에이블뉴스

오전 11시 30분께 인천시교육청 정문 앞에 책상과 칠판으로 옮겨 거리를 지나다니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한다.ⓒ에이블뉴스

천막야학 근처에 '장애성인 교육권을 보장하라'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에이블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