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울음소리

한달간의 긴 겨울잠을 깨고

2007-06-26     칼럼니스트 한명숙

"딩동, 세 메시지가 도착 했습니다."

5월 28일 밤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핸드폰이 메시지를 보내온다. 아니, 이 야밤에 왠 메시지? 늦은 시간이라 전화 걸기도 뭐하고 꼭 전화를 걸어야 하는 사연이겠지 하며 핸드폰을 열어본다.

‘실장님, 모 좀 구해주세요. 모가 모자라요.’

요즘 강원도 인제에서는 모내기가 한창이다. 엊그제도 장애인가족을 방문하여 몇 시간을 모내기 하는데 모판을 나르다 왔다. 사연도 알아야겠고 별일 다 있구나 하며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니, 왠 밤중에 모야? 장애인민원업무만 보면 되지 민원상담실장은 모도 구해줘야 돼?"

"아 그래도 나보다는 수월하겠지."

사연인즉 2600평정도 심을 모가 모두 망가지고 말았단다. 목발을 사용하는 1급 지체장애인이면서 서화면 분회장을 맡아 열심히 생활하는 분이다. 작년에 콩을 수확할 때도 도운 적이 있는데 밭에 들어서면 짚고 있던 목발을 놔두고 앉아서 이동하면서 일을 하는 것을 보고 감탄 한 적이 있다.

그래도 그렇지 내가 논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고 난감한 일이다. 그 밤에 두어 집 전화를 걸어도 될 만 한데는 전화 걸어 알아보고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내가 아는 장애인가족한테는 모두 전화를 걸었나보다.

출근하자마자 사무실로 전화가 왔다. 지금당장 와서 모를 싣고 가란다. 마침 장애(간질)가 생기기전 대형버스를 운전했던 남면 분회장이 와있는 상태라 보호작업장 2.5톤 화물차를 운전시키고 한계리로 갔다.

이집 저집 구호물품 싣듯 한개 두개 모은 게 200여 판은 되는가보다. 그 정도면 2600평은 다 못 심더라도 상한모를 잘라내고도 2,000여 평은 심을 양이다. 다행이다.

이상은 지난 5월 달에 있었던 상담일지이다. 사무실 비치하는 것 말고 가끔씩 사연이 있을 때는 따로 일기장처럼 적어놓는 일지이다.

요즘 장마철이라 날이 어두워지기 무섭게 동네 여기저기에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대단하다. 논에 물을 대어 놓아 개구리들이 천국이다.

처마 밑 깊은 밤을 세차게 몰고 간 장맛비 사이로 개구리 울음소리가 낭낭하다. 비가 오나 싶었는데 자지러질 듯한 개구리 울음 소리에 창문을 열었다. 잠깐 비가 그친 사이 개구리들이 합창을 한다.

따뜻한 봄이 오면 개구리 수컷들은 웅덩이에서 경쟁적으로 울며 암컷을 부른다. 피부 호흡을 하는 개구리는 습기에 민감하다. 그래서 옛날에는 개구리 울음소리를 듣고 날씨를 예측했다. 피부호흡 때문에 물속이 오염되면 오염물질이 금세 몸에 흡수되어 환경오염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개구리를 볼 수 있다는 건 깨끗한 환경,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라는 뜻이다.

봄이 되면 개구리들은 따뜻한 웅덩이에서 알을 낳는다. 한 쌍이 100~350개, 종류에 따라 1,500개의 알을 낳는다.

여름이 들어서는 길목에서 그 많은 알들은 모두 올챙이에서 개구리가 된다. 아직 개발이 덜된 읍내 시가지에 드문드문 있는 논에서도 어김없이 개구리들은 자기세상이다. 장맛비 사이로 들리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장맛비와 멋진 하모니를 이룬다.

이번 장마에는 피해가 없어야 할 텐데, 수해가 지나간 자리가 채 아물기도 전인데 제발 다시 한 번 가슴 쓰러 내리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많은 기도와 함께 창문을 열고 하늘을 보며 긴 장맛비의 서막을 듣는다.

그때 구해다 준 모 들도 잘 자라고 있겠지? 장애를 딛고 열심히 살아가는 서화분회장님께 풍족한 수확의 기쁨을 안겨드리는 효자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