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의 전환

양서평등 전문강사 양성교육 기본과정을 마치며①

2007-04-07     칼럼니스트 한명숙

‘바다로 나갈 필요가 있다고? 그렇다면 배를 만들어 주어서는 안 되고, 그렇다고 배를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줄 필요도 없다. 다만 사람들로 하여금 바다를 미치도록 그리워하도록 만들라’ -생땍쥐빼리-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2박 3일의 짧은 여정으로 양성평등 전문 강사 양성교육 기본과정을 수료했다. 기본과정을 교육받은 수료자들이 다시 온라인 강의를 받고 과제물을 제출하고 강의안까지 심사를 한 다음 2차 교육생을 선발한다. 2차 교육이 끝나면 실전과 검사테스트를 통해 심화과정 교육대상자 선발을 하게 된다. 심화과정까지 수료를 하면 양성평등 전문 강사로 위촉되어 활동하게 된다.

지난 15년 동안 장애계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뒤늦게 장애여성의 현실을 알게 되었고 우리가 직면해 있는 현실을 통감하면서 자존감이 너무 낮은 이들을 위해 당사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많은 고민을 했었다. 지식과 배움 그것은 내게도 모자람이 있기에 그들에게 선뜻 다가설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해 늘 마음이 허허로웠다.

그러던 중 양성평등 전문 강사 교육과정이 있어 참가 했다. 이것이면 나의 정체성과 장애여성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으리란 부푼 꿈을 안고…

교육을 받으면서도 그 정체성을 찾는 일이란 그리 쉬운 게 아니었다. 나한테는 양성평등을 위한 교육을 하는 강사가 아닌 양성평등으로 가기 위한 교육을 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던 것이다.

몇 해 전 장애여성단체가 여성가족부 법인을 받고자 투쟁하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여성가족부는 같은 여성이기를 거부하고 산부인과에서는 장애여성의 임신을 돌보지 않는다. 구지 보건복지부 통계를 들지 않더라도 최악인 장애인 특히 장애여성의 학력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다.

또한 대부분의 장애여성들은 장시간동안 차별구조 안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자아존중감이 낮고 정체성이 부족하며 자립의지와 삶의 목표의식이 부재하는 자아혼동 상태에 놓여있다. 이렇게 장애여성들의 자아정체감이 낮은 상태이기 때문에 장애여성들은 자신에 대해 부정적이고 손상된 이미지를 갖기가 쉽고 외부와의 상호작용 시에도 심리적 장벽으로 인해 스스로를 외부세계와 단절시키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렇듯 장애여성들은 여성과 장애인이라는 이중적인 편견에 시달리고 있으며 사회 환경적 차별 구조에서 비롯되는 차별은 장애여성들이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주체로서 삶을 영위하기 어렵다.

나와 장애여성의 양성평등은 국가, 정부, 사회, 가족, 동족으로부터의 차이가 아니라 차별을 넘어서야 하고 자존감을 찾는 일을 해야 하는 험난한 길이 있었던 것이다.

막막하다. 문득, 어떤 가족의 ‘배워서 남 주자’란 가훈이 떠오른다. ‘배워서 남 주자’는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인지도 모르겠다.

언제까지나 수혜자로만 머물러야 하는 이들과 나의 양성평등의 길은 아직도 먼 곳에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