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차별금지법, 올해도 통과 힘들다

대통령·총리 “제정 약속”…후속조치는 지지부진
경제계와 정면충돌…참여정부내 입법 가능할까?

2006-12-06     주원희 기자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과 장애인의 사회통합을 가로막는 차별과 억압의 벽. <에이블뉴스>

■창간4주년 기획특집-③장차법

장애인계의 숙원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이 법안은 전 장애인계가 단체와 세력을 떠나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역대 최초의 법안이다. 그만큼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담고 있는 의미는 장애인들에게 매우 크다. 최근 국제장애인권리조약안의 유엔 통과가 임박한 상황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제정은 더욱 절실해지는 시점이다.

장애인계는 올해 안에 이 법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며 투쟁의 행로를 이어가고 있지만, 정치권의 미온적인 태도와 경제계의 반대로 인해 그 전망은 밝지 않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현재 어떤 상황에 봉착해 있는 것일까? 에이블뉴스는 창간 4주년을 맞아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최근 추진 상황과 흐름을 짚어본다.

참여정부, 약속 따로 실행 따로

‘장애인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 즉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지난해 9월 20일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의 대표발의로 국회에 넘겨졌다. 이 법안은 전 장애인계가 참여하고 있는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가 수년간의 현장 의견수렴을 통해 작성됐다.

정부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대해 과연 어떠한 입장을 갖고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노무현 대통령과 한명숙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장애인계의 요구를 수용해 임기 내에 반드시 제정해 내겠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6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장애인 복지향상을 위한 대책을 서두르고 있다. 장애인 차별금지제도의 법제화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한명숙 총리는 지난 14일 교육·사회·문화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대통령 공약사항으로 되어 있는 차별철폐 규정에 대해서 남은 임기동안 반드시 지켜내겠다"고 굳게 약속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잇단 발언은 5년을 넘게 투쟁해온 장애인계에 잠시나마 희망을 던졌다. 하지만 이 같은 공언에도 불구하고, 정권말기라는 시기적 상황과 입법추진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내어놓지 않는 정부의 태도로 인해 장애인차별금지법 입법이 무산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줄지 않고 있다.

장애인계의 이 같은 염려는 지난 8월 16일 정부의 제안으로 구성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민관공동기획단’이 활동 4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가시화된 결과물을 내어 놓지 못하고 있는 데서 출발한다.

장추련은 “장애인차별금지법 민관공동기획단을 통해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추진하고 있다고 자랑하듯 말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책상머리에 앉아서 연구만 하고 있다. 지금까지 9차례에 만나면서 상당 부분 입장 조율이 되었지만 좁힐 수 없는 각자의 입장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말한다.

정부가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어떻게 풀어갈 지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고, 연구하고 있다는 식의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는 것이 장추련의 지적이다. 장추련은 언제 어떤 방법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할 것인가를 공표하라고 압박하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한국경영자총연합회 경총회관을 철통 방호하는 경찰들. <에이블뉴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은 올해로 5년째로 접어들었지만 올해도 숙원이 이뤄지기는 글렀다. <에이블뉴스>

정부와 국회의 무관심 속에 장애인차별금지법안이 계류되고 있는 가운데, 경제계의 반대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은 사면초가에 빠져있다. <에이블뉴스>

경제계와의 충돌…“절충점은 없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에 걸림돌은 정부만이 아니다. 경제계마저 이 법에 대해 전면적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나선 상황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기업의 부담이 가중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 반대의 이유다.

경제계는 특히 현재 시행하고 있는 장애인 의무고용제도와 이 법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며,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현행 의무고용제의 폐지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시정명령권 도입 및 이행 강제금 부과,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등은 과도한 조치이기 때문에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는 뜻도 밝혔다.

이 같은 경제계의 입장을 확인한 장추련은 먼저 경제 5단체에 장애인차별금지법 지지에 관한 공개 질의와 회장 면담을 촉구했다. 하지만 5개 단체는 면담을 거부했고, 이들 단체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다시 한번 성명서를 발표해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결국 장애인계는 장추련을 중심으로 경제계에 장차법 제정 인정을 요구하는 투쟁을 시작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계 주요 단체를 차례로 찾아가 점거시위, 옥상고공시위, 1인 피켓 시위를 벌이며 장애인계의 요구사항을 강하게 전했다.

장애인계는 경제계의 반대 논리는 기업이 해야 할 최소한의 사회적 책무도 이행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영자들의 이익만을 위해 소외계층을 차별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경제계의 이기적 논리를 바꾸기 위해 언제까지라도 투쟁하겠다는 뜻도 전달했다.

또한 의무고용제와 장애인차별금지법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경제계의 주장에 대해서는 의무고용제는 취업하기 어려운 보다 중증의 장애인들에게 노동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의 일환이며, 차별금지는 정당한 직업자격을 가진 장애인들에게 가하는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목적과 내용이 엄연히 다르다며 자본논리에 입각한 반대 입장을 즉각 철회하라고 맞섰다. 2달 넘게 계속되고 있는 경제계와 장애인계의 대립은 매듭지어질 기미가 없는 상황이다.

각 정당의 법안 발의, 돌파구 될까?

이 같은 상황에서 장애인 국회의원인 장향숙·정화원 의원이 뒤늦게 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발의하겠다고 나서 주목을 끌고 있다. 현재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안은 발의된지 국회로 넘겨진지 7개월만인 올해 4월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로 회부됐지만 아직 본격적인 논의는 시작되지 않고 있다.

다른 정당들의 법안이 함께 발의되면 의원들의 관심을 유도해 국회 내부의 논의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판단 속에 진행되는 특단의 조치이다. 두 의원은 장추련과의 공감대 속에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먼저 열린우리당 장향숙 의원은 지난 9월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장추련과 가진 면담자리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 당론 발의와 연내제정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을 계기로, 법안을 마련했고, 현재 동료 의원들의 서명을 받고 있는 단계다.

한나라당에서는 정화원 의원이 법안을 만들고 있다. 한나라당은 정화원 의원, 한나라당 정조위원장, 한나라당 정책위, 장추련 2명 등이 참여하는 장애인차별금지법 TFT 구성을 제안해왔다. 정화원의원실에 따르면 12월 20일 이전에 공청회를 개최하고 12월 30일 이전에 장차법 발의를 하겠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계획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참여정부의 집권 시기 내에 제정해야 한다는 시기적 부담을 안고 있다. 차기 정부로 미뤄질 경우, 이 법안의 제정에 대해 호의적일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장추련 측은 연내 제정을 목표로 투쟁을 전개해왔지만 여러 가지 상황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실정이다. 정부의 실질적인 이행도 이끌어내야 하고, 경제계의 반대라는 큰 벽도 넘어야한다. 무엇보다 이 법을 모르거나 비호의적인 대중들에게는 필요성과 의의를 알려내야 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투쟁이 가야할 길은 아직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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