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선택의 권리’는 욕심?

활동보조, 월 40시간으로는 부족한 이유

2006-12-03     정현석 기자

얼마 전 한 장애인 모임에서 ‘인생을 살면서 비밀을 만들지 못하는 세 종류의 사람’으로 정치인과 연예인 그리고 장애인이라는 말이 나왔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곧바로 뉴스로 만들어지는 정치인과 연예인은 비밀이 없을 법도 하지만 그 자리에 왜 장애인이 들어가야 하는지 몰라 맨 처음에 그 이야기를 꺼냈던 사람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장애인이 비밀이 없어?”

그랬더니 ‘장애가 심한 사람은 신변처리는 물론 그가 학생인 경우 대필까지 해줘야 하니 비밀을 만들 수가 없어서’ 그렇단다. 씁쓸하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가끔 서점에 책을 구입하러 가거나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 먼 길을 가야 할 때 휠체어를 밀어 줄 사람이 필요할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서점에 갔을 경우에는 다른 건강한 사람들이나 장애가 심하지 않아 다른 사람의 도움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는 이들을 제외한 모든 장애인들은 어떤 책이 나왔는지 혹은 무슨 책을 구입할 것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할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다. 오직 동행인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의무만이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휠체어에 앉아 좋아하는 책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보고 싶어도 그와 같이 동행한 일행이 정말 책을 좋아하지 않는 이상 제목만 보고 나와야 하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닌 것이다.

또한 진로문제와 같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경우에도 부모 형제가 아닌 동행인과 함께 가는 경우에는 여유 있는 마음으로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당사자가 아닌 동행인에게 모든 것을 맞추어야 하고 동행인 역시 이동을 도와주기 위한 봉사자(도와주는 데 따른 대가를 지불한 것이 아니므로) 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이렇게 사람이 개인적으로 혼자서 신변 처리를 비롯한 모든 일을 하고 싶을 때 동행인을 의식할 필요 없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로 가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봉사’가 아닌 ‘주체’가 되는 서비스가 바로 활동보조인 제도다.

장애인이 ‘주체’가 되는 것이 활동보조인 제도라면 도움이 필요한 부분 역시 작게는 신변처리에서 크게는 재택근무, 영화관람, 재활을 위한 병원 방문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 역시 더욱 넓어지고 도우미를 필요로 하는 시간 역시 더욱 많아질 것은 분명하다. 이는 곧 ‘자신만의 비밀’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모든 활동들은 장애 여부를 떠나 인간으로써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들임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제시한 활동보조 시간이 월 40시간에 묶여 그대로 통과된다면 이 땅의 장애인들은 인간으로써 살아가는 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활동은 전혀 기대할 수 없이 최소한의 생활만으로 남은 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중중 장애를 가진 사람이 능력이 있어 주 5일제 근무를 하는 기업에 취직이 되었다고 가장해 보자. 이 기업의 경우 근무 시간만을 포함한 것이 1주에 40시간이다. 아침에 일어나 단장을 하고 회사에 출근해 일을 마치고 퇴근하기까지의 시간이 아닌,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오로지 일을 해야 하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밥도 먹지 말고 일만 해야 하는가? 회사 생활에서 혹시 일어날 수 있는 안전사고의 위험에서는 누가 구해줘야 하는가?

만일 ‘활동보조인 주 40시간 제한’이 현실화 될 경우 1달에 1주일만 출퇴근 및 식사 보조를 받을 수밖에 없어 능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의 절대적인 희생이 없는 이상 출근은 불가능하다. 장애인 한 사람을 위해 부모, 혹은 가족이 자신들의 일과를 포기해야 하는 삶은 바뀌지 않는 것이다.

장애인들은 ‘월 40시간만’ 인간답게 살고 싶지는 않다. 다른 사람들과 동일하게 하루 24시간을 자유의 몸으로 살 수 없다 해도 하루에 절반만이라도 인간답게 살고 싶은 것이다. 만약 이런 요구를 배부른 소리라고 일축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에게 묻고 싶다.

“장애인들이 선택의 권리를 갖는 것은 욕심인가?”

*정현석 기자는 에이블뉴스 누구나기자이자 현재 경기도 광명시에서 살고 있는 독자입니다.

[나도한마디!]활동보조인 서비스 자부담 10% 부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