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여성 단독조항 포함 사실상 확정
전반적 공감대 형성…"오늘은 대한민국의 날"
각국 정부와 엔지오, 우리나라에 감사 인사
오는 9월 유엔 총회에 상정될 예정인 국제장애인권리조약안에 장애여성 단독조항을 포함하는 것이 사실상 확정됐다.
국제장애인권리조약 제8차 특별위원회 셋째날인 16일 오전 장애여성 단독조항 신설에 대한 토론에서 거의 만장일치로 장애여성 단독조항 신설이 결정됐다. 장애아동 단독조항도 장애여성 단독조항과 함께 살아남았다.
이 조항의 신설을 제안해 주도적으로 끌고 온 우리나라 정부와 엔지오는 각국 정부대표단과 엔지오대표단으로부터 종일 감사 인사를 받았다. 최소한 16일 하루는 대한민국의 날이었다.
장애여성조항 '트윈트랙 어프로치' 공감대 형성
지난 7차 특별위원회 이후 장애여성 조항은 의장안 6조에, 장애아동 조항은 7조에 자리잡은 상황. 특히 장애여성의 경우, 6조에 단독조항으로 자리잡음과 동시에 조약안 곳곳에 관련 내용을 포진시켰다.
단독조항 신설 제안은 토론과정 속에서 조약안을 성주류화의 관점에서 전체적으로 점검하게 하게 만들었고, 단독조항이외에도 관련 조항에 장애여성 권리보장을 위한 내용을 담아내도록 정리된 것. 이러한 접근방식은 영어 표현으로 '트윈트랙 어프로치'(twin track approach)라고 불려왔다.
현재 6조 단독조항 이외에 서문, 8조 인식개선, 16조 착취, 폭력과 학대로부터의 자유, 24조 교육, 25조 건강, 26조 재활, 28조 근로 및 고용, 28조 적절한 사회 기준과 사회 보호, 29조 정치와 공적 생활 참여, 30조 통계와 자료수집 등에 장애여성 관련 내용이 반영돼 있다.
16일 오전 셋째날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장애여성 조항과 장애아동 조항이 동시에 토론되기 시작했다. 돈 멕케이 의장은 "7차 특별위원회의 결론은 일반 사항에 아동과 여성을 다루면서 동시에 단독조항을 만들자는 것"이라며 "여러분들의 의견을 반영해 수정안을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의장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예멘은 "장애여성과 장애아동의 경우 이중적인 차별과 착취를 당하고 있다"면서 "이것은 우리가 단독조항을 만들어야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고 사실상 지지 발언을 했다.
이어 우리나라 정부대표단은 "장애여성 문제를 단독조항으로 만들어야한다는 것을 오늘 아침에 동의해주셨으면 한다"면서 "최소한으로 수정하는 선에서 텍스트 초안이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돈 멕케이 의장은 "대한민국은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고, 건설적이고 유용한 토의를 이끌어주셨다"고 감사를 표하며, "논쟁을 시작한다기보다 트윈트랙 어프로치를 명확히 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실제 이어진 토론에서 몇몇 내용에 대한 수정제안이 있었지만, 장애여성 조항에 대한 '트윈트랙 어프로치'는 각 국가들로부터 전반적인 지지를 얻었다. 엘살바도로, 케냐, 브라질, 칠레, 태국, 러시아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지지 의사를 밝히며, 초반 분위기가 지지쪽으로 흘렀다.
반대 주도했던 유럽연합도 지지 의사 밝혀
특히 장애여성 단독조항 신설에 대해 지속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혀왔던 유럽연합이 "우리는 장애여성의 권리에 대해 항상 관심을 가져왔지만 별도 조항에는 반대를 했다. 지금 여러 대표단이 별도조항을 원하는 것 같다. 우리도 유연한 입장으로 찬성하도록 하겠다"고 밝히면서 사실상 지지 분위기는 큰 흐름을 형성했다.
이에 대해 돈 멕케이 의장은 유럽연합측에 "별도조항 찬성 발언에 감사 드린다"고 밝혔으며, 뒤를 이어 코스타리카, 수단, 일본, 방글라데시, 미국 등이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렇게 지지 분위기가 굳어지자 다시한번 발언기회를 얻은 우리나라 정부대표단은 "우리의 제안에 동의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밝혔다.
특히 우리나라는 "장애여성조항을 이끌고 온 국내 장애여성그룹과 전 세계 장애여성그룹들에게 축하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초안의 내용이 많이 달라지지 않기 바란다. 다른 대표자들과 함께 논의할 자세가 돼 있다"고 밝혔다. 뒤를 이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가 추가적으로 지지 발언을 했다.
돈 멕케이 의장은 "예전에는 뜨거운 논쟁이 있었지만 이제는 트윈트랙 어프로치를 수용한 것 같다는 것이 오늘 아침에 받은 인상"이라며 "몇 가지 수정 제안이 있었는데, 관심있는 대표단들끼리 모여 비공식 협의에서 논의해 결과물을 본회의로 가져오면 다시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의장이 발언이 끝난 이후, 전 세계 장애인 엔지오의 연합체인 IDC(International Disability Caucus)는 "우리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고 있다"면서 "우리모두 대한민국 대표단에게 감사의 표현을 해야할 것 같다. 굉장히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회의에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열린우리당 장향숙 의원과 한나라당 정화원 의원도 함께 하며, 정부 대표단과 엔지오 대표단을 격려했다. 장애인 대표 국회의원인 두 의원은 지난해 8월 열린 6차 특별위원회에 참석해 장애여성 조항에 대한 홍보활동을 벌였던 인물들이다.
정부-엔지오 자축 만찬…긴장 늦추지 않기로 결의
이날 모든 일정을 마치고 우리나라 정부대표단과 엔지오대표단은 유엔 컨퍼런스센터 인근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며, 자축의 시간을 가졌다. 주 유엔 대한민국 대표부와 장향숙, 정화원 의원이 마련한 자리였다.
외교통상부 국제기구정책관 강경화 국장은 "4차와 5차 특별위원회를 거치면서 사실상 성사가 안되는 분위기로 흘렀는데,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엔지오들의 열정으로 오늘의 성과를 이뤄냈다"고 엔지오에 공을 돌렸다.
이석구 한국DPI 국제협력국장은 "이번 성과는 정부와 엔지오가 합심해서 이룬 모범적인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면서 "국내 정책에서도 정부와 엔지오가 파트너십을 발휘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우리나라 대표단은 최종안을 작성하는 내주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막판 뒷심을 발휘하기로 결의했다. 당장 17일 점심시간을 활용해 장애여성조항에 대한 사이드 이벤트를 열어 현재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이날 장향숙 의원과 정화원 의원은 우리나라 대표단에게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며 격려금도 전달하기도 했으며, 17일 사이드 이벤트에도 참가해 장애여성조항에 대한 각국의 지지를 호소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