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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거불능’도 이해 못 하는 대한민국 법원
장애여성들 “장애자체가 항거불능”…무지 비판
‘법원 이해 못하니 아예 법개정’ 서명운동 진행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05-07-04 09:40:15
정신지체장애여성을 성폭행한 50대 남성이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을 계기로 성폭력특별법의 ‘항거불능’ 조항을 개정하기 위한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여성장애인단체들이 이번 사건의 판결을 규탄하는 시민들의 서명을 받고 있으며, 온라인상 장애인모임에서도 자발적으로 ‘항거불능’ 조항 개정을 위한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이번 기회에 항거불능 조항을 기필코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항거불능’은 성폭력가해자 처벌에 걸림돌

지난 4월 부산고등법원은 울산에서 동거녀의 딸인 정신지체장애여성(19)을 5년간 지속적으로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에 대해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판결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다’는 것을 무죄판결 이유로 들었다.

사실 ‘항거불능’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는 성폭력특별법 제8조(장애인에 대한 간음 등)는 성폭력 상황에 대처할 능력이 비장애인에 비해 취약한 장애인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별도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실제 법 적용에 있어 ‘항거불능’은 장애여성이 성폭행 상황에서 저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상태에 있었음을 입증해야 하는 것으로 확대 해석돼 성폭력가해자를 처벌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박세환 의원 개정안 냈으나 환영 못 받아

이와 관련해 지난 5월 말에는 한나라당 박세환 의원에 의해 성폭력특별법의 항거불능을 다른 용어로 수정하는 개정안이 발의됐다.

박 의원의 개정안은 현재 법상에 “신체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 여자를 간음하거나 사람에 대하여 추행한 자”라고 명시된 부분을 “신체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로 정상인과 같은 합리적 또는 진지한 저항이 곤란하거나 불가능한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 간음하거나 사람에 대하여 추행한 자”로 바꾸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여성장애인들은 박 의원의 개정안에 대해 잘못된 접근방식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서울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신희원 소장은 “‘합리적 또는 진지한 저항’은 항거불능이 의미하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성폭행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장애여성이 심각하게 항거를 해야만 가해자의 죄가 인정된다고 보는 것 자체가 남성 중심, 비장애 중심의 사고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항거불능’에 대해 신 소장은 “장애는 이미 그 자체로 항거불능이다. 재판부에서 장애와 항거불능을 분리해서 해석하기 때문에 성폭력자들을 처벌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는 장애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재판부의 무지에서 비롯된다”고 꼬집었다.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 배복주 소장은 “현행 성폭력특별법에 명시된 ‘항거불능’은 ‘장애를 이용하여’라는 용어로 바꿔 우선 장애여성 성폭행자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현재의 법은 성관계에 대한 이해 자체가 부족하다. 성폭력 범죄의 성립여부에 있어 중요한 것은 ‘저항의 유무’가 아니라 ‘동의의 유무’라고 본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성폭력특별법 개정이 이뤄져야 하며 장애유형이나 특성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학생들이 항거불능 개정에 동의하는 서명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스파인2000>
▲학생들이 항거불능 개정에 동의하는 서명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스파인2000>
“이번 기회에 법 바꾸자”…서명운동 활발

여장연에서는 현재 울산 정신지체장애여성 성폭행 사건에 초점을 맞춰 항소심 판결을 규탄하는 시민들의 서명을 받고 있다. 여장연 관계자는 “시민들의 서명을 진정서와 함께 대법원에 제출할 계획”이라며 “대법원 상고에서 법리해석의 잘못을 밝혀 울산 성폭행 사건에 대한 부산지법의 판결을 뒤집으려고 한다”고 밝혔다.

장애아동돕기 인터넷모임 스파인2000(cafe.daum.net/spine2000)도 성폭력특별법 제8조 개정을 위해 인터넷 서명운동과 길거리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스파인2000의 운영자 왕태윤씨는 “지난 4월 20일 울산 정신지체장애여성을 성폭행한 가해자가 재차 무죄판결을 받고 풀려나는 것을 보고 서명운동을 진행하게 됐다. 사건의 피해자는 1999년 사고 당시 14살이었다. 항거불능 조항은 장애유형과 등급에 따라 세분화되는 방향으로 개정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왕씨는 시민들이 인터넷 서명을 통해 남겨준 글들을 모아 정리해 탄원서를 작성,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주요단체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길거리 서명운동은 법개정의 필요성을 시민에 알리기 위해 진행하고 있으며 현재 5천여명이 서명한 상태라고 전했다.
 지난 6월 4일 대학로에서 성폭력특별법 개정을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한 스파인 2000의 단체사진.<사진제공 스파인 2000>
▲ 지난 6월 4일 대학로에서 성폭력특별법 개정을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한 스파인 2000의 단체사진.<사진제공 스파인 2000>

김유미 기자 (ablenews@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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