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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장애여성운동 어디까지 왔나
마르카 브리스토 여사 기조강연 전문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05-04-07 16:40:40
마르카 브리스토 여사. <에이블뉴스>
▲마르카 브리스토 여사. <에이블뉴스>
마르카 브리스토에게 배운다③

지난 3월 29일 정립회관 강당에서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주최로 열린 한·미장애인자립생활워크숍 강연에서 마르카 브리스토 여사는 미국의 장애여성운동이 고민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소개했다. 특히 자립생활운동에서 장애여성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대해, 여성운동에서 장애여성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대해 전해줬다. 에이블뉴스 지면을 통해 마르카 브리스토 여사의 강연 전문을 소개한다. 장애여성들과 마르카 브리스토 여사 사이에 오고간 문답이 후속 기사로 이어질 예정이다.

장애여성의 성은 부끄럽지 않다

자립생활은 굉장히 개인적이어서 내부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여성과 관련된 이슈도 굉장히 개인적이다. 역사적으로 장애여성은 성적인 존재로 간주되지 않았다. 그래서 장애여성들은 부모가 될 수 없다, 좋은 아이를 기를 수 있는 부모가 되기도 부족하다는 말을 들어왔다. 그리고 장애여성들은 가정폭력의 희생자가 되어왔고, 가족이나 배우자, 활동보조인들의 폭력의 대상이 되어왔다. 장애여성들은 특히 의료서비스 접근성이 열악했다. 그나마 있지도 않았다.

병원에 의사를 만나러 가는데 접근할 수도 없었고, 장애여성을 성적인 존재로 보지도 않았다. 나는 여성의료 클리닉에서 간호사로 일했다. 그 당시 한 장애여성, 말이 가능하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의사소통을 하지 않고 강제 불임시키는 것을 봤다. 또한 장애여성 엄마들에게서 법원의 결정으로 아이들을 뺏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양육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장애여성을 나타나지 않게 숨기고, 장애여성의 성을 부끄러운 것으로 여겨왔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신화를 실제로 있는 것처럼 믿는 것이다. 미국의 사회학 용어 중에 ‘내재적 억압’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가 이 부끄러움을 깰 수 있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성적인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역사회에 서비스를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자립생활운동, 남성 치우침 경계해야

개인적인 측면일 수 있는데, 장애인운동 내의 장애여성 이슈를 말씀드리겠다. 자립생활센터 서비스가 남자 중심으로 개발된다. 여성장애인에게 차별적이거나 억압적인 시스템을 장애여성 본인들이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초기 자립생활운동에 있어서 남성들은 중요한 프로그램을 운용하거나 주관했다.

자립생활운동에서 여성의 중요한 측면을 간과하는 면이 있다. 물론 나는 과잉 일반화하기는 싫지만 여성장애인들의 대부분은 많은 아이디어들에 대해서 토론을 거쳐 합의를 이끌어 내고자하는 경향이 있다.

남자들은 다른 상이한 의견들에 대해서 받아들이고 합의를 구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럴 여지도 별로 없는 것 같다. 한 가지 스타일이 좋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리더들 가운데 여성이 없다면 여성스타일과 남성스타일을 혼합해서 가져보는 기회를 잃게 된다.

여성스타일과 남성스타일이 다르지만 합쳐진다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 많은 변화가 있어왔다. 자립생활센터에 점점 더 많은 여성대표들이 세워지고 있다. 오히려 남자가 자립생활영역에 덜 들어오는 경향이 있다.

여성운동은 장애여성을 빼놓고 진보했다

지금부터는 여성운동과 장애여성운동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드리겠다. 미국에서 여성운동은 40년 전부터 시작됐다. 그동안 미국에서는 여성운동의 결과로 큰 진보를 일궈왔다. 고용에 있어서 여성차별이 좁혀지고 있고, 대학졸업 숫자도 여자가 남성을 능가하고 있다. 특히 법이나 의료 등 전문직종에서 여성이 남성을 능가하고 있다.

한 가지 여성이 넘지 못하는 장벽이 있다면 대기업 대표, 이사직 등이다. 문제는 여성운동을 통해서 이룬 업적들로 여성이 혜택을 받는데 장애여성들만 제외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운동과 같은 여성장애인의 발전은 없었다. 미국은 장애인의 70%가 일하고 있지 않다. 여성, 흑인, 히스패닉의 경우는 80~90%가 고용상태에 있지 않다.

우리의 운동을 여성적 관점으로 올려놔야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도전이다. 그런데 그 운동은 힘을 잃어가고 있다. 여성운동에서 일궈놓은 업적 때문에 젊은 여성들이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장애여성을 위한 단체들이나 기관이 있지만 장애여성들을 끌어들이는데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래서 최근에는 ‘나우’(전미여성연합)가 특별히 장애여성을 위한 위원회를 만들어 장애여성을 흡수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런 결정을 하게 된 이유는 왜 장애여성들이 왜 우리가 흡수되지 못하느냐며 데모를 했기 때문이다.

여성운동에서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주요한 이슈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여성이라는 이유로 함께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가정폭력 프로그램이 여성단체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여성단체들이 장애여성을 위한 접근성은 확보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여성단체들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장애여성을 차별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가정폭력 피해자 쉼터들은 대부분 비밀 장소에 있다. 가해자인 남성이 접근할 수 없도록 하기위한 조치이다. 쉼터에 올 때 본인만 와야 하는데 장애여성은 활동보조인이 있어 문제가 된다. 제3자가 알면 안 되는 정책이어서 활동보조인이 있는 장애여성은 접근하기가 힘들다.

마르카 브리스토 여사가 강연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에이블뉴스>
▲마르카 브리스토 여사가 강연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에이블뉴스>
장애여성에 대한 폭력의 형태가 항상 신체적인 것만은 아니다. 남편이 장애여성을 학대할 때 휠체어를 뺏는다든가 일을 나가면서 문을 잠가 놓고 나가면 침대에서 나오지 못하게 된다. 이런 식의 학대는 때린 것과 거의 똑같은 영향이 발휘한다. 움직이지 못하면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때린 것과 똑같은 심각한 영향이 온다.

그것도 역시 가정폭력이라는 것을 여성단체 쉼터에 이해시키는데 수년이 걸렸다. 장애여성이 학대문제 때문에 법정에 가게 되면 법정 판사들이 남성을 측은히 여긴다. 결국은 이런 시스템 안에서 장애여성을 갈 곳이 없어진다.

여성운동과 장애여성운동과 다른 점은 낙태와 관련된 것이다. 많은 장애여성들이 활동가적인 정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이를 낳을 권리, 낳지 않을 권리에 동의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미국의 의료시스템 상에서는 장애여성이 장애아를 임신하고 있다면 검사를 통해 발견되면 낙태를 권한다.

장애여성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면 여성단체들은 당신들은 여성의 낙태할 수 있는 권리를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지금의 장애여성들의 엄마가 장애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태어나지 못했을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작은 지원이 인생을 변화시켰다

그래서 이런 모든 종류의 이슈들은 개인적이기도 하고 사회적이기도 하다. 해결책은 우리에게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젊은 장애여성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의 성적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시카고 엑세스 리빙센터에는 장애소녀를 위한 여성 지원그룹이 있다. 이 그룹은 산하제한과 같은 것도 실질적인 방법으로 가르친다. 처음 산부인과에 갈 때 약속을 잡는 것도 알려준다. 여성장애인들의 느낌이나 감정을 소통할 수 있도록 안전한 장소를 제공하고, 남성들의 성적 희롱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간단한 실천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변화를 일으키는지 놀랐다. 지원그룹의 한 소녀가 비디오를 만들었다. 이 비디오는 장애여성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해서 만들었다. 그 비디오에는 장애여성이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과 똑같이 대우받지 못하는, 예를 들어 밤에 여자친구네 집에 초대받지 못하는 얘기들이 담겼다.

세상에 나밖에 없는 것 같은 외로움을 비디오를 통해서 공유했다. 자신들이 가졌던 부끄러움, 죽고 싶었던 마음이 표현됐다. 그러면서 놀랄만한 일이 일어났다. 비디오를 보다보면 장애여성들이 서로 웃는 장면, 성적인 것을 갖고 서로 놀리고 농담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와 같은 나이의 여성들은 ‘부끄러워하지 말아라’, ‘관계나 결혼에 대해서 드러내놓고 얘기하라’고 격려했다. 그 소녀들이 자신들이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다른 소녀들에게도 도움을 주기를 원한다.

그 그룹에 참여했던 소녀들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한 명은 대학에 진학했고, 한 명은 국회의원 비서관이 됐다. 또 다른 한 명은 둘째아이를 임신했다. 그리고 이 장애여성들이 젊은 소녀들을 돕기 시작했다.

이러한 작은 예들은 조그만 자원을 갖고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교훈을 가르쳐 줬다. 그래서 자립생활센터는 장애여성을 위한, 장애여성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할 것인가?

“우리는 같이 갈 수 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여기에 참석하지 않은 다른 여성들에게 도움을 주라는 것이다. 미국과 한국이 문화가 다르다. 문화적 이슈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조심하라. 문화적인 차이라는 구실이 여러분을 억압하는 구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여성운동이 미국에서 처음 시작됐을 때, 평등권을 주장하니 우리 문화와 맞지 않다면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가 다시 돌아왔을 때 많은 장애여성들이 커다란 역할을 하는 모습을 보기를 기대한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여성운동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그 여성운동가가 “당신이 어디든 갈 수 있을 때까지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장애여성들의 권리가 발전되지 않은 한 자신들도 앞서서 자신들끼리만 가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우리는 같이 갈 수 있다.

소장섭 기자 (ablenews@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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