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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나의 영원한 연구대상입니다
승혁이의 기묘한 버릇에 대한 연구보고서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03-08-01 14:43:41
하수구를 열심히 들여다보는 승혁이
▲하수구를 열심히 들여다보는 승혁이
모든 부모가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의 행동에 놀라워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화를 내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많은 것을 배웁니다. 자식이 부모의 스승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도 승혁이를 키우면서 많은 것을 느낍니다.

아무런 이상이 없는 보통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에게도 가끔은 도저히 부모로서도 이해할 수 없는 아이의 모습이 보이곤 하겠지만 승혁이처럼 발달지체를 가진 아이의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승혁이가 만 36개월 무렵부터 또래 아이들에 비해 뚜렷하게 지체되는 경향을 보이면서 문제행동들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과의 의사소통이 전혀 안되니까 제딴엔 말을 걸기 위해 친구들을 때립니다. 그렇다고 상처가 나거나 친구가 울만큼 세게 때리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애정'이 너무 지나쳐 힘이 가해지는 경우 순식간에 어린이집에 있는 선생님들을 곤란하게 할 정도로 승혁이의 돌발적인 행동은 아이들의 공동질서를 무너뜨릴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다른 친구를 때리면서 '상호작용'하려는 의지가 좌절되니까 며칠 후엔 바닥에 침을 뱉기 시작했습니다. 이 또한 말에 의한 의사소통대신 침 뱉는 행동으로써 또래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이었습니다. 이번에도 또 한번 어린이집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당장 승혁이로 인해 바닥이 더러워진다고 여자아이들의 불만이 커졌습니다.

그러기를 수개월 째 한동안 승혁이의 침 뱉는 버릇은 의사소통을 위한 유일한 수단으로 시작되어서 나중엔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누군가가 시킬 때 거부의 표시로 행해졌습니다. 특히 언어치료수업을 처음 받기 시작할 무렵 승혁이의 이 행동 때문에 첫 한달 간은 수업은커녕 승혁이가 침 뱉은 자리를 휴지로 닦느라 시간을 다 보낼 정도였습니다.

수개월이 지난 후 언어치료수업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이번엔 수업에 대한 의무감은 있으면서도 슬슬 꾀가 나기 시작했는지 수업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면 혀로 입 주위를 한바퀴 뱅 돌립니다. 또 왠지 어색한 순간이라고 느껴지는 때에도 어김없이 혀는 승혁이의 입 주위를 한바퀴 돌아갑니다. 치 아이스크림 CF에서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마지막으로 햝아먹는 듯한 모습으로 말입니다.

하루종일 틈만 나면 입 주위를 혀로 핥곤 해서 나중엔 입 주위가 동그랗게 벌건 자국이 생겨 한때는 어린이집에서 '산적'이라는 별명이 생겼다고 해서 선생님과 걱정스러워하면서도 웃기도 했습니다.

언어치료수업을 받기 시작한지 이제 일년이 좀 넘었습니다.

도저히 치료효과가 나지 않을것만 같았던 작년에 비하면 이제는 지나가는 자동차를 보면 저에게 손짓을 하며 '자도차'하고 어설픈 발음이지만 열심히 외쳐보고 틈만 나면 자기가 아는 단어들을 모조리 머릿속에서 꺼내놓으려는 듯 연달아 되뇌이곤 합니다.

그런 승혁이의 모습을 보면 정말 뿌듯하고 대견해지면서도 한편으론 걱정이 이어집니다. 전에 비해 언어발달은 많이 좋아졌는데도 여전히 승혁이의 '기괴한' 버릇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하수도구멍을 유심히 보길 좋아합니다. 승혁이와 동갑내기 여섯 살짜리 아이들이 문방구 앞에서 백원짜리 오락이나 무슨 만화주인공들이 그려진 카드 모으기, 컴퓨터 게임에 빠져있는 동안 승혁이의 관심사는 오로지 하수도 수채구멍 아래서 흐르고 있는 물에만 온통 신경이 가 있습니다.

길을 가다가도 갑자기 주저앉아 하수도 구멍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승혁이를 행여나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게 되면 사실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합니다. 또 가끔은 누군가가 큰 소리로 "얘, 왜 이래?"하고 정말로 승혁이가 이상하다는 듯이 더 주의를 기울여 쳐다보게 되면 당당하게 승혁이를 키우겠다는 결심은 어디론가 숨어버린 채 저도 어쩔 수 없이 제발 승혁이가 '정상적으로' 행동해 주었으면 하는 심정이 되버리고 급기야는 좀 심하게 야단을 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에게 "안돼"하는 말을 가장 싫어하는 승혁이로서는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하수도물 들여다보기'를 제지하는 엄마가 원망스럽게만 느껴지나 봅니다. '왕'하고 큰소리로 울음을 터뜨리고 너무 억울하다는 듯이 자리에서 콩콩 뛰며 어쩔 줄 몰라하면서 소리까지 지릅니다.

그래서 아홉 번에 한 번쯤은 그냥 야단을 치지 않고 승혁이가 하수도물을 바라보게 내버려둡니다. 그러면 승혁이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채 가장 진지한 얼굴로 아예 몸을 바싹 수채 구멍에 기울인 채 열심히 하수도물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승혁이가 그런 행동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승혁이를 어린이집에 바래다주는 매일 아침마다 들르게 되는 아파트 단지가 있습니다. 그곳으로 가면 차도 잘 안 다니고 어린이집을 가는 지름길이기에 그 길로 자주 다닙니다. 아파트 단지내 보도에는 배수가 잘 되도록 가장자리에 일정하게 배수통로를 만들어놓아 그 통로밑에는 늘 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 물을 보면서 제가 늘 "승혁아 물 해봐. 물." 하곤 외쳤더니 처음엔 아무 말이 없다가 몇 달 후엔 '무우-울'하고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물'이라는 말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배수구멍만 보면 '물'해댔으니 그것이 승혁이에게도 무척 중요한 관찰거리가 되버렸던 거였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승혁아 지지'하고 야단만 쳤으니 비로소 저의 아들에 대한 무지함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절대로 다른 부모들보다 육아에 대해 더 아는 것도 없고 제대로 잘 해주지도 못하면서 힘들어하는 게으른 부모인 저로서는 장애아를 키우는 일만으로도 벅찬데 그 아이의 마음을 '연구'하면서 키워내야 한다는 사실에 새삼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래도 자식의 마음을 가장 많이 헤아려야 하는 것이 부모로서의 의무라면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늦게, 다르게 출발하기 시작해 앞으로 갈 길이 멀기만 한 승혁이에게 하수도물 보기같은 사소한 관찰거리도 어쩌면 승혁이 자신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줄 수도 있음을 이해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처럼 장애아를 키우는 다른 모든 분들도 아이가 가끔 '기괴한' 행동을 할 때 야단을 치기보다는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아이편에 서서 한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것이 제가 승혁이를 보면서 내린 결론입니다. 장애아를 키우시는 모든 부모님들! 우리모두 아이에 대해 열심히 연구합시다!

누구나기자 임선미 (ablenews@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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