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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는 왜 두개가 있을까
한쪽 귀 장애도 장애인으로 인정해야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03-12-11 10:24:24
<사진:귀의 구조/보청기 정보 사이트>
▲<사진:귀의 구조/보청기 정보 사이트>
금년도 대입 수능시험에서 정답이 2개라는 복수정답 문제로 파문이 일고 있다. 그런데 그 문제는 5개의 답이 주어진 객관식 문제였다.

어느 선생이 학생들에게 눈이 두 개인 이유를 물었다.
(1)눈이 하나면 도깨비처럼 보이고 이상하니까.
(2)한쪽 눈을 다쳐서 못쓰게 되더라도 다른 한쪽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필자가 보기엔 두 개다 정답이다. 그러나 선생이 가르치려는 것은 따로 있었다. 사람은 두 눈으로 목표물까지의 거리를 알 수 있음을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 두 눈을 다 못 쓰게 된 경우 당연히 장애인이다. 그러나 한쪽 눈을 못 보게 되더라도 (1)번 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히고, (2)번 처럼 한쪽 눈이 없어 다른 한쪽 눈으로 생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사물의 원근을 잘 몰라서 불편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럼에도 몇년전까지만 해도 한쪽 눈 실명자는 장애인에 해당이 되지 않았다.

필자가 전에 일하던 단체에서 한쪽 눈 장애도 장애인으로 인정해줄 것을 여러차례 건의 한 결과 1998년부터 한쪽 눈 실명자도 시각장애 6급으로 장애인등록이 가능해졌던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에게 귀가 두개인 이유는 무엇일까.
귀의 내부에는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기관도 있지만 귀는 소리를 듣는 역할을 한다. 두개의 눈이 거리의 원근을 위해서라면 두 개의 귀는 소리의 방향을 알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귀가 하나밖에 없다면 소리의 방향을 알 수 없다. 귀가 양쪽에 있으므로 소리가 귀에 들어오는 데 미묘한 차이가 생기고, 그 차이를 뇌가 접수하면 소리의 방향을 알 수 있게 된다. 즉 소리가 입체적으로 들리는 것이다. 양쪽 귀에 같은 강도로 들렸다면 그것은 바로 정면에서 온 소리이고 왼쪽 귀에 강하게 들리면 왼쪽에서 들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이 인간의 몸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은 각각의 기능과 역할을 잘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인데 다섯개의 손가락 중에서 새끼손가락 하나만 장애가 있어도 물리적 불편은 물론이고 심리적으로도 엄청난 상실감에 빠지게 된다.

더구나 한쪽 귀의 청력을 상실하였다면 한쪽 눈을 상실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생활에서는 낙인이 찍히고 생활하는데도 불편할 뿐더러 심리적 상실감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필자가 운영하는 상담실이 2002년 9월에 문을 열었는데 1년 남짓 기간동안 1400여건의 상담중에 한쪽 귀 장애에 대한 상담이 60건을 넘고 있다.

그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한번 들어보자
한쪽 귀가 안 들리기 때문에 군 면제는 받았는데 입사원서를 내려면 [군필자]가 붙어 다녀 엄두도 못내는 경우가 많다. 대기업 신체검사에서 떨어졌다. 사람들하고 이야기하는 게 두려워서 거의 혼자 지낸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 할 때 잘 안 들리므로 자꾸 되물어 보면 짜증을 낸다. 길거리에 차가 지나가면서 경적을 울리면 어느 쪽에서 나는 소리인지 몰라서 우왕좌왕하게 된다. 안 들리는 쪽으로 다가와서 귀속말을 할 때는 거의 돌아버릴 지경이다. 그래서 어떤 이가 스스로 터득한 방법은 어디선가 소리가 나면 무조건 빙그르르 360도 즉 한바퀴를 돌아본다는 것이다.

한쪽 귀의 청력을 상실했을 때 제일 큰 문제는 대화에 대한 두려움인 것 같다. 물론 전혀 들리지 않는 농인들에 비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어떤 이는 차라리 아예 안 들린다면 포기라도 하겠다는 자조적인 푸념이다.

갖가지 질병이나 사고로 한쪽 청력을 상실한 사람들이 많다. 현행 장애인복지시책이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아닐지라도 현실적으로 장애를 느끼고 있음에야 심리적인 보상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쪽 귀의 청력상실은 왜 장애인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것일까.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함께 살아가야 할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그 사회속의 구성으로써 이처럼 장애를 느낀다면 한쪽 귀 장애도 당연히 장애인등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각장애처럼 다른 쪽 청력에 상관없이 한쪽 귀가 80데시벨 이상이면 6급은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관계당국이 이같은 국민들의 어려움과 하소연에 정말 귀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모두 바른 소리를 듣기 위해 <들음의 길 위에서>라는 이해인님의 시를 한번 들어보자.
정확히 듣지 못해
약속이 어긋나고
감정과 편견에 치우쳐
오해가 깊어질 때마다
사람들은 저마다 쓸쓸함을 삼키는
외딴 섬으로 서게 됩니다.

잘 들어서
지혜 더욱 밝아지고
잘 들어서
사랑 또한 깊어지는 복된 사람
평범하지만 들꽃 향기 풍기는
아름다운 들음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누구나기자 이복남 (ablenews@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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