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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 되고서야 소원을 이루다

지체장애1급 이태영 씨의 삶-①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5-08-24 14:21:15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 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이 시는 강은교의 ‘사랑법’이다.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남은 시간은 침묵하며 서둘지 말라고 시인이 얘기하는 것은 사랑법이지만 어쩌면 사랑법이 아니라 인생법 같다.

이태영 씨.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이태영 씨. ⓒ이복남
서둘지 말고 침묵하라고 했는데 그는 서둘렀고 침묵하지 않았다.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라고 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랬는지 아무튼 그에게 사단이 났다. 그는 언제나 앞만 보고 달려 왔는데 가장 큰 하늘은 그의 등 뒤에 있었던 모양이다.

이태영(1956년생) 씨가 태어 난 곳은 전라남도 목표시 죽교동 유달산 아래이다. 아버지의 고향은 평안남도 덕천이라고 했다. 1930년대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자녀들만 데리고 고향을 떠나 남으로 내려 왔고 정착 한 곳이 목포였다. 아버지는 4남 1녀의 셋째인데 그 때가 아홉 살이었단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얼마 안 되어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할머니 홀로 보따리 장사를 하면서 다섯 남매를 키웠다.

“아버지가 공부는 많이 하지 못했지만 아주 잘 생기셨습니다.”
아버지가 총각 때는 많은 사람들이 남편감 그리고 사윗감으로 탐을 냈단다.

“제가 어렸을 때 사람들이 어머니를 솜리댁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머니는 익산(익산의 옛이름이 이리이고, 이리의 옛이름이 솜리이다.)의 갑부 딸이었는데 외할머니는 아버지에게 한 밑천 떼어주고 사위로 삼았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처가에서 해준 밑천으로 방직공장을 차렸다. 방직공장은 직원들이 50여명이나 되고 제법 잘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머니가 회사 물건을 도매상 등에 납품을 하면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부도가 났다. 전 재산을 다 날리고 빈털터리가 된 모양이다.

“목포 동국민학교를 다녔는데 1학년 겨울 방학 때 다섯 식구가 완행열차를 타고 서울로 갔습니다.”

서울에는 외삼촌이 장사를 하고 있어서 처음에는 외삼촌 집을 찾아 갔다.

육군 합창단 시절.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육군 합창단 시절. ⓒ이복남
“외가가 부자라고 했는데 그 때는 망했는지 외삼촌이 얻어 준 집은 하꼬방이었습니다.”
처음에 살았던 곳은 아현동 산7번지였다. 그는 한서국민학교를 다녔다. 날만 새면 일하러 가시는 부모님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몰랐다.

“공부는 별로였고 운동은 잘 했는데 그 무렵 알리가 유행이었습니다.”
1964년 2월 캐시어스 클레이가 새 챔피언으로 등장했으나, 클레이가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을 했다.

“싸움은 잘 했으니까 세계 챔피언을 바라보고 복싱을 했습니다.”

중학생이 되면서 신설동에 있는 권일도장을 다녔는데 김기수 도장이라고 했다. 알리는 헤비급이었으나 1966년 주니어미들급에서 김기수가 세계 챔피언이 되었던 것이다. 그도 김기수를 보면서 챔피언의 꿈을 키웠다.

“할아버지도 고향에서 교회를 다녔다고 하시던데, 서울로 이사를 와서 염리교회를 다녔습니다.”

약혼자와 부모님 그리고 친구들.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약혼자와 부모님 그리고 친구들. ⓒ이복남
교회를 다니면서 크리스마스 때는 연극에서 돌아온 탕자 역을 하기도 했다. 교회를 다닌 덕분인지 미션스쿨인 영락중학교와 장충고등학교를 다녔다. 집은 몇 번의 이사 끝에 창신동에 살았는데 어느 날 탁구장에 온 사람들이 창신교회 사람들이었다. 그도 같이 탁구를 하면서 창신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도장에서 복싱하고, 교회도 열심히 다녔다. 챔피언의 꿈을 키우면서도 교회를 열심히 다닌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었으니 교회에 가면 그가 사랑했던 여학생 A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A를 좋아 했지만 차마 말을 못했고, A는 그를 친구처럼 허물없이 대했다. 그러면서 A와 같이 공부도 하고 탁구도 치면서 친하게 지냈다.

그동안 아버지는 노가다를 하시고 어머니는 직장도 다니다가 장사도 하는 등 여러 가지를 하셨는데 그가 고1이 되자 어머니는 장춘단 공원으로 그를 데려 갔다. 그는 대학보다는 챔피언이 되고 싶었는데 어머니는 절대로 안 된다고 했다.

첫째는 챔피언이 되기에는 키가 너무 작다고 했다. 그의 키는 160이라 아무리 복싱을 잘 한다해도 그 키로는 챔피언이 되기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 현재는 170인데 고3쯤에 컸다고 했다. 그리고 텔레비전에서 보면 권투선수들은 늘 얻어맞아 피가 터지던데 어머니는 죽어도 그 꼴은 못 보겠다며 공부를 하라고 했다. <2편에 계속>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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