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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살아생전에 결혼도 못하고
청각장애 2급 임희규 씨의 삶-②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6-06-22 15:20:01
그에게도 학령기는 찾아왔다. 부모님은 그를 근처 일반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

“안 들렸지만 1학년 때 여자 선생이 친절해서 그냥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런데 2학년이 되면서 남자 선생이 공부 못한다고 어찌나 야단을 치던지 무서워서 학교에 다니기가 싫었다.

아들하고 세식구.  ⓒ이복남
▲아들하고 세식구. ⓒ이복남
“고모가 송도에 농아학교가 있다고 해서 부산맹아(盲啞)학교 1학년에 입학을 했습니다.”

그는 기숙사에서 살았다. 공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고 수화를 배울 수가 있어서 좋았다. 학과시간에는 수화를 가르치지 않았고 상급학년 선배들에게서 배웠다. 제일 처음 알게 된 수화는 제비였다. 제비는 1지 2지 4지를 펴서 손바닥이 아래로 향하게 하여 비행기가 나는 것처럼 포물선을 그린다. 그 다음에 배운 것이 배인데 배는 양손바닥을 펴서 4지(새끼손가락)을 맞대어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제비나 배를 어떻게 처음 배우게 되었을까.

새 학기가 시작되고 하늘에는 제비가 날아다니고 송도 앞 바다에는 배가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강주수 통역사의 설명에 의하면 농인들이 처음 수화를 배울 때는 사물을 보고 그 형체를 본떠서 만든 수화는 빨리 배우는데 사랑이나 선생 등 추상명사는 잘 모른다고 했다.

음악시간에는 타악기를 배웠는데 잘 못한다고 선생에게 많이 맞았다.

“지금도 음악은 잘 모릅니다.”

어렸을 때 장래 희망은 무엇이었을까.

“전기기술자나 과학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안 돼!”

누가누가 똑같나.  ⓒ이복남
▲누가누가 똑같나. ⓒ이복남
농인은 전기기술자나 과학자가 될 수 없다며 선생은 그의 꿈과 희망을 여지없이 뭉개버렸다. ‘나는 안 되는 모양이구나.’ 선생의 부정적인 거절로 실의에 빠졌지만 자신의 처지를 알기에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 때 선생이 제게 용기와 격려를 주었다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과학자에 대한 꿈은 차마 저버릴 수가 없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미국 유학을 가고 싶었다.

“아버지에게 갈로뎃 대학을 가겠다고 했더니 형편이 안 되어서 못 보낸다고 했습니다.”

<미국의 워싱턴 DC에 있는 갤로뎃 대학교 (Gallaudet University)는 1864년에 설립되었으며 세계유일의 농인대학교이다. 대학에는 40개 이상의 학과가 있는데 학부에는 청각에 문제가 있는 사람만 입학 할 수가 있으며 학생들은 세계 각국에서 유학을 오는데 모든 강의는 수화로 진행된다. 학내 경비원이나 청소원, 스쿨버스 기사도 주고받는 대화도 모두가 수화다. 물론 미국수화다. 그리고 건청인은 대학원의 석‧박사 과정만 입학이 가능하다. - 필자 주>

딸하고 세식구.  ⓒ이복남
▲딸하고 세식구. ⓒ이복남
결국 갤로뎃 대학에의 유학의 꿈은 무너졌지만 한국에서 대학을 가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음성으로 진행되는 강의는 알아듣지도 못 할 테니까.

배화학교 졸업 후 선배의 소개로 수제화 공장에 다녔다. 2년 쯤 다니기는 했지만 일에 대해서 특별히 애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2년 만에 월급을 더 많이 준다는 플라스틱 공장으로 옮겼다.

플라스틱 사출공장은 구두 공장 보다 월급이 조금 더 많기는 했지만 그 대신 일이 너무 힘들었다. 구두 공장에서는 자리에 앉아서 신발가피를 만들었는데 플라스틱 공장에서는 하루 종일 서서 커다란 압축 기계를 돌려야 했다.

“2년 만에 플라스틱 공장도 그만두었습니다.”

그는 사람들하고 잘 사귀지 못해서 취직이 힘들었다. 사상 일대 공장을 돌아 다녀 보았으나 대부분이 농인은 안 된다고 했다. 그러다가 한 시계공장에 들어갔는데 월급이 너무 적어서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또 다른 고민이 하나 더 생겼다.

그에게는 배화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여자 친구가 있었다. 그가 고2 때 중학교에 새로 입학한 여학생이었다. 버스에서 자주 만나서 얼굴은 알고 있었다.

“체육시간에 양말이 너무 더러웠는데 학교에서 우연히 그 여학생을 만나서 양발 좀 빨아줄 수 있느냐니까 기꺼이 빨아 주었습니다.”

마이산으로 가족여행.  ⓒ이복남
▲마이산으로 가족여행. ⓒ이복남
그 때부터 그 여학생과 급격히 친해져서 오랫동안 여자 친구로 지냈다. 여자 친구도 학교를 졸업하고 가내공업 회사에서 미싱자수를 놓고 있었다. 그 여학생의 이름은 조순이(1967년생)였다.

그는 직장을 다니면서도 주말이면 조순이 씨를 만나서 데이트를 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고 그는 조순이와 결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나이가 들자 아버지는 맞선자리를 물색했다. 그는 아버지에게 배화학교에서 만난 여자 친구가 있다고 했다.

“너도 농아인데 며느리도 농아냐!”

아버지는 같은 농아끼리는 절대로 안 된다고 했다.

“아버지한테 끌려서 두 번이나 맞선을 봤습니다.”

아버지가 세 번째 맞선자리를 주선하는 것을 알고 그는 서울로 도망을 갔다. 서울에는 시집 간 큰누나가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누나에게 하소연을 했다.

“결혼은 같은 농아끼리 해야지 말도 안 통하는 아사람하고는 하기 싫으니 아버지를 좀 설득해 달라.”

누나는 그의 심정을 이해했는지 아버지를 설득시켰다. 아버지가 불러서 그는 다시 부산으로 내려 왔다.

“너를 이해 못해서 미안하다. 그 여자 친구와 결혼해라.”

아버지에게서 결혼 승낙을 받은 것은 26살의 가을이었다. <3편에 계속>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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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남 기자 (gktkr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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