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03-06-25 15:34:38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말하는 장애인차별-윤정기씨①

“저같이 눈이 곧 귀의 역할을 수행하는 청각장애인도 엄연히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차별받지 않고 사법시험 등 국가시험에 응시가 가능하도록, 토익, 토플, 텝스 등 공인영어시험을 공평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지필시험으로 대체하는 등의 현실적인 정책을 시행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25일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가 개최한 ‘장애인차별실태와 장차법 제정의 필요성’을 주제로한 공청회에 참석해 자신이 겪은 차별경험을 발표하며 한국농아인협회 기획팀 윤정기(38·청각장애2급·장추련 법제위원)씨는 토익, 토플, 텝스 등 대표적인 공인영어시험의 장애인 차별을 지적하며 지필시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윤씨는 경희대 법학과 96학번으로 올해로 8년째 줄곧 사법시험 준비를 해왔으며 앞으로도 사법시험을 볼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러나 내년부터 사법시험 1차 영어시험이 공인영어시험 성적표 제출로 대체됨에 따라 더 이상 응시를 할 수 없게 됐다.

왜냐하면 사법시험에 응시하려면 토플 195점(300점 만점), 토익 700점(1000점 만점), 텝스 625점(1000점 만점) 등 최소한도의 점수를 얻어야하지만 청해시험이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이 시험들에서 청각장애인으로서 이러한 점수를 얻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공인영어시험 대체라는 제도도입 자체의 근원적 정당성의 문제를 떠나 그동안 청각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잘만 응시해오다가 내년도부터 법무부의 영어대체시험 계획으로 하루아침에 응시가 제한되는 암담한 현실 앞에서 나는 우리 사회의 장애인차별이란 높은 벽을 또 한번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졸업도 할 수 없는 심정 아시나요?

공인영어시험에 의한 장애인 차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대학사이에서 늘고 있는 졸업인증제와 관련 일정 수준의 공인영어시험 점수 획득이 필수사항으로 포함됨에 따라 청각장애인의 경우 졸업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윤씨의 경우 졸업을 하려면 토플(PBT) 500점, 토익 600점, 텝스 500점 이상을 획득해야만 했다. 윤씨는 서울대 어학연구소가 주관하는 국내시험인 텝스를 선택해 여러 번의 시험을 치렀으나 청해시험의 벽을 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텝스의 경우 청해시험이 4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 측에서 시험기관측에 지필시험 대체를 요구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제 입장으로선 어떻게든 학교를 졸업해야겠단 일념으로 청해부분을 외면한채 나머지 분야인 문법 어휘 독해부분에 사활을 걸고 연거푸 3번 응시했지요. 그러나 실력도 실력인지라 결국 청해부분(비율 400점)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제 때 패스하여 졸업하지 못한 채 그동안 수료생 신분으로 살았습니다. 이후 4번째로 텝스시험에 응시하여 지난 5월에 겨우 패스해서 이젠 수료생 신분을 면하고 올 8월 말에 철지난 졸업장을 받게 되었지요. 기쁘기에 앞서 왠지 알 수 없는 서글픔이 앞섭니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윤씨만의 것이 아닌 모든 청각장애학생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다. 청각장애인들의 경우 입학은 했으나 졸업은 하지 못해 수료생 신분으로 남게 되는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특히 학교뿐만 아니라 공기업을 포함한 각종 기업체에서도 공인영어시험 성적을 취업의 주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해진다.

해결책은 지필시험 대체…“헌법소원 불사하겠다”

설상가상으로 내년부터 텝스 시험에서 말하기 영역이 추가될 것으로 전해짐에 따라 뇌병변 장애인 등 언어장애인들의 권리침해가 예상되는 등 공인영어시험의 장애인차별이 보다 확장될 위기에 놓여 있다.

이러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윤씨를 비롯한 청각장애인들이 제시하고 있는 해결책은 공인영어시험의 청해시험을 지필시험으로 대체하자는 것이다. 윤씨는 이를 위해 현재 헌법소원까지 불사할 의지를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한 윤씨의 설명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토플, 토익은 국제규정에 의한 시험이라 차치하더라도, 텝스의 경우는 국내규정에 의한 시험이므로 시험 주관처로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청해 부분의 배려가 없으면 사법시험에 응시조차 할 수 없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므로,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직업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으로서 사법시험제도 자체에 대한 위헌성의 문제가 나올 여지가 있습니다.”

소장섭 기자 ( sojjang@able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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