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역장애인소비자연대 정진구 공동대표가 지난 9월 12일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장애인개인예산제도 도입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에이블뉴스DB

[2017년 결산]-⑥ 장애인 개인예산제

올해 2017년 장애계는 ‘약속의 해’였다. 문재인 정부가 새로이 출범하며 복지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등의 과거 정부와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광화문 농성 1842일 만에 복지부 장관이 조문과 함께 민관협의체 구성 약속, 국토부 장관 또한 추석기간 저상버스 투쟁 현장에 방문하는 등 투쟁 보다는 ‘소통’과 ‘약속’의 훈훈함이 연일 보도됐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강서구 특수학교 문제, 노동권 등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산적된 현안도 많다. 과연, 문재인 정부는 모든 장애인들과의 ‘약속’을 지켜나갈 수 있을까?

에이블뉴스는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읽은 기사’ 1~100위까지 순위를 집계했다. 이중 장애계의 큰 관심을 받은 키워드 총 10개를 선정해 한해를 결산한다. 여섯 번째는 ‘장애인 개인예산제’이다.

올해 장애인 개인예산제도 도입을 둔 찬반 의견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한쪽에서는 1인 시위 등을 통해 제도화의 움직임을 보였던 반면 한쪽에서는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개인예산제도는 장애인 당사자가 받는 서비스의 총량을 바우처 형식이 아닌 현금으로 지급하는 제도로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국가가 각기 다른 명칭으로 시행하고 있다.

지난 4월 3일 장애계는 ‘장애등급제 어떻게 폐지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국회에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토론회의 두 번째 발표에서는 등급제 폐지 이후의 맞춤형 복지서비스 대안으로 ‘개인예산제도’가 제시됐다.

찬성 측은 맞춤형 지원방안(개인예산제)은 획기적이라면서 개인별지원체계(개인예산제)는 현대적 패러다임의 시작을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치켜세웠다.

반면 복지부는 개인예산제도 도입에 공감은 하지만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내비쳤다. 이 제도를 도입해 운영하는 복지선진국들은 한국과 사회, 문화가 다르고 도입 이전에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개인예산제도 도입의 키를 쥔 복지부가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토론회는 끝났지만 찬성 측은 본인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투쟁에 돌입했다.

서울지역장애인소비자연대는 9월 12일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제도 도입촉구 기자회견을 가진 후 청와대로 자리를 옮겨 “사람중심적이고 자기주도적인 개인예산제도에 대한 정책을 강구하라”며 릴레이 1인 시위를 시작했다.

하지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19일 성명서를 내고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자기주도적 권리)을 실현하는 방법이 개인예산제라는 주장은 환상”이라고 맹렬히 비판했다.

복지예산 총량 자체가 적은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장애인의 필요와 욕구가 반영된 자기결정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전장연은 공지공공성 강화를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과 상반되는 점, 개인예산제도 도입에 대해 장애계 내부 합의가 안 된 점을 들면서 반대했다.

개인예산제도 도입에 부정적인 입장의 성명서가 발표되자 찬성 측인 서울지역장애인소비자연대는 즉각 반응했다. 이들은 전장연의 반대성명서가 발표된 지 6시간 만에 반박 성명서를 발표했다.

전장연의 주장인 장애인 복지서비스 총량의 부족에 대해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개인예산제도 도입이 이 같은 문제(장애인 복지서비스 총량 문제)를 해결하는 순기능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특히 전장연을 향해 자기 투쟁에 매몰되지 말고 다양한 생각(개인예산제도의 순기능)을 수렴해주길 바란다고 지적한 후 자기주도적이고 다양한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것에 동의하는 단체와 토론하고 연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10월 24일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회원들이 서울시를 향해 서울형 장애인 개인예산제도 시범사업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에이블뉴스DB

제도 도입을 둘러싼 의견차이는 10월 19일 서울유스호스텔에서 열린 ‘서울형 장애인 개인예산제도 시범사업 도입을 위한 공청회’에서도 일어났다.

서울형 개인예산제도 시범사업은 통상적인 개인예산제도와 흡사하다. 다만 서울시의 시범사업인 만큼 서울시 자체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으로 영역이 제한된다. 예를들어 활동지원서비스 서울시 추가제공분, 여행·여가·체육·문화 등 서울시가 별도 예산은 투입하는 사업이 대상이다.

이 자리에서 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예산총량의 확대가 없는 개별유연화는 서비스 간의 장벽을 없애는 정도에 불과하고, 이는 아랫돌 빼 윗돌 괴는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서울지역장애인소비자연대 안형진 집행위원장은 개인예산제도는 장애인에게 현금을 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면서 장애인정책의 방향이 장애인 개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선언으로 봐야한다고 반박했다.

특히 그동안 평등이라는 가치를 얻기 위해 진행된 장애인 운동의 흐름을 자유를 얻기 위한 여정으로 바꾸는 실마리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전장연은 10월 19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서울시의 개인예산제도 시범사업 추진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개인예산제도는 말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심각한 오류와 함정이 숨어있고 이 때문에 시범사업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서울지역장애인소비자연대는 9월 12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진행한 릴레이 1인 시위를 계속 이어가며 제도도입을 요구했고, 12월 11일 정진구 공동대표 등이 청와대 제도개선비서관실과 가진 간담회에서 일부 긍정적 성과를 얻어 90일 만에 1인 시위 종료를 알렸다.

이 자리에서 청와대 제도개선비서관실 행정관이 서울지역장애인소비자연대가 요구하는 장애인 개인예산제도 연구용역 요구에 긍정적인 검토 입장을 내보였기 때문이다.

서울지역장애인소비자연대 측은 개인예산제도 연구용역의 요구에 대한 청와대의 행동을 지켜본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장애인 개인예산제도 도입을 두고 찬반이 팽팽하게 맞선 상황이지만 정부의 장애인등급제 폐지 추진과 맞물려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된 만큼 내년에도 ‘장애인 개인예산제도’ 라는 키워드는 장애인계의 관심사안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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