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2016 장애인차별금지법 이행제고 및 장애인 인권증진을 위한 토론회'에서 발제를 하고 있는 '희망을 만드는 법' 김재왕 변호사. ⓒ에이블뉴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차법)이 제정된 지 8년. 그동안 적지 않은 변화를 겪었지만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계속되고 있다.

이는 장차법을 제정할 당시 고민이 부족했고, 법률 제정 이후 변화된 사항을 반영하지 못해 부족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희망을 만드는 법 김재왕 변호사는 19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개최한 '2016 장애인차별금지법 이행제고 및 장애인 인권증진을 위한 토론회'에서 장차법을 총론과 차별금지, 권리구제 영역으로 나눠 개정방안을 발표했다.

■“의료적 장애개념 인권‧사회적 개념으로 바뀌어야”=김 변호사는 먼저 장차법에 나타난 장애에 대한 개념을 수정할 필요가 있음을 피력했다.

현행 장차법은 장애를 신체적, 정신적 손상 또는 기능상실이 장기간에 걸쳐 개인의 일상이나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초래하는 상태로 규정하고 있다. 장애를 손상 중심적이고 의료적인 모델로 다루는 것으로 장애인의 사회생활 제약을 개인의 문제로 인식시키는 문제가 있다.

이에 반해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Disabilities, 이하 장애인권리협약)은 장애의 개념을 의료적 개념이 아닌 사회적 개념로 규정하고 있다.

장애인권리협약의 정의에 부합하고 장차법의 목적에 부합할 수 있도록 장애의 개념을 인권‧사회적 모델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 김 변호사의 설명이다.

장애여성에 대한 차별금지 규정 역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장차법 제33조는 장애여성에 대한 차별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이 안에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차별금지, 임신·출산· 양육·가사 등에서 장애여성의 강제 및 배제 금지 등이 담겼다.

이중 임신 출산 양육 가사 보육 등은 장애여성과 장애남성의 공통된 문제이지만 이 내용이 장애여성에 대한 차별금지 조항에 규정됨으로써 장애여성만의 문제인 것 처럼 여겨지게 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임신·출산·양육·가사·보육처럼)남녀 장애인에게 공통된 내용은 장애여성에 대한 차별금지 조항이 아닌 모 부성권을 규정한 장차법 제29조 등에 규정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보통신 환경 반영 못하는 장차법=김 변호사는 “장차법이 제정되고 나서 정보통신 환경이 급격히 변화했다. 국민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대가 됐음에도 장차법은 바뀐 환경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차법이 장애인의 모바일 접근권 등을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어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 즉 정보통신제품의 장애인 접근성 보장에 관해 정보통신 관련 제조업자의 노력과 의무만을 규정하는 제23조 제2항을 의무조항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최근들어 장애인의 문화향유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장차법은 이와 관련한 장애인의 편의서비스 권리를 보장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장차법은 출판물 발생사업자와 영상물 제작 배급사업자에게 장애인을 위한 편의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의무를 부여하고 있으나 이는 의무규정이 아닌 임의 규정에 불과하다는 것.

이에 김 변호사는 "출판물 발행사업자와 영상물 제작 배급업자에게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출판물 또는 영상물을 접근 이용할 수 있도록 장애인 이용편의 서비스 제공을 의무화해야 한다"면서 "영화상영관 경영자에게도 한글자막 또는 화면해설이 제공된 한국영화를 의무적으로 상영토록 해 장애인의 정보접근성과 문화향유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또한 "행정기관은 행정서비스 신청인이 의사소통이나 표현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조력을 받을 수 있음과 구체적인 조력의 내용을 알려주도록 장차법을 개선해야한다"고 제언했다.

현재 사법기관은 사건 관계인이 의사소통이나 표현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형사 사법 절차에서 조력을 하도록 하고 있지만 행정기관에는 이러한 규정이 없는 상황이다.

■“인권침해 피해자 구제하도록 개정돼야”=김 변호사는 “인권위가 의사능력이 약한 발달장애인을 조사하는 경우 영상물을 촬영하고 그 영상물을 법원이 증거로 할 수 있도록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인권위가 인권침해 피해를 입은 발달장애인에 대한 조사결과를 토대로 인권침해자에 대해 검찰에 고발한 경우 법원이 인권위의 조사결과를 증거로 채택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이유다.

형사소송은 공판중심주의가 적용되고 있는데, 아무리 발달장애인이 인권위 조사과정에서 진술을 했어도 공판에서 진술이 틀려지면 증거로 쓰일 수가 없다.

이렇다보니 시설종사자나 가해자가 피해장애인을 회유해서 인권위의 진술을 법정에서 번복하도록 한 사례가 있었고, 인권위 조사결과가 법원에서 쓰이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장차법 벌칙조항의 실효성을 높이고 장애인 대상 재산범죄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서 벌칙 조항의 악의성 요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돼야 한다는 것.

장차법은 제49조 제1항에서 차별행위를 하고 그 행위가 악의적인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법원은 차별을 한 자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최대 3000만원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벌칙조항을 두고 있다.

하지만 차별의 악의성 판단이 엄격하다보니 이 요건을 충족하면 상습적으로 장애인을 폭행하거나 학대한 경우와 같이 대부분 다른 형법 조항으로 더 엄하게 처벌할 수 있다. 결국 이 조항 때문에 형이 가중된 경우는 거의 없는 것.

특히 장애인에 대한 재산범죄의 가해자가 직계혈족 등 가족인 경우가 많지만 가해자가 장애인에 대해 심각한 경제적 착취를 했는데도 친족상도례에 해당해 처벌되지 않은 사례가 많다. 장차법 벌칙 조항의 악의성 요건을 충족하기 어려워 결국 가해자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실정이 되고 마는 것이다.

(왼쪽부터)전국장애인부모연대 김치훈 정책연구실장,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이문희 사무차장,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강완식 정책실장, 보건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 강인철 과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토론자들도 장차법 개정 ‘한 목소리’=전국장애인부모연대 김치훈 정책연구실장은 “장차법이 정의하는 장애개념을 보다 인권적이고 사회적 개념으로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발제자의 주장에 동의한다”면서도 “장애에 대한 정의를 개정할 때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장애 정의를 충분히 고려하는 것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장차법의 장애 정의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이문희 사무차장 또한 “장차법은 장애인이 정보접근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접근 이용할 수 있도록 필요한 수단을 제공하도록 하고 있으나, 장차법은 빠른 기술 발전에 따른 정보접근 방식에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 뒤 “기술발전에 따른 시대상황을 반영해 웹접근성 뿐만 아니라 웹사이트 소프트웨어 인트라넷 등의 접근성을 모두 포괄할 수 있도록 관련조항을 개정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강완식 정책실장은 "장차법이 차별행위에 대해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이 법에 의해 처벌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여전히 직접적인 장애인차별행위가 발생해 언론에 회자되는 게 현실”이라면서 “현행 장차법은 한계가 명백히 드러나고 있으므로 조속한 시일 내에 장차법에 대한 전면적인 개정이 이뤄져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 강인철 과장은 “임신‧출산‧양육‧가사‧보육 등이 남녀 성역할의 문제가 아니라는 발제자의 지적에 깊은 공감을 한다. 장차법 제정 당시 이 조항이 포함된 것은 과거 장애여성의 임신과 출산의 권리가 박탈됐던 관습 때문”이라면서 “이 조항의 개정에 앞서 법 제정이 이렇게 된 이유와 여성장애인계의 입장을 경청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16 장애인차별금지법 이행제고 및 장애인 인권증진을 위한 토론회' 전경. ⓒ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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