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0주년 특집] 키워드로 되돌아본 10년-⑥

장애인 대표언론 에이블뉴스가 10살이 됐다. 지난 2002년 12월 창간된 에이블뉴스는 발 빠르고, 심층적인 보도로 480만 장애인들의 든든한 언론으로 자리 잡았다.

에이블뉴스가 장애인과 마주한지 10년, 그동안 장애계에서는 이동권 보장을 외치며 저상버스 도입, 특별교통수단 확대, 전철역 엘리베이터 설치 등을 요구해왔다. 만 4년만에 법률 제정을 통해 장애인 이동권이 명시됐고, 많은 장애인들이 지역사회로 당당히 나와 외출할 수 있게 됐다.

이를 반증하듯 에이블뉴스 '올해의 키워드'에 저상버스, 장애인콜택시 등의 단어가 10위권 밖으로 꾸준히 오르내리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장애인들은 2시간 넘게 기다려야만 저상버스나 장애인콜택시를 탈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놓여져있다. 10년 전과 후 여전히 장애인들은 이동권을 보장해달라고 외치고 있다. 10년이나 훌쩍 지나 온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장애인들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바로 일상생활에서 제일 필요한 것은 비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고자 하는데 불편함이 없이 움직일 수 있는 ‘이동 ’할 수 있는 수단이다. 아직도 장애인들은 2시간 넘게 기다려야 저상버스를 탈 수 있고, 장애인콜택시를 타려면 2시간 전에 예약해야지만 탈 수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우리도 이동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장애인들은 ‘이동’의 자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도 버스를 탑시다' 행사를 하던 장애인이동권쟁취를 위한 연대회의 모습. 주변의 경찰들이 버스를 타려고 하는 장애인들을 막고있다. ⓒ에이블뉴스D.B

추락사 계기로 장애인 이동권, ‘꿈틀’

이동권 투쟁 역사를 되돌아보면 ‘장애인도 버스를 탑시다’를 빼놓고 말 할 수 없다.

2001년 1월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발생한 장애인 노부부 추락 참사를 계기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를 주축으로 장애인의 이동권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오이도역장애인추락참사대책위원회’가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이하연대회의)’로 재편되며, 같은해 7월 23일 서울 광화문에서 첫 장애인 버스타기 행사를 열었다.

장애인 이동권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버스를 점거하거나 도로를 점거하는 조금은 과격한 투쟁을 벌였고, 이와 중에 경찰과의 싸움은 비일비재했다. 한때는 경찰이 버스에 탄 장애인들의 하차를 막아 8시간동안 비자발적인 버스 점거농성이 벌어지기도 했고, 버스에 태운 채 장애인들을 경찰서로 연행해 간 적도 있었다.

회가 거듭될수록 장애인 당사자들의 참여는 늘어났고, 점차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장애인이동보장법률’ 제정과 장애인콜택시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더욱 높아졌다.

물론 지금까지도 장애인콜택시의 긴 대기시간에 대한 불만이 나오고 있지만, 당시 장애인콜택시는 운행시간 한정과 차량대수 부족, 운전자를 봉사원으로 한정해 놓는 등으로 인해 실제 이용의 어려움은 더욱 컸다.

이동권연대는 2002년 39일간 국가인권위원회 점거 단식농성을 진행하며 서울시로부터 지하철 전 역사의 엘리베이터 설치, 저상버스 도입 등의 약속을 받아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2003년 저상버스 도입계획을 마련하고, 시내버스 노선에 저상버스 시범운행을 시작했다.

또한 이동권연대가 서울시와 도시철도공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발산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사고 이후 3년만에 도시철도공사는 8,87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받기도 했다.

이는 2002년 5월 지하철 5호선 발산역 휠체어리프트를 이용하던 장애인이 추락해 숨진 사건으로, 이후 장애계는 휠체어리프트를 ‘살인기계’라 불리우며 추가 설치를 강력하게 반대했다.

이동권 보장 받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우다

서울역, 부산역 등 연이은 휠체어리프트 추락사고 발생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나 정부는 제대로 된 대책 하나 마련하지 않았고, 결국 장애인들은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목숨걸고 투쟁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들은 서울역 무기한 천막농성, 서울시 장애인복지과 점거농성, 지하철 철로로 내려가 휠체어를 탄 몸으로 저항했다. 40여차례에 걸쳐 ‘장애인도 버스를 탑시다’ 행사와 55만여명의 시민 서명도 받아 냈다.

더욱이 송내역 등 휠체어 리프트 추락사고는 끊임없이 발생했함에 따라 점거농성, 기자회견 개최, 서울시 장애인복지과 관계자들과의 면담, 점거농성까지 진행하며 이동권 투쟁의 열을 올렸다.

장애인이동권보장법 제정을 요구하던 장애인이동권쟁취를 위한 연대회의 소속 장애인 모습. ⓒ에이블뉴스D.B

만 4년만의 결실…이동권 법적 명시 된 법 제정

이 같은 노력 끝에 장애인 이동권을 법적으로 보장받기 위한 법률 제정은 가시화 됐다. 하지만 법 제정에 앞서 장애계와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는 크게 대립했다. 건설교통부가 준비한 법안이 저상버스 의무화가 아닌 저상버스 확대 권고 수준에 불과했고, 장애인들이 요구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초 이동권연대를 주축으로 구성된 ‘장애인이동보장법률입법추진공동대책위원회’는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 대·폐차 시내버스 100% 저상버스로 도입, 편의시설기준을 위반한 교통사업자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등의 내용인 ‘장애인이동권보장법’ 제정을 촉구해왔다.

특히 장애인의 목소리가 반영된 이동보장법 제정을 위해 당시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의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교통수단 이용 및 이동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이동보장법)’이 통과되어야 한다며 국회에서 노숙농성을 진행, 쇠사슬 시위도 서슴치 않았다.

장애인들이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의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교통수단 이용 및 이동보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야 한다며 국회에서 노숙농성을 진행, 쇠사슬 시위를 하는 모습. ⓒ에이블뉴스D.B

실질적으로 이동권 보장을 받기 위해서는 지하철(엘리베이터 설치)을 비롯해 저상버스 등의 일반 대중교통 이용이 절실했던 이유였다.

앞서 현애자 의원은 장애계에서 요구하는 내용을 다수 포함시킨 ‘장애인이동보장법’을 발의해 장애계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2004년 12월 국회는 현애자 의원이 발의한 장애인이동보장법의 핵심조항이었던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조항으로 정하고, 예산의 범위 내 저상버스를 도입하는 방향의 정부안을 병합심사,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률’ 대안으로 통과시켰다.

이에 장애계가 요구하던 장애인 이동권이 법적으로 명시되고, 저상버스 도입이 이동편의증진법의 의무조항으로 삽입됐다. 또한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계획 수립 등을 통해 전국에서의 장애인 이동권 보장의 기틀을 마련하게 됐다.

이는 만 4년 만의 누리는 이동권 투쟁의 또 다른 결실이었다.

2004년 12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률’ 제정이 된 후 크게 기뻐하는 장애인들. ⓒ에이블뉴스 D.B

5개년 계획 수립에도 불구하고 실제 이행은 ‘지지부진’

이동편의증진법 제정으로 따라 이동권 보장을 향한 투쟁의 강도는 주춤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2006년 인천 지하철 신연수역에서 휠체어리프트 추락 사고로 여성장애인이 뇌사 상태에 빠지면서, 장애인 이동권의 완전한 보장을 위한 투쟁은 재점화 됐다.

실제 리프트가 장착 된 마을버스가 있지만 이용이 불가하거나 저상버스가 아닌 계단이 있는 일반버스만 운행되는 등 법이 제정됐음에도 장애인이 마음껏 이동하기에는 부족한 게 너무 많았다.

여기에 장애인콜택시의 이용요금과 이용시간 등의 한계 때문에 지자체별로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특별교통수단을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기도 했다.

이후 열띤 투쟁 운동에 따라 각 지자체에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조례가 제정됐고, 이동편의증진법에 따라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 5개년계획’이 수립됐다.

당시 건설교통부는 ‘제1차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 5개년계획(2007-2011)’을 시행했지만 장애인계로부터 실질적인 예산 확보 부족으로 저상버스 및 특별교통수단 법정기준 도입 이행이 지지부진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1차 5개년계획에는 저상버스의 경우 2011년까지 31.5% 도입을 계획했으나 실제로 도입 이행률은 12%에 불과했다. 앞서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저상버스 도입계획은 91.4%의 이행률을 보이며 순조롭게 확대됐지만, 2009년 이후 33%에 그치면서 저상버스 도입 실적은 매우 저조했다.

이후 2010년 이동편의증진법 시행규칙을 개정을 통해 시·군 지역 특별교통수단 도입기준을 전체 인구 수 당 특별교통수단의 운행대수 도입에서 1~2급 장애인 200명 당 1대로 변경하며 장애계의 큰 ‘지탄’을 받았다.

이 같은 특별교통수단 도입기준의 변경으로 서울시나 광역시 등은 의무도입대수가 늘어났지만, 소도시는 의무도입대수가 크게 줄어드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하게 됐다. 특히 경기도의 경우 특별교통수단 의무도입대수가 기존 950대에서 570대 수준으로 축소되기도 했다.

또한 지난 3월 제2차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 5개년계획(2012-2017)’이 확정되기까지도 장애인계와의 장애인 이동권 보장이라는 울타리 아래 ‘줄다리기’ 싸움은 계속됐다.

전장연은 2차 5개년계획에 저상버스 보급률 목표치 상향 조정, 특별교통수단 운행대수 산정대상 개정, 중형 저상버스 개발 연구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국토해양부는 국가의 재정상황 등을 이유로 어려움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지난 5월 도 단위의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 지원계획’을 수립함으로써 도지사의 의무와 권한이 강화되고, 특별교통수단 도입비를 국비로 지원할 수 있는 이동편의증진법 개정됐다.

전국 동시다발 버스정류장 1인시위를 진행하고 있는 최미영 활동가. ⓒ에이블뉴스 D.B

법 개정에도 '불만' 여전…아직 끝나지 않은 '이동권'

이동편의증진법 개정으로 일부 완화됐으나 또 다시 법 개정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저상버스 도입의 법정기준 미비, 특별교통수단 의무도입기준의 양 부족, 지역마다 특별교통수단 운영방식 및 체계 제각각 등 현행 이동편의증진법의 본질적인 문제들은 전혀 개선되고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1~2급 중증장애인 200명당 1대의 특별교통수단 의무도입기준은 객관적 근거가 아니며, 현재 법정기준 이상을 도입한 서울시 조차도 평균 2시간 이상을 대기해야 장애인콜택시를 이용 할 수 있는 문제들이 존재한다는 것.

이 밖에도 특별교통수단 산정 기준에 ‘특별교통수단 이외의 방법으로 이동편의를 제공하는 있는 경우’까지 포함됨에 따라 복지관 셔틀버스, 시각장애인 심부름센터 차량도 특별교통수단으로 포함되는 사례까지 속출했다.

전장연은 지난 3월부터 현재까지 전국적으로 확대, 동시다발 버스정류장 1인시위를 통해 저상버스 100% 도입, 특별교통수단에 대한 국가와 도지사 책임을 명시한 이동편의증진법 개정운동을 또 다시 진행하고 있다.

오이도역 추락사가 발생됐던(2001년) 10년 전과 10년 후인 지금도 여전히 장애인들은 ‘이동권 완전 보장’을 외치며 차가운 거리로 나서고 있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10년 전이나 후인 지금도 한결같다.

완전한 이동권 보장을 위한 이들의 절박한 목소리는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계속 될 것이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언제 어디서든 가고 싶은 곳 마음대로 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 단 하나.

이처럼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 문제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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