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단체들은 지난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기초법)’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최저생계비 현실화 등을 위한 법 개정을 정부에 요구하며 싸웠다. 하지만 18대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이들의 염원이 담긴 기초법이 개정될 수 있을까?

기초법개정공동행과 최옥란열사 10주기 추모위원회,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는 지난 22일 오후 2시 이룸센터에서 최옥란열사 10주기 토론회 ‘거꾸로 가는 기초생활보장제도, 무엇이 문제인가’를 개최했다.

최예륜 사무국장이 기초법 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에이블뉴스

이날 빈곤사회연대 최예륜 사무국장은 ‘기초법 문제점과 우리의 요구’ 기조발제를 통해 현 기초법에 대한 문제점 짚어내며 법 개정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되야=최 사무국장은 2009년 기초생활보장권리찾기행동과 곽정숙 의원이 공동시행한 ‘기초생활보장 수급가구 실태조사’ 결과를 설명하며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강조했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수급권 신청 탈락 가구의 경우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탈락한 사례가 43%로 가장 많았으며, 소득기준(23.8%), 재산기준(19%)이 뒤따랐다. 또한 중도 탈락한 가구의 경우 본인 가구의 소득증가로 인해 수급 탈피한 경우가 50%, 부양의무자가구의 소득 혹은 재산의 증가로 탈락한 사례가 22.2%였다.

현행 기초법은 부양의무자의 실제소득이 최저생계비 130% 이상인 경우 부양능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노인, 장애인, 한부모 가구에 한해서는 부양의무자 가구 소득인 정액이 최저생계비 185% 이하일 경우 부양능력이 미약하다고 인정하고 있다.

최 사무국장은 “부양능력이 없거나 부양을 할 수 없더라도 부양의무자의 존재 때문에 수급에서 제외되는가 하면, 수급을 받는 경우에도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설정한 간주부양비와 실제부양비에 격차가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에서 부양의무자 가구의 소득 및 재산의 소득환산액 기준이 비현실적이어서 수급자와 부양의무자의 동반추락을 방치하거나, 시행령에 행방불명, 부양기피·거부 사유를 포함한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을 받을 수 없는 경우에 관한 규정을 행정청(보건복지부)의 재량에 맡기는 등 빈곤의 사각지대를 더 확대시키고 있다는 것.

최 사무국장은 “빈곤으로 인해 가족 관계가 취약해져 있는 조건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은 가족관계의 파탄까지 야기하는 요소로 빈곤층에게 이중삼중의 고통의 요소가 되고 있다”며 “부양의무자 기준은 국가가 보호해야 할 빈곤층을 가족에게 책임지라고 떠넘기는 것과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특히 최 사무처장은 “올해부터 장애인, 노인, 한 부모 가구에 한해서 완전히 부양하고 있다는 구간을 최저생계비의 185% 수준으로 상향조정했지만, 그만큼 간주부양비가 책정돼 따로 사는 부모와 자녀의 소득, 재산 변동에 따라 수급자의 삶이 더욱 불안정해지는 효과를 낳고 있다”면서 “실제로 가족으로부터 부양비를 받지 못하고 있음에도 간주부양비가 책정돼 자녀, 부모의 자산변동에 따라 수급비가 들쑥날쑥해지는 상황은 수급자의 자존감과 안정적인 생활을 가로막고 수급권을 선택하기 위해 가족을 버려야 하는 상황과 자식을 위해 부모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는 비극까지 생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 사무국장은 “부양의무자 기준은 폐지되는 것이 마땅하다”면서 “가족의 책임이 아니라 개인에 대한 사회의 책임으로서 기초법이 제 기능할 수 있도록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박영아 변호사도 최 사무국장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대해 공감의 목소리를 냈다.

박 변호사는 “민법상의 부양의무의 방법과 정도에 관련 일정한 기준도 없고 그때그때마다 법원의 재량에 의해 정해지게 되는데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며 “기초생활보장법은 국민의 기본권인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법으로, 인간의 관계를 규율하는 민법과 체계를 완전히 달리함에도 불구하고 민법에 따른 ‘부양의무’를 끌어와서 수급권 발생의 요건으로 삼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초법에는 부양의무자가 부양능력이 없거나 부양을 받을 수 없는 사람에게 수급권을 인정하고 있지만, ‘부양의무자가 부양능력이 없거나 부양을 받을 수 없는 경우’를 대통령령으로 정하고 위임하고 있다.

박 변호사는 “시행령 제4조에서 부양능력이 없는 경우, 제5조에서는 부양받을 수 없는 경우를 나열하고 있지만 부양능력이 없는 경우의 소득기준이 비현실적으로 낮다”며 “시행령 제 5조에서 부양을 거부 또는 기피하는 경우를 ‘부양을 받을 수 없는 경우’ 하나로만 나열하고 있어 경제적인 이유로 부양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부양의무자를 ‘부양을 거부 또는 기피하는 경우’로 보아 수급자를 보호하는 길을 열어놓고는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변호사는 “가족관계의 단절을 요구하는 복지부 지침 및 행정관행에 의해 차단되고 있어, 그 결과 보호를 요하는 국민은 자신이 전혀 지배할 수 없는 상황(부양의무자의 부양능력, 부양의무자의 부양여부)로 인해 부양의무자 및 국가 모두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고 주장했다.

22일 이룸센터에서 열린 '거꾸로 가는 기초보장생활제도,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 모습. ⓒ에이블뉴스

■최저생계비 현실화, 상대빈곤선 도입 절실=최 사무국장에 따르면 최저생계비는 기초생활보장제도 도입 당시 평균소득의 40% 수준으로 잡고 설정해왔지만 현재는 30%수준까지 떨어졌다. 생계비는 특정소득집단의 생계비품목을 조사하고, 조사가 자의적으로 합산해 화폐가치로 환산하는 전물량방식으로 계측되고 있다.

최 사무국장은 현재 최저생계비의 기준이 낮은 것은 객관적이고 상대적인 소득 지표를 고려하지 않고, 전문가에 의해 주관적으로 계측되는 전물량방식의 문제점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최 사무국장은 “전물량방식은 절대적 빈곤선 계측 방식의 일환인데, 이런 방식을 통해서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소득 불평등 문제는 전혀 드러낼 수 없으며 조사자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 얼마든지 조정이 가능해진다”면서 “실제로 2004년도 계측 당시 조사자인 보건사회연구원이 150만원 안을 제시했으나 예산에 맞춰 112만원으로 결정된 바가 있다. 이러한 최저생계비 결정방식의 근본적인 한계로 인해 최저생계비 수준이 계속 비현실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 사무국장은 2010년 민생보위(최저생계비 현실화/상대적 빈곤선 도입을 위한 민/생/보/위)가 주장한 평균소득을 기준으로 하는 ‘상대빈곤선’을 도입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상대적 빈곤선의 경우 한국의 많은 연구자들이 중위소득 50%를 기준으로 삼아 상대빈곤률을 추정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이와 비슷한 수준인 평균소득 40%를 상대빈곤선 도입의 기준선으로 제시했다.

특히 “최저생계비가 생존만을 위한 수준으로 계측되고, 이것도 예산에 의해 재조정되는 문제를 막기 위해서 계측의 투명성과 국가 차원의 복지수준의 기준이 되고 위상을 고려할 때, ‘상대빈곤선’ 도입으로 최저생계비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토론자로 참석한 한국빈곤문제연구소 서병수 소장은 최저생계비 계측의 근본적인 오류 해결을 위해 가구유행별로 표준가구의 마켓바스켓 개발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법정 최저생계비는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소요되는 최소한의 비용’이다. 그동안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하 보사연)은 보건복지부의 용역위탁을 받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서 말하는 최저생계비를 총 4차례 건물량방식(마켓바스켓)에 의해 계측해 보고했다.

서 소장은 “그동안 보사연은 1999년, 2002년, 2007년, 2010년 최저생계비보고서에 계측 목적을 기초법상 기술된 최저생계비를 계측한다고 했지만 국민의 최저한의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체적이면서 명시적인 규정을 하지 않고 있다”며 “학문적으로는 최저생계비에 대한 조작적 정의(즉 삶의 어느 수준을 지정하는)를 규정하는 과정이 없어 최저생계비 개념의 부재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보고서에서 산출한 최저생계비는 연구자들이 소득하위 40%에 해당하는 저소득층의 지출데이터를 이용해 산출한 저소득층에 대한 규정적, 규범적 빈곤선으로서 ‘의사빈곤선’ 또는 정책적 의도로 계측한 결과인 ‘정책빈곤선’이라 할 수 있다”면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적인 최저생계비이자 경험적·과학적 빈곤선이라고 개념 규정하는 것은 비논리적이며 비과학적”이라고 비판했다.

서 소장은 “소비지출에 있어 소득부족으로 이미 제약 내지 강요를 받고 있는 소득하위계층의 지출형태데이터에 의해 소득하위계층의 마켓바스켓을 산출하는 ‘순환의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면서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적정한 최저생계비에 비해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최저생계비를 산출함으로써 적정 최저생계비를 과소 계측하는 근본적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현행 최저생계비는 4인가구를 표준가구로 설정해 지역별(대도시, 중소도시, 농어촌)로 소요되는 최저생계비를 도출한 후 여기(최종 적요오디는 것은 중소도시 기준)에 보고서에서 산출 또는 채택한 가구균등화지수를 적용한다”며 “가구균등화지수는 이론적인 면에서 보면 결국 주관적 판단에 의존하는 사회효용함수의 하나로서 기본적인 생계욕구에만 적용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욕구(교육비, 보건의료비, 주거비 등)에도 동일한 가구균등화지수를 적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피력했다.

더불어 “노인, 장애인, 한부모가구의 경우 가구유형별 특성을 균등화지수에 직접 반영하지 않고 추가비용과 조정비용에 의해 별도로 합산반영하고 있는데 이는 결국 가구유형별 마켓바스켓을 개발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므로 가구유행별로 표준가구의 마켓바스켓 개발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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