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상(djsim) 기자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역시나다. 건양대학교 이사회가 업무상 재해를 입은 소속 의사(부교수)의 복직신청을 끝내 거부했다. 이사회는 지난 20일 오후 이사회를 열고 건양대병원 소화기내과 과장으로 일해오던 A부교수(46)가 신청한 복직신청 건에 대해 면직을 결정했다. 건양대 측이 자신의 병원을 위해 일하다 재해를 입은 직원을 장애를 이유로 해고한 것이다.

A교수는 지난 2010년 5월 뇌출혈로 쓰러졌다. 관할 기관은 '직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그는 한동안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가 일했던 건양대 병원조차도 병의 예후를 묻는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그는 요양기간 동안 이를 악물고 재활치료에 매달려 기적처럼 다시 두 달을 딛고 일어섰다. 오른쪽 편마비로 오른손과 오른쪽 다리가 부자연스러웠지만 혼자서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 가능할 만큼 회복됐다.

이메일로 면직 통보... 병든 강아지에게도 이러지는 않아

건양대 측은 이사회 결정에 앞서 지난 9월말 경 A교수에게 이메일을 통해 면직이 확정됐다고 사전 통지했다. 당시 A교수를 비롯하여 가족들은 "병원이 개원할 때부터 10년이 넘게 헌신적으로 근무해왔다"며 "어떻게 이메일로 면직을 통보할 수 있느냐, 병든 강아지를 내쫓을 때도 이렇게 매정하게 대하진 않을 것"이라는 말로 서운한 감정을 표출했다.

그동안 밖으로 알려진 건양대의 장애인 사랑은 지극해 보였다. 지난 8월 박창일 건양대 의료원장은 보건산업최고경영자회의가 개최한 대한민국보건산업대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보건산업인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들은 국민의 건강과 삶의 질 선진화에 기여한 공을 인정해 상을 수상하게 됐다고 밝혔다. 한 언론은 박 원장이 "재활의학과 의사로서 아시아 최초 세계재활의학회장을 역임하는 등 '장애인의 아버지'라 불릴 정도로 명성을 떨쳐왔다"고 극찬했다. 하지만 박 원장은 A교수가 복직을 요청하자, "장애 교수가 일할 만한 업무가 없다"며 일언지하 거절했다.

건양대는 지난 16일에는 대전 서구청과 건양대 보건학관에서 김희수 총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장애인재활사업 보건지원 협약'을 체결했다. 개원 50주년을 맞이한 건양의대 김안과병원(원장 손용호)은 지난 15일 '제4회 건양의대 김안과병원배 한국시각장애인 골프대회'를 개최했다. 이 행사는 시각장애인 선수들의 자신감 및 성취감 고취를 위해 매년 열리고 있다. 주목할 것은 김안과병원 김희수 이사장의 당시 환영사다.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는 "시각장애인 선수들도 비장애인 못지않게 골프를 잘 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 같다"며 "앞으로도 김안과병원은 시각장애인들이 보이지 않는 장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참여 기회'를 적극 마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날 우승을 차지한 한 선수는 "시각장애는 나에게 있어 불편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내가 가진 여러 가지 조건 중 하나일 뿐"이라며 건양의대 측에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장애인의 아버지' 불리던 병원장, 장애인 편의시설 갖춰놓고 장애교수 내쫓아

지난 2월 건양사이버대는 대전광역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와 상호교류 협약식을 체결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직원 및 직원 가족이 입학 시 입학금을 면제해주고 4년간 등록금을 최대 50% 감면하기로 약속했다. 눈여겨볼 일이 또 있다. 건양대는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가 주는 '장애대학생 교육복지지원 실태평가'에서 전국 331개 대학 중 최우수 대학으로 선정됐다. 장애학생 도우미 제도, 장애이해 특강, 수업 및 생활 지원을 위한 수화통역사 배치 등 장애 재학생들이 편안하게 공부할 수 있는 최상의 학습여건을 갖췄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총장도, 병원장도 장애인을 위한 일이라면 열 일 제쳐놓고 달려갈 사람들이 틀림없어 보인다. 속내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건양대 총장, 병원장, 안과병원 원장 모두 A 교수의 복직 요청을 외면했다. '일하고 싶다'는 간절한 호소에 이메일 해고통지서로 답했다. A교수 가족들은 "총장이든 병원장이든 어깨를 토닥이며 함께 일할 수 없어 안타깝다는 빈말이라도 했다면 이렇게 항변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 지인은 식당에 가면 으레 식당주인이 직원을 대하는 태도를 주시한다. 자기 직원을 허투루 대하면서 손님에게만 친절한 것은 진정성이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주인에게 대접받지 못하는 직원이 손님을 진심으로 대하겠느냐는 얘기다.

장애를 이유로 '할 만한 일이 없으니 나가라'는 건양대 측의 처사는 손님 앞에서는 공손하고 직원들은 함부로 대하는 못난 사장들을 떠올리게 한다.

A교수는 말한다. 직무상 재해로 얻은 신체적 장애로 내시경시술은 할 수 없다고. 하지만 소화기내과 임상진료상담이나 학생 연구논문, 의과대학 학생의 및 전공수련의 지도교육 업무 등은 할 수 있는데도 왜 나에게 가능한 일이 무엇인지 묻지 않느냐고?

그래서 궁금하다. 장애 교수라는 이유로 내쫓는 이 대학에 보건산업인상을 받고 '장애인의 아버지'로 불리는 의료원장이 여전히 근무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장애인재활사업과 시각장애인 골프대회를 열며 '장애인의 참여 기회'를 적극 마련해 나가겠다던 하던 그 대학, 그 병원이 맞는지?

의아하다. 장애교수들을 내칠 요량이라면 왜 비싼 돈을 들여 장애인들이 편안하게 일하고 공부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춰 놓은 것인지? 대전지역 장애인단체 한 관계자는 말한다.

"건양대는 더이상 장애인을 위한다고 말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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