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하는 것 중 하나는 말(언어)이다. 이처럼 말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이자 삶의 구체적 모습인데 이 말들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사람의 됨됨이나 성격 등을 파악하게 된다. 같은 방식으로 필자는 장애인에게 퍼부어대는 우리시대의 싸구려 말들을 보면서 이사회의 됨됨이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자립생활 권리 실현을 위한 집회 간 행진을 하게 됐다. 하지만 경찰들이 마련한 높다란 차벽과 병력들로 인해서 더 이상 행진을 할 수 없게 되었는데 경찰들의 무전기를 통해 들리는 말! “…그쪽 상황 어떤가?…” “…예 장애인들 나르고 있습니다.…”

#2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막 시작하려는 중증장애인에게 동사무소 직원 둘이 찾아왔다. 동사무소 직원이 하는 말! “…뭐 하러 나오셨어요? 시설에나 있지.”

#3 장애인콜센터 안내직원의 말! “000님은 보호자 없으면 택시를 탈 수 없습니다.” “왜죠?” “몰라요, 전에 탈 때 뭔가가 있었나 보죠. 운전기사에게 뭔가 잘못하신 거 아니에요?”

#4 휠체어를 이용해 이동 중 근처 000학원에서 나오던 중학생이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지나가는 말! “에이~ 병신새~끼”

이러한 말들은 사실 싸구려라 그런지 중증장애인들이 너무 흔하게들 당하고 듣게 되는 말들이며 장애인의 삶의 현장 곳곳에서 가슴팍에 비수를 꽂고는 한다. 더군다나 더욱 억울하고 분통한 것은 말이란 것이 흘러가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함과 원통함으로 말을 뱉은 대상에게 공격할 때쯤 되면 바로 그런 의도로 한 것이 아니고 오해였다고 반대로 내뱉으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한 애매하고도 미지근한 말의 속성으로 인해 한 장애인은 의미확대, 병적경직, 편벽된 아집의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장애인들의 주머니에 녹음기를 달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말들은 특성상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낸다. 한번 할퀴고 간 상처가 난 가슴은 어쩌다가 용감하게 잘 싸우고 결과가 좋게 나서 진심어린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는다 하더라도 치유되지 않는다. 상처의 겉은 봉합될지라도 가슴 깊은 곳의 상처는 그대로 남기 마련이다.

이러한 말들의 원인은 일차적으로 싸구려 말들을 내뱉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말들이 차별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데 있고 차별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니까 당연히 그러한 말들이 범죄라고 생각지 못할 것이다. 그러한 말을 듣는 이들의 멍든 가슴도 얼마나 아픈지 모를 것이다. 그렇게 따지다 보니 싸움의 대상이 너무나 광범위하고 일상적이지 않은가? 물건 살 때, 택시 탈 때, 학교에서, 집에서… 친구에게, 동생에게, 형에게, 선생님에게… 모든 상황과 모든 대상, 그리고 거기에 따르는 팽팽한 긴장감, 말들을 통해 바라본 세상은 아직 전쟁터다.

중증장애인이 당당하게 24시간 누군가에게 부탁하지 않고도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면 싸구려 말들을 듣게 될까? 중증장애인이 모든 버스와 전철과 택시를 아무런 불편 없이 타게 되더라도 싸구려 말들을 듣게 될까? 중증장애인이 일을 한다면? 중증장애인에게 시설에서 나와 살 집이 있다면? 중증장애인에게 소득이 보장된다면? 그래! 이렇게 된다면야 누구에게 쫄릴 것도 없고 누구도 장애인을 쫄리게 보진 않을 것이다.

함께 일하며 활동하는 동료장애인에게 술잔 부딪히면서 멍든 가슴으로 듣던 핏빛 울음을 생각하며 비장애인으로서 어느 인디밴드의 노래 ‘싸구려 커피’를 패러디해 불러본다.

♬♩♪ 싸구려 말들을 씹는~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 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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