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복지재단이 최근 ‘제8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스토리텔링 공모전 ‘일상 속의 장애인’은 장애인과 관련된 일상 속 이야기들을 통해 장애인식개선을 도모하고자 2015년부터 진행되고 있다.

올해 공모전 결과 박관찬씨의 ‘청년은 오늘도 첼로를 연주합니다’가 보건복지부 장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총 19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총 19회에 걸쳐 공모전 수상작을 연재한다. 열네번째는 장려상 수상작인 심순자 씨의 ‘내가 매일 살아가는 것은 꿈 때문이다’이다.

내가 매일 살아가는 것은 꿈 때문이다

심순자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하늘이 뿌연 오늘 아침, 마스크를 착용하고 편한 옷차림으로 나의 일터 공영 주차장으로 발을 옮긴다. 긴 코로나19의 답답함. 매일 수시로 오는 재난문자에 깜짝 놀라기도 하고 마음 편할 날이 없다. 그래도 내겐 어느 해보다 특별하다. 새로운 2022년의 시작, 첫 직장이며 첫 출근인 1월 3일.

남편 봉급에만 의존해 살던 난 직장생활 해보는 것이 꿈이기도 했다. 아침마다 따뜻한 잠자리를 뒤로하고 일어나는 건 꾀가 나지만 새해가 온전히 나에게 와서 활짝 열려있는 축복을 받은 기분이다. 내가 하는 일은 장애인 주차구역 지킴이. 장애인이 장애인을 보호한다는 것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일을 시작하기 전 많이 망설이고 고민도 했다. 가족들의 반대도 뿌리치기 힘들었고 어제는 병원 오늘은 약국을 찾고 병과 씨름하며 약과 타협을 보는 나 역시 결정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두 주먹을 쥐고 불끈 쥐고 도전하기로 했다.

청각장애가 있는 난 의사소통이 순조롭지 않아 대인관계를 비롯해 일상생활에 많은 불편을 안고 산다. 아슬아슬한 삶이었다. 어렸을 때도 ‘심순자’라는 이름 대신 귀머거리로 더 많이 불렸다. 놀림만 당하고 친구도 없는 난 엄마 치마폭만 잡고 다녔다. 그렇지만 그동안 장애인의 서러움을 인내로써 끈질기게 이겨낸 나의 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흔치 않은 기회고 꼭 한번 하고 싶었던 꿈이었기에 갖가지 배움도 운동도 포기하고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두려움을 버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자! 늘 머릿속에 되새기며 집을 나선다. 같은 시간에 같은 길을 걷다 보면 매일 만나는 사람이 있다. 말은 하지 않지만 서로 눈으로 반가운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작은 키에 묵직한 가방을 둘러메고 걷기엔 오르막길이라 숨도 차고 힘들다. 그래도 가파른 길 따라 바람은 연주하고 지팡이로 박자 맞추며 허리와 허벅지를 두드리며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다 보면 어느새 도착해 근무복을 입고 업무를 시작한다.

마음의 뜨거움은 여전히 청춘인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눈도 가물가물 침침, 귀도 멍멍, 기력과 체력이 날로 달라진다. 어느 날은 꽉 낀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젊은 청년, 가냘픈 몸매에 또박또박 걷는 예쁜 아가씨를 빙그레 웃으며 부러운 양 바라보았다. 나도 긴 머리 찰랑찰랑 뒷거울 보던 때가 있었지... 지난날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마음이 찡했다. 가장 기다려지는 것은 힐링타임 점심시간! 컵라면을 마주한다. 후루룩 후루룩 따끈한 국물 마시면 그 맛은 어떤 산해진미보다 꿀맛이다. 추위도 녹이고 마음도 녹인다. 화려함은 없지만 조촐한 내 모습에서 삶의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고 엷은 미소를 지으며 열심히 살아온 자신에게 칭찬도 해본다. 난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잘 익어가며 행복이 영글어가고 있다.

또 식후 짧은 시간이지만 팀원들과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나누며 추억을 더듬다 보면 공감의 물결이 밀려와 보물이라도 찾은 듯 함박웃음을 짓기도 한다. 먹거리가 흔치 않았던 보릿고개를 경험하고 칠십이 훌쩍 넘은 나. 만고풍상 겪고 구구한 사연 오죽 많을까? 어르신 한 분이 긴 한숨을 쉬면서 “100세 인생이면 뭘 하나? 추한 모습 드러내지 않고 어서 갔으면...” 하는 목소리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서글프게 들렸다. 나이 드니 사는 걱정보다 죽는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살고 있는 현재가 중요하다. 장애인도 일할 수 있다는 자부심과 힘과 용기를 심어주고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확산시켜주는 여정인 것 같다. 진급도 보너스도 퇴직금도 없는 아주 자유로운 직장이다.

최저임금이지만 나의 노동은 최저가 아니기에 웃음으로 받으며 내가 선 위치에서 내 자리를 지키는 것이 만족스럽다. 며칠 전 장애인 임산부가 만삭의 몸으로 차에서 내렸다. 엉덩이를 쑥 빼고 한 발 한 발이 힘겨워 보였다. 딸을 보는 것처럼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작은 가방을 받아들고 기흥구청 로비까지 데려다주었다. “감사합니다.” 하며 고마운 눈빛이 보였다.

그래, 바로 이거야!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온정을 나누었다. 일을 하다 보니 가벼운 칭찬을 받을 때도 있다. 우쭐해지고 온종일 기분이 좋다. 시원한 물, 따뜻한 물 건네주고 수고한다는 말 한마디에 사람 사는 냄새가 풍기고 팍팍한 세상이 아니고 사랑과 정이 넘치는 살만한 세상임을 느낀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갈 곳이 있고 나를 필요로 하며 불러 주는 곳이 있다. 정확한 시간과 싸우는 출퇴근이 불편함이 아니라 행복한 습관으로 바뀌고 있고 사소한 일로 티격태격하고 욕심 부리고 공짜 좋아하던 내가 유연해지고 여유가 있다. 우물 안 개구리로 늘 뒷전에서 의사표현 한 번 못하고 살얼음 위를 걷듯 살아온 내가 마음의 문을 열고 많은 사람과 어울려 지냄에 스스로 놀라고 있다.

오전에 일이 끝나면 오후 자투리 시간에는 요일별로 컴퓨터, 글쓰기, 감정코칭, 공예를 배우기도 한다. 내가 매일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꿈이 있기 때문이다. 노년에 일하는 즐거움, 배우는 기쁨이 이렇게 클 줄이야.

잔잔한 바다에선 훌륭한 뱃사공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했듯 숱한 고난의 사연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는 것 같다. 장애인의 약한 모습 보이지 않으려고 열심히 강하게 살아온 것이 단출한 행복의 꿈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돌아보면 가슴에 두 손 모아 눈물로 기도드린 날도 있었다. 살아온 흔적을 이력서에 쓰라면 몇 장을 써도 모자랄 것이다. 아직 식구들이 남긴 밥 긁어먹고 반듯한 김 한 장 계란 한 개 아까워 입에 넣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남편, 자식을 위해서 헌신하면서 살아온 나의 삶이 부끄럽거나 후회되지는 않는다.

어두운 지하 단칸방에서 아이 젖 빨리며 기저귀 빨던 새댁 시절, 한 푼이 새로워 취직을 하려면 면접도 보기 전에 장애인이 걸림돌이 되어 번번이 떨어지고 꿈일 뿐이었다. 바늘로 가슴 한복판을 찌르는 듯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쇠뭉치 매달린 듯 무겁기만 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고 닦아 눈이 시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그 꿈을 펼치고 있다. 예전에 비해 장애인 인식이 많이 개선되었다. 장애인도 당당히 일할 수 있고 다 같이 사는 사회, 행복한 세상임을 실감한다. 양팔을 머리 위로 올려 긴 한숨을 쉬며 끈기 있게 노력하면 꿈은 이루어진다고 외쳐본다.

자!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치장이 명품이 아니라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면서 마음이 명품인 사람으로 근사하게 살고 싶다. 그저 건강 지키며 식용유같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사랑의 평수 늘 크면서 행복한 꿈을 찾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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