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복지재단이 최근 ‘제8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스토리텔링 공모전 ‘일상 속의 장애인’은 장애인과 관련된 일상 속 이야기들을 통해 장애인식개선을 도모하고자 2015년부터 진행되고 있다.

올해 공모전 결과 박관찬씨의 ‘청년은 오늘도 첼로를 연주합니다’가 보건복지부 장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총 19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총 19회에 걸쳐 공모전 수상작을 연재한다. 일곱 번째는 우수상 수상작인 양혜원 씨의 ‘오늘도 너의 선물을 기다린다’이다.

오늘도 너의 선물을 기다린다

양혜원

“자 어머니, 준비되셨나요?”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지도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유리 벽 너머에 있는 선생님을 힐끔 쳐다보며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40분 동안 아이 주도로 놀이하시면 됩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나는 오늘의 목표물인 민재를 쳐다봤다. 부드러운 카펫 위에서 빙글 빙글 돌고 있는 너. 오늘은 너와 기필코 놀고야 말겠다! 마음속으로 굳은 다짐을 하고 민재에게 다가갔다. 나를 본 민재는 슬그머니 바닥에 앉더니 미니 자동차를 만졌다. 나는 엄청난 걸 발견한 것처럼 큰 소리로 말했다.

“오~~ 민재가 빨간 자동차를 만졌구나~”

민재는 나의 말에 반응하지 않고 갖고 있는 미니 자동차를 앞뒤로 연신 밀어댔다. 아이 주도 놀이에서 아이의 행동을 묘사하고 칭찬해 주는 건 부모가 해야 할 기술 중 하나! 나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기술을 펼쳤다.

“민재가 자동차를 힘차게 밀고 있네~ 와~ 파란 자동차도 가져왔구나~ 두 대를 동시에 잘 밀고 있네. 민재야 잘했어!”

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어폰에서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어머니 묘사 잘하고 계시고요. 구체적인 칭찬도 잘하셨습니다.”

‘부모-아동 상호작용’ 수업을 들은 이래 처음 받아 본 칭찬이었다. 나는 선생님께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양쪽 광대가 올라가고 자신감은 솟구쳤다. 오늘은 정말 민재와 잘 놀 수 있을 것 같았다.

30분이 지났다.

정신이 혼미해져 주변을 살펴보니 내 눈앞엔 수십 개의 음식 모형들과 미니 자동차, 블록들이 뒤섞여 있었다. 나는 망연자실한 채 민재를 바라봤다. 실습실을 뛰어다니며 신나게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는 아이. 열심히 놀이를 묘사해 주고, 칭찬해 주고 눈을 마주치며 상호 작용하려고 노력했어도 엄마인 내게 곁을 안 주는 아이다. 남들은 자기 자식들과 잘만 놀던데, 나는 왜 이렇게 어려운 건지 정말 이해가 안 됐다.

“어머니, 아이 행동 계속 묘사해 주세요.”

이미 좌절로 잠식된 나의 머리는 선생님의 지시를 전혀 다르게 듣게 만들었다.

“어머니가 문제에요. 그래서 민재가 느린 거예요.”

아니라고 부정할 수가 없다. 생각해 보면 엄마인 나의 선택에 문제가 많았다. 아가일 때 들었던 문화센터 수업을 아이가 많이 운다는 이유로 중도 포기했다. 이 선택으로 나는 내 아이와 또래 아이들의 발달을 비교할 기회를 놓쳤다. 그리고 돌 지나 받은 영유아 검진 땐 발달이 느려 심화평가 권고를 받았다. 의사의 소견서를 들고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을 수 있었지만, 남자 아이들은 조금 느리게 큰다는 주변 의견을 듣고 기다려 보기로 결정했다. 또, 육아보다 일을 선택한 나는 아이를 온종일 어린이집에 맡기고 아이가 혼자서 잘 놀며 순하게 잘 크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이러한 선택들 때문에 아이가 느려진 걸까?

“어머니, 10분 남았습니다. 남은 시간은 어머니 주도로 놀이해 주세요.”

자책하느라 정신없는 나를 깨운 건 역시 선생님이었다. 한숨이 나왔다. 30분 전 자신만만했던 나는 이미 사라졌다. 내가 주도한다고 뭐 달라질 게 없을 것이다. 지난 3년 동안 내 주도로 언어, aba, 감각통합, 인지, 음악, 놀이 치료 등 수많은 치료를 민재에게 했었지만 크게 나아진 게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선생님의 재촉이 이어졌다. 이제 더는 미룰 수 없었다. 나는 등 떠밀리듯 민재 앞에 섰고 급한 대로 딸기 모형을 집어 민재에게 보여줬다.

“민재야, 엄마랑 과일 자르기 놀이할 거야~ 이거 봐봐 민재가 좋아하는 딸기네~”

민재는 나를 쳐다보지 않고 실로폰 채만 연신 흔들며 의미 없는 소리만 낼 뿐이었다.

“아따따따따~ 코코~ 아냐~ 아니~~~따아”

민재의 소리가 작은 실습실에 안에 가득 채워졌다. 오늘은 소리가 커서 큰 인내심이 필요하겠다고 느끼던 찰나, 소리 중 어느 한 부분이 내 귀에 착 감겼다.

‘어... 혹시?’

내가 생각한 게 맞나 싶어 민재의 소리를 다시 들었다.

“아따따다다 따따코 또또 따~아해”

내가 생각한 게 맞았다.

“아기 코코 내 코코 부비 부비 부 사~랑해~”

내가 노래하자 민재가 흠칫하며 날 쳐다봤다. 나는 민재를 보고 씩 웃었다. 이 노랠 부르고 있었구나. 내가 자주 불러줬던 ‘엄마랑 부비부비’를... 민재가 의미 없는 상동언어가 아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자 놀랍고 기특했다.

나는 그 뒤로 민재와 눈 맞추며 민재가 노래하는 걸 듣기도 하고, 같이 부르기도 하고, 노래 가사에 맞춰 민재의 코와 이마도 만지고, 간지러움도 태우고 꼭 안기도 했다. 그때마다 민재는 크게 즐거워하며 나를 사랑스럽게 쳐다봤다. 나는 자연스럽게 민재와 즐거운 놀이를 하게 되었다. 나는 민재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

“민재야, 엄마랑 놀아줘서 고마워. 엄마는 민재를 진짜 진짜 많이 사랑해.”

마음을 다해 이야기 한순간, 갑자기 내 품에서 낯선 소리가 들렸다.

“나... 도...”

민재가 대답했다. 나를 사랑한다고.

나는 너무 놀라 민재를 쳐다봤다. 민재가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나의 눈에선 주체할 수없이 많은 눈물이 쏟아졌다. 민재와 대화를 하다니... 나는 감격해 민재를 안고 꺼이꺼이 울었다.

유리 벽 뒤에서 우리 모자를 관찰하던 선생님도 감격하셨는지 울음소리가 이어폰을 타고 내게 들렸다. 나는 이날, 민재에게서 희망을 선물 받았다.

코로나19가 일상을 덮치고 어느덧 민재는 일곱 살이 되었다.

내가 바라던 일곱 살 민재는 말문이 트이고, 학습이 가능해져 일반 학교 입학을 준비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그건 나의 욕심이었다. 민재의 입에선 여전히 상동언어, 반향어만 나오고, 감각 추구와 상동 행동 등 자폐 성향은 더 심해졌다. 결국 우리 가족은 민재 수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민재는 ‘중증 자폐성 장애인’이 되었다. 2년 전의 나라면 지금의 상황에 힘들어하고 자책하며 나 자신을 괴롭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때의 내가 아니다. 나와 민재의 삶은 실패하지 않았고, 방향을 전환했다. 이제 우리 가족은 민재의 자립 생활을 위해 최선을 다해 도울 것이다. 민재 또한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 교육받으며 노력할 것이다.

얼마 전 오랜만에 민재의 선물을 받았다. 그날도 민재는 거실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는데, 너무 신난 나머지 한쪽에서 놀고 있던 둘째를 살짝 건드렸다. 나는 민재에게 주의를 주었고, 민재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미... 미아내...”

7년 만에 처음 듣는 ‘미안해’였다. 나는 그렇게 또 깜짝 선물을 받고 한동안 민재를 끌어안았다. 잠깐 지나가는 선물일지라도 이렇게 민재와 마음을 나눌 수 있어 참 행복했다.

민재가 언제 선물을 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기다릴 것이다.

나뿐 아니라 이 땅의 모든 발달장애인 가족이 매일 매일 선물 받는 날이 오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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