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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 수상작 소개-⑥

우수상 ‘그냥, 가족’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1-10-26 07:54:15
밀알복지재단이 최근 ‘제7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이번 공모전은 장애와 관련된 일상 속의 모든 이야기를 주제로 장애인 당사자, 부모, 주변인들의 다양한 사연들이 총 486편 접수됐다. 이중 김효진씨의 ‘성준이가 왜 그럴까?’가 보건복지부 장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총 19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총 19회에 걸쳐 공모전 수상작을 연재한다. 여섯 번째는 우수상 수상작인 조미영씨의 ‘그냥, 가족’이다.


그냥, 가족
조미영


"하진아, 누나 약 먹게 타이레놀 좀 갖다 줘."
백신 접종을 하고 온 딸이 아들에게 말했다.
"아까 엄마가 사 온 거 봤지?"
"저기 약통 서랍 열면 빨간 상자, 그거다."

남편과 나는 아들이 누나 심부름을 잘 할 수 있도록 한마디씩 거들었다. 아들은 천천히 서랍 쪽으로 가면서 우리가 하는 말을 귀담아듣는 듯했다. 누군가의 심부름에 엉뚱한 행동으로 우리 가족을 웃게 하는 아들이 과연 누나에게 약을 잘 가져다줄지 지켜보았다. 서랍을 열고 눈으로 쓱 살피는가 싶더니 타이레놀을 가지고 왔다.

"아이고, 우리 아들 천재네. 그걸 바로 찾아오다니!"
남편의 호들갑에 우리는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아들은 약을 내게 내밀었다. 엄마 말고 누나 주라고 했더니 아빠에게 주었다.
"허어 참, 타이레놀은 알지만 가족관계는 잘 모르는 기묘한 천재일세."
남편의 말에 우리 가족은 다시 크게 웃었다. 자폐성장애인 아들은 자신이 뭔가 큰일을 했다는 듯 씩 웃으며 만족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밤이 깊었다. 세상이 모두 잠 속으로 스며들었지만 아들은 깨어 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아들의 옹알이가 어둠 속에서 춤을 춘다. 아들의 일상에 맞춰 사는 우리 가족은 덩달아 가수면으로 밤을 새울 것 같다. 잠귀가 밝고 노루잠에 익숙한 아들로 인해 가족 모두는 피곤한 아침을 맞는 게 습관이 되었다. 잠을 전혀 자지 않고도 늘 에너지가 넘치는 아들이지만 밤을 꼬박 새우고 나오는 날의 아들 모습은 초췌하고 떼꾼하다.

잠 좀 실컷 자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때가 있었다. 그나마 예전보다 나아진 요즘 아들의 잠버릇은 견딜만한 불편함이다. 가족 모두가 사나흘 잠을 잘 자면 그 평화로움이 얼마나 감사한지, 아들은 우리에게 일상의 소소함에 고마움을 느끼게 해 주는 존재이다.

아들과 전철을 타고 이동할 때 뒤따라오던 아들의 기척이 없어 돌아보던 날, 중년 여인에게 ‘도를 아십니까?’ 설교를 듣던 모습은 나를 기쁘게 했다. 아들을 장애인으로 보지 않은 그분에게 내가 먼저 도를 믿겠다고 따라나서고 싶은 심정이었다. 또 한 번은 한강공원으로 가려면 몇 번 출구로 나가는지 아들에게 묻는 행인도 있었다. 아들을 그냥 청년으로 봐주는 사람이 흔치 않은 세상이다 보니 사소한 일 하나도 우리를 웃게 하는 재밌는 사연이 된다.

반대로, 가만있는 아들이 자신의 아이에게 해코지라도 할까 봐 치마폭으로 아이를 감싸는 젊은 엄마도 만난다. 하긴 바라보는 게 기분 나쁘다고 ‘묻지 마’ 살인이 횡행하는 세상이라 여린 자녀 곁에 서 있는 건장한 청년이 두려울 수도 있겠다. 그래도 장애가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벌레 취급하는 경우는 부화가 난다.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 그러려니 봐 주면서 사는 수밖에...

여섯 살 터울인 딸의 어릴 때 소원은 동생과 싸워 보는 것이라 했다. 혼자 저지레를 하는 동생을 일방적으로 혼내거나 화를 내는 것 말고 남매끼리 다투고 토라지고 다시 화해하는 걸 하고 싶다고 했다.

어느 날, 화장실에서 전동칫솔로 장난치는 걸 못하게 했더니 누나에게 대들어 서로 몸싸움을 한 적이 있었다. 동생의 팔에 발갛게 손자국이 있는 걸 미안해하면서도 딸은 소원성취했다며 표정이 밝았다. 남들처럼 말로 다툴 수 있는 날은 여전히 까마득하지만 언어 외의 다른 소통방법으로 충분히 잘 살고 있음은 감사한 일이다.

딸은 동생에 대한 애정이 큰 것 같지만 자신의 방에 들어와 책을 찢고 서랍을 뒤져 헝클어 놓으면 한바탕 난리가 났다. 누나의 흥분 상태를 보고 슬그머니 제 방으로 피신하는 아들이 우린 또 우스워서 딸 몰래 킥킥거리던 일상이 요즘은 보기 드물다. 몸과 마음이 성장한 아들이 고맙다.

중학교 다닐 때 딸은 같은 반 친구의 도우미로 활동했다. 말을 못 하는 동생과 달리 그 친구는 수다스러운 지적장애인이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집에 와서 펼쳐 놓는 걸 보면 딸이 받는 스트레스가 많아 보였다.

"너 집에서는 동생한테 치이고 학교에선 친구 때문에 너무 힘들겠다. 꼭 그걸 해야겠냐?"
한 학기를 끝내고 결국 내가 먼저 딸에게 말했다.
"엄마, 내가 이런 활동을 하면 앞으로 하진이한테도 누군가 도움 주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까?"
딸의 속내를 알고 나는 울었다. 어른스러운 딸이 나를 토닥여 주었다.

고등학생 딸은 장애아동 나들이 봉사를 했다. 경증이나 경계선급 아이들과 다니면서 중증 동생에 대한 실망이 커지면 어쩌나 나는 걱정했다. 하지만,
"엄마, 지후는 말을 엄청 잘하는데 너무 일방통행이야. 뭘 물어놓고 내가 대답하는 사이 다른 질문을 또 하곤 해. 정신이 없고 시끄러워. 기주는 행동이 너무 빨라서 쫓아다니려면 숨이 차. 애들이 다 귀엽긴 해도 역시 내 동생이 제일 예뻐."
딸이 안쓰러우면서도 기특했다. 저런 마음이면 동생에 대한 불평불만이 쌓여 있진 않겠다는 안도감에 마음이 놓였다. 어렵게 취업에 성공한 딸에게 동생 없는 일상을 살아보라고 분가를 권했다. 딸은 ‘가족이란 가급적 한데 모여서 좋은 일 궂은 일 함께 나누는 거’라며 사양했다. 그러나 지방으로 발령이 나서 딸은 강제 독립을 하게 되었다. 날마다 문자로 동생 잘 있냐고 확인하는 딸이 고마우면서도 동생에 대한 부담을 덜었으면 좋겠다.

직장인 남편은 오로지 일밖에 몰랐다. 아이 둘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다행히 딸은 혼자서 일상을 잘 꾸려 나갔기에 나는 아들에게 매달릴 수 있었다. 힘든 하루하루가 형벌처럼 느껴졌다. 아들은 걸핏하면 감정조절이 힘들어 집이 떠나라 울었고, 매일 한 두 번씩 심하게 자신의 머리를 때리는 자해를 했다. 모든 걸 내려놓고 도망가고 싶던 시절이었다.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고 자영업을 하게 되었다. 한 달여 동안 집에서 사업 준비에 매진했다. 온종일 밖에서 아들과 함께 언어치료부터 특수체육까지 온갖 치료와 교육을 하고 돌아오는 나를 보고 남편이 달라졌다. 그렇게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안일을 다 하며 아들을 건사하는 내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이제부터 아들 수발은 내가 한다.’
남편의 결심이었다. 교육하러 다니는 것만 내 몫이었고 집에서의 신변처리와 산책은 남편이 담당했다. 직장인으로 퇴직했으면 가능하지 않았던 일이었고 다행히 사업이 잘되어 경제적 여유도 조금 생겼다. 부자는 자주 등산을 하고 있다. 남편은 산에 올라가지 않으려는 아들을 잘 달래는 일에 무서운 인내력이 필요한 걸 알았다. 그러는 가운데 남편과 아들은 서로를 알아가며 친밀감이 돈독해지고 있었다.

남편과 아들은 많이 닮았다. 아들은 길을 가다가 멈춰 서서 두 손을 흔들며 몸도 함께 앞뒤로 흔드는 행동을 하곤 한다. 그런 아들을 기다려 주느라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먼 하늘을 바라보노라면 지나가는 등산객들의 시선이 재미있단다.
‘당신 아들 저기서 저러고 있는데 왜 아버지가 여기서 딴청 피우냐?’는 표정으로 아들 한 번 보고 자신을 한 번 보는 게 웃겨서 혼자 고개 돌려 웃는다고 했다. 누가 봐도 부자지간임을 알아차리는 게 이상하지 않은 아빠와 아들이다. 남편이 아들과의 나들이를 어쩔 수 없이 하는 게 아니라 즐기려고 애쓰는 게 보여서 다행이다. 남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아들만의 행동으로 난감할 때와, 고집 피우는 걸 수습하느라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면서도 남편 표정은 어둡지 않다. 그런 남편이 고맙다. 남편이 아들을 건사하는 시간이 늘면서 나도 여유로워졌다. 내 공간에서 나만을 위한 호사를 누리고 있다.

아들 어렸을 때의 이런저런 힘든 과정들은 우리 가족의 노력과, 아들을 지원하는 분들의 교육으로 잘 건너올 수 있었다. 여전히 아들은 우리 가족들의 웃음과 걱정을 담당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다. 한 번 보고 찾아올 수 있는 타이레놀로 우리를 웃게 했던 아들이, 오늘은 무엇으로 또 우릴 웃게 할지 생각하면 미소가 지어진다.

우리를 장애인 가족이라고 동정의 시선이나 따가운 눈총을 보내는 대신 희로애락이 있는 ‘그냥, 가족’으로 봐주는 사회에서 당당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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