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시·청각장애인 당사자들이 강원도 산불 재난방송에서 수어통역과 화면해설을 제공하지 않은 공중파 방송사업자를 규탄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강원도 산불발생에 따른 재난방송 과정에서 시청각장애인을 외면한 지상파 방송사업자가 장애인차별 진정대상에 올랐다. 방송통신위원회 역시 재난방송 관리감독 책임 소홀로 제소됐고 행정안전부는 총괄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이유로 차별진정을 당했다.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이하 장애벽허물기)는 9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강원도 산불 재난방송 및 수어통역 화면해설 등 미제공 차별진정 기자회견’을 갖고 KBS·MBC·SBS와 행정안전부, 방송통신위원회에 대해 장애인차별 진정을 제기했다.

지난 4일 발생한 산불은 강원도 일대를 집어삼켰다. 산불로 인해 속초농아인교회가 전소되는 등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지만 정부와 강원도 지역 장애인단체 등의 노력으로 장애인 인명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산불발생과 동시에 이뤄진 재난방송은 문제가 있었다. 불길이 거세게 번져나가기 시작한 4일 밤과 5일 새벽 사이 수어방송을 한 방송사는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격분한 장애인들이 KBS 등 지상파 방송사에 항의하자 5일 아침 이후 수어통역이 담긴 방송을 송출했다. 당사자의 항의에도 방송사들은 끝까지 화면해설 방송은 송출하지 않았다는 게 장애벽허물기의 설명이다.

방송통신발전기본법은 한국방송공사(KBS) 재난방송의 주관방송사로 지정하고 노약자, 심신장애인 및 외국인 등 재난 취약계층을 고려한 재난 정보전달시스템의 구축하도록 하고 명시하고 있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방송사의 안이한 대처와 수어통역 등 인력확보의 미흡 때문이라는 게 장애벽허물기의 주장이다. 재난방송을 관리감독하는 방통위와 재난상황을 총괄하는 행안부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시·청각 장애인들은 차별진정을 제기하고 KBS·MBC·SBS에 대해 수어통역 의무실시, 화면해설 제공기준 등 마련, 수어통역과 화면해설 전문인 인력풀 구성을 요구한다는 계획이다.

방통위에 대해서는 재난방송 시 수어통역, 화면해설 자막방송 의무실시 지침을 요구하고, 행안부에게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수어 브리핑 혹은 홈페이지 내 수어브리핑 자료 제공을 촉구해 나갈 예정이다.

(왼쪽부터)장애벽허물기 김주현 대표, 청각장애인 당사자 임영수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장애벽허물기 김주현 대표는 “강원도 산불과 관련한 재난방송에서 장애인에 대한 정보제공이 또 도마 위에 올랐다. 방송사들은 국민의 생명은 소중히 여기면서 장애인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대표는 “진정을 하는 이유는 방송사들이 수어통역과 화면해설을 제공하지 않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정부와 방송사들이 진정인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도록 인권위의 적극적인 노력을 간청드린다”고 호소했다.

청각장애인 당사자 임영수씨는 “산불 재난방송을 보면서 가슴이 타들어갔다. TV에서는 산불소식이 나오는데 수어통역이 없었기 때문이다. KBS·MBC·SBS 채널을 바꿔봤지만 어디에도 수어통역은 없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임영수씨는 “만일 제가 있는 곳에 산불이 났다면 정보가 부족해 안전한 대피를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정확한 정보를 인지하지 못해 처참한 상황을 맞이했을 것 같아 몸서리가 쳐진다”면서 “농인도 국민이다. 국민으로서 차별받지 않도록, 재난상황에서 안전하게 대처하 수 있도록 인권위가 나서다라”고 말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9일 청와대 세종실에서 진행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기념 국무회의에서 “장애인을 비롯한 취약계층이나 외국인도 누구나 재난방송을 통해 행동요령을 전달받을 수 있도록 재난방송 매뉴얼과 시스템 전반에 개선안을 마련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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