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맹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고 있는 안승준씨가 '남은 것에 주목하라'는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장애청년드림팀이 이후에 나의 권리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어요. 능동적으로, 구체적으로, 합리적으로, 힘 있게 내 요구를 말할 수 있게 됐고요. 수학교사까지 됐습니다.”

한빛맹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안승준(33세, 시각1급) 교사는 12일 여성플라자에서 장애와 삶, 그리고 비전을 주제로 열린 ‘장애청년드림팀 10주년 기념 청년컨퍼런스’에 참석해 이 같이 강조했다.

이날 안 교사는 “어린 시절에 많이 가지진 않았지만 행복하고 부족하지 않은 가정에 태어나 도 전교 1등에 모범생을 도맡았다”면서 “마치 세상이 몸에 맞춰진 맞춤복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운을 뗐다.

그러던 중 겨울을 앞두고, 초등학생이던 안 교사에게 가벼운 수술 운이 찾아왔다. 의사는 뇌수술이긴 하지만 맹장수술정도의 가벼운 수술이라고 했지만 깨어났을 때는 의사의 말과는 다른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안 교사는 “몸에서 통제할 수 있는 부위는 없었다. 팔다리 입도 돌아가고, 누울 수도 깰 수도 잘 수 도 없어 거의 목숨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라고 회상했다.

이어 “정말 살고 싶었다. 1년 한 번 갈까 말까 한 성당도 하루 몇 번씩 가고 우리나라 기도원이란 곳은 다 찾아다녔다. 하늘도 감동했는지 부모님의 몰골이 마치 죽어가던 저와 비슷해질 무렵 새 삶을 허락해줬다”고 말했다.

안 교사는 “그런데 대가는 잔인했다. 앞에 보이는 세상이 뿌연 물감통 같았다. 실명한 눈을 고치려고 2년 동안 돌아다녔지만 방법이 없었다. 특수학교 입학이 결정됐지만 장애를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고 전했다.

안 교사는 “그 때 당시에는 불쌍한 장애인들 도와주다가 내 눈이 나으면 돌아와야지 하는 거만함이 살아있었다. 하지만 거만함이 사라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면서 “그렇게 무시하던 장애인들 사이에서 꼴지를 했다”고 털어놓았다.

점자교육 등 어떠한 재활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받은 점수긴 했지만 너무 비참해 바닥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안 교사에게 이상한 일 벌어졌다. 안 교사를 도와주기 시작한 건 그렇게 무시하던 장애인 친구였다.

안 교사는 “점자가 느린 저를 위해서 점자 교재를 녹음 교재로 바꿔서 주고, 걸어 다니기 힘들어서 벽을 더듬던 저에게 안내를 해줬다”면서 “사람의 소중함을 처음으로 가르쳐 준 친구들은 장애인 친구들이었다”라고 전했다.

친구들 도움으로 학교생활이 편해지고 나니 안 교사가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졌다. 컴퓨터를 배우고, 음악 동아리에 들고, 수학공부도 다시 시작했다.

안 교사는 “잃어버린 게 전부가 아니라 시력 하나라는 것을 느꼈다. 눈을 뺀 모든 기관들이 저를 위해서 가능성을 준비하고 있었고, 다시 수학을 공부해 괜찮은 대학 수학교육과에 입학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2005년 장애청년드림팀 1기에 선정돼 해외연수의 기회를 가졌고, 지난해에도 국내연수에 참여했다. 이중 해외연수는 권리에 대해 다시금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신선한 경험이었다.

안 교사는 “영국을 갔어요. 인상 깊은 것은 대영박물관을 방문했을 때였어요. 멤버 중에서 눈이 안 보이는 것은 저밖에 없었어요. 차라리 집에서 인터넷 보면서 소개해 주는 게 좋았을 거예요”라고 회상했다.

이어 “그런데 오기가 생겨서 안내데스크에 가서 음성지도를 주십시오! 입체 지도를 주십시오! 그랬더니 줬어요. 당황하는 척을 안 하고 더한 것을 요구했어요. 그리스 박물관에서는 비너스를만졌어요. 당연히 보안요원이 찾아왔어요.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총까지 들고 있었대요. 태연하게 ‘시각장애인이라 몰랐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했다.

안 교사는 “그 사람의 반응이 대단했어요. 자기가 미안하다는 거예요. 이 유물은 눈 보이는 사람들 것만이 아니라 네가 감상할 것은 문화적 자존심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너는 어떤 것을 만져도 된다. 큰 충격을 받았어요”라고 말했다.

그 순간부터 모든 보안요원들이 안 교사에게 모든 작품을 만질 수 있게 허락했다.

안 교사는 “저에게는 동등한 권리가 있었어요. 문화재는 만지면 안 되는 것이었지만 저에게는 감각만 있었기 때문에 동등한 권리를 저에게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교사는 “대단한 충격이었어요. 드림팀이 이후에 나의 권리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어요. 능동적으로, 구체적으로, 합리적으로, 힘 있게 내 요구를 말할 수 있게 됐고요. 수학교사까지 됐습니다”라고 전했다.

끝으로 안 교사는 “왜소증인 재은이에게 법학을 공부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문제되지 않았고, 청각장애가 있는 예진이도 메모와 설명이 있다면 우리와 함께 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안 교사는 “옛날 사람들은 몸이 1000냥이면 시각을 잃은 사람은 900냥을 잃은 것이다라고 말하는 데 1000냥에서 100냥은 적지만 아예 없어진 것은 아니다. 100냥을 열심히 투자하면 1000냥, 그 이상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 자리에서는 장애청년드림팀 국내외 연수에 참여했던 7명이 ‘장애’에 대한 자신만의 이야기를 전달했다.

12일 여성플라자에서 열린‘장애청년드림팀 10주년 기념 청년컨퍼런스 전경. ⓒ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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