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장애인 그룹 홈 제시한 이영민 마라복지센터 원장. <사진제공:한국장애인복지진흥회>

제 24회 장애인의 날을 맞이해 정부는 올해의 장애극복상 수상자 5명을 선정해 4월 20일 메달과 함께 상금 1000만원을 수상한다. ‘장애극복상’은 지난 96년 우리나라가 제1회 루즈벨트 국제장애인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제정되어 자신의 장애를 훌륭하게 극복한 장애인을 발굴·시상함으로써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과 사회 통합에 기대를 하고 있다.

새로운 장애인 그룹 홈 제시한 작은거인

이영민 마라복지센터 원장

150cm도 채 안 되는 왜소한 체구에 한쪽 팔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1급 지체장애인 이영민(여·44세·지체장애1급)원장은 작은 거인으로 불린다.

이영민 원장은 대학 재학 중 봉사활동 현장에서 정신지체 장애인과 그 자녀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부모들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되어 1989년 사재를 털어 조그만 사무실에 정신지체·발달장애인들을 위한 마라특수교육원 연구소를 열었다.

이후 그룹홈과 보호작업장, 언어치료실을 추가로 개원하여 정신지체·발달장애인들의 재활과 교육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특히 2003년도에는 그룹홈이 입주해있던 주택을 헐고 5층 건물을 신축, 마라복지센터를 개원했다.

서울시 송파구 문정동에 위치한 마라복지센터는 주간보호센터, 보호작업장, 그룹홈 등이 입주해 있으며 이영민 원장은 시설에 대한 자신의 지분을 복지센터에 증여하여 영구적으로 장애인이 주인인 시설로 남기기 위한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마라복지센터는 정신지체와 발달장애인 등 중중장애인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회적 통념을 깨고, 성공적인 직업재활과,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는 시설로 지역사회에 안착한 장애인 시설로 평가받고 있다.

이 원장은 또한 보육교사를 위한 ‘사회복지와 집단사회사업’(1997) 등을 발간하는 등 장애인과 함께 생활하는 경험을 후배들에게 전수하기 위한 집필 및 강의도 계속하고 있다.

노점상 딛고 연 60억 매출 회사 운영하는 김계원 신창산업주식회사 사장. <사진제공:한국장애인복지진흥회>

노점상 딛고 연 60억 매출 회사 운영

김계원 신창산업주식회사 사장

월남전에서 부상을 당해 하반신 장애를 입은 김계원(57세·상이1급)사장은 용사촌 및 자립작업장을 건립하는 등 상이군인들과 그 가족의 복지향상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김계원 사장은 월남전에 참전 중(맹호부대)이던 1966년 8월 부상당한 전우를 구출하다가 다리에 총을 맞아 하반신 장애를 입었다.

제대 후 노모와 4명의 자녀양육을 위해 휠체어에 몸을 싣고 부인과 10년 동안 노점상으로 생계를 이어야만 했던 김 사장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이군인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1982년 30여명의 회원들을 모아 ‘신창용사촌’을 설립하고 복지공장인 신창산업주식회사를 세워 상이군인들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었다.

설립초기 정수약품 등을 생산하던 신창산업주식회사는 2002년부터 수익성이 큰 철재사업으로 전환, 2003년도에는 연 6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등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또한 김 사장은 용사촌 내에 체육관을 설립, 회원들의 체육활동을 돕는 한편 1982년 제3회 극동 및 남태평양지역장애인경기대회 양궁종목에 출전 입상하여 국위를 선양하였고 1992년부터는 대한상이군경회 습관성 의약품 상용회원 특별 선도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각종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장애인 최초 보건소장으로 오뚝이 인생 펼치는 김세현 광주광역시 북구 보건소장. <사진제공:한국장애인복지진흥회>

최초 보건소장으로 오뚝이 인생 펼쳐

김세현 광주광역시 북구 보건소장

10년만의 의과대학 졸업하고 졸업 8년만의 전문의 취득해 지난 2003년 3월 우리나라 최초로 보건소장으로 임용되어 화제를 모았던 김세현(53세·뇌병변·청각장애3급)소장의 인생은 우리사회가 가진 장애인에 대한 편견으로 겪어야하는 어려움과 이 어려움을 이겨내는 오뚝이와 같은 삶을 보여 주고 있다.

중학교 교사였던 부친을 따라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네 번이나 전학을 했던 김세현 소장은 어린시절부터 비장애인 학생들과 경쟁하며 사회적 편견에 맞서 왔다.

체력의 한계 때문에 휴학과 복학을 반복, 입학 10년 만에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전문의 취득을 위해 인턴으로 일할 곳을 찾았으나 장애를 이유로 받아 주는 종합병원을 찾지 못해 1년간 방황하다가 1981년 은사의 권유와 진정한 인술을 펼쳐보겠다는 각오로 노인과 저소득층이 주로 이용하는 광주동구보건소 전문직으로 김 소장은 공직에 첫발을 내딛었다.

김 소장은 보건소에 근무하면서 전문의에 다시 도전 졸업 8년 만에 가정의학과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보건소 근무 초기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던 환자들과 직원들도 있었으나 환자에게 보이는 그의 따뜻하고 정성어린 태도로 현재는 환자를 비롯한 주변인들의 신망을 얻고 있다.

2003년 3월 광주광역시 북구보건소장으로 임용된 후에는 22년 동안의 보건소 근무 경험을 살려 주민들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와 행정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모범적인 공무원상을 보여주고 있다.

‘장애’도 막지 못한 음악에의 열정을 지닌 신종호 비올리스트. <사진제공:한국장애인복지진흥회>

‘장애’도 막지 못한 음악에의 열정

신종호 비올리스트

생후 두 돌에 걸린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1급 지체장애인이 된 신종호(48·지체장애1급)씨는 극심한 생활고와 학업, 결혼, 취업, 장애 등 모든 것을 극복하고 전문 음악인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아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대전 성세재활원 특수학교 재학 중 비올라를 배우기 시작하여 1981 아산재단의 후원으로 미국으로 유학, 뉴욕대학에서 비올라를 전공하였고, 현재 경원대학교, 충남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장애인 4명으로 구성된 ‘베데스다 현악 4중주단’과 ‘구리시 교향악단’을 창단하여 500여회에 이르는 국내·외 및 장애인 돕기 자선연주회를 개최, 소외계층에게 음악을 통한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 과정 이수, 미국 유학중 일본인 아내와의 결혼 등 드라마를 연상하게 하는 그의 인생은 장애를 오히려 자신의 장점으로 활용하여 자신의 불운한 인생을 극복하고 음악을 통한 사회봉사로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있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1991년에는 김수근 문화상(공연 예술부문)을 수상한 바 있다.

현재 신종호씨는 대학 출강과 함께 아산재단 홍보과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돼지 사육해 연 2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조구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충남지부 이사. <사진제공:한국장애인복지진흥회>

돼지 사육하는 시각장애인 연 매출 2억원

조구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충남지부 이사

1급 시각장애인으로 돼지사육을 통해 연 2억여원의 매출을 올리는 축산왕 조구호(51세·시각장애1급)이사는 대부분 안마와 침술로 한정된 시각장애인의 직업에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사람이다. 조구호 이사는 서른세 살에 눈에 생긴 염증으로 시력을 잃은 뒤 다니던 직장을 사직하고 양돈 사업에 뛰어 들었다.

시각장애인으로 혼자서 돼지를 키우며 수많은 시행착오와 파산의 위기를 맞기도 하였으나 특유의 끈기와 노력으로 현재 450평이 넘는 농장에 돼지 1,200여 두를 소유한 축산농가의 성공 모델이 되고 있다.

또한 그는 장애인을 위한 일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타고난 봉사꾼이다. 서산, 태안 등 인근지역 장애인 행사와 마을 행사에 자신이 정성스럽게 기른 돼지를 후원하고 있으며 시각장애인 교육기관이 없어 재활교육을 받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점자 및 흰지팡이 보행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외에도 시각장애인 선수를 발굴 육성하여 각종 대회에 참가토록 하고 있으며 지난해부터는 충남지역에 거주하는 영세 시각장애인 자녀의 교육을 위해 흰지팡이 장학사업을 펼쳐 장학금을 기탁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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