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자정보단말기를 사용하고 있는 이제승씨. 몇 천권의 책을 저장할 수 있는 용량을 갖고 있는 이 기기는 시각장애인들의 생활에 혁신을 불러 일으켰다. ⓒ이제승

눈이 보이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사람의 세계란 검은 암흑 속에서 무엇인가를 건져 내려고 안타까운 두레박질을 계속하는 그런 것이다. 정전이라도 되어 캄캄한 방안에 남겨졌을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맥을 놓아버린 허탈감에 따른 것인데 이것이야 말로 편견.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하루를 활기차게 보내는 것은 그들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일도 하고 공부도 하며 재미있게 놀기도 한다. 이제승씨와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시각장애인들의 생활, 그 생생한 삶을 들여다보았다.

-공공기관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음성 안내를 지원하는 곳도 있죠.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음성지원 보조기기와 충돌해 실효성이 없다는 주장이 있는데요.

“한마디로 전혀 쓸데없는 일들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각장애인들이 인터넷으로 공공기관의 사이트에 접속했을 때는 이미 컴퓨터에 스크린리더가 설치되어 있다는 이야기이고, 설령 스크린리더가 없어 비장애인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이럴 땐 필요로 하는 업무까지 도움을 받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대다수의 시각장애인들은 홈페이지에서 지원되는 음성안내는 사용하지 않으며 오히려 불편해하는 실정이지요. 차라리 스크린리더를 사용하여 페이지의 내용을 살펴 볼 수 있도록 대체텍스트나 사이트맵 등을 잘 설계해 놓는 것이 더욱 필요합니다.

사이트를 처음 설계할 때부터 시각장애인들의 접근성을 고려하여 설계했다면 따로 음성지원을 할 필요 없이 스크린리더가 접근 가능하도록 설계했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 방법인 홈페이지 전면 개편에 손을 대지 못하고 보다 손쉬운 음성안내나 시각장애인용 페이지를 따로 만드는 불필요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당사자의 필요를 고려하지 않은 공급자 임의대로의 서비스이며 행정편의주의적인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시각장애인에게 웹 접근성은 굉장히 중요하죠. 에이블뉴스는 어떤가요?

“에이블뉴스는 대표적인 장애인 신문이니 만큼 접근성을 보장하고 있어요. 링크가 모두 텍스트 또는 대체 텍스트로 구성되어 있어서 키보드만으로 접근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조금은 복잡한 감이 있어요. 섹션별로 나뉘어 있어서 편한 점도 있지만 오히려 너무 세부적인 분류는 복잡함을 가중시키기도 하지요.

시각장애인들의 인터넷 사용은 마치 워드프로세서에서 문서작업을 하듯 링크 하나가 한 줄에 배열됩니다. 화면상에서 보기에 한 줄에 다섯 개의 메뉴 링크로 구성되어 있다면, 시각장애인이 보기에는 다섯 줄로 배열되는 형식이에요. 그러니 링크가 많으면 많을수록 내리면서 살펴야 하는 항목들도 늘어나겠지요. 그래서 복잡한 사이트일수록 구성을 파악하기에 엄청난 시간을 소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환경은 아시다시피 그래픽 위주의 사용자 환경을 갖고 있지요. 하지만 조금만 배려하면 시각장애인들도 원활히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답니다. 이미지나 그래픽 링크 등에 대체텍스트만 있어도 80~90%는 접근이 가능하다고 보시면 되고, 이제는 스크린리더 기능이 눈부시게 발달해서 플래시 객체 등 거의 모든 요소들에 접근이 가능해 졌어요. 이에 인터넷 환경에 대한 실효성 있는 가이드라인이 정해진다면 시각장애인들도 아무런 제약 없이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날이 올 테지요.”

- 보조기기의 발달이 놀랍죠. 이에 힘입어 시각장애인들의 생활이 예전과 비교해 달라졌는데요.

“제가 맹학교 시절엔 점자정보단말기는 시각장애인들에게 꿈의 기기였습니다. 가격도 700만원이 넘었고 전량 수입되는 제품이었기 때문에 일부 부자 친구들이나 만져 볼 수 있는 기기였죠. 전국 맹학교에 몇 대가 있을까 말까 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졸업한 이후, 국내산 점자정보단말기의 개발로 점자셀을 생산하는 단가가 내려가면서 정부에서 각 맹학교에 보급이 시작되었습니다. 거의 개인당 한 대식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보급되었지요. 이제는 일부 맹학교에선 점자정보단말기가 남아도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더군요.

국어 교과서의 경우 점자책으로 6권 정도가 나오는데 점자정보단말기에는 국어 교과서 뿐만 아니라 전 과목의 교과서와 성경, 찬송가, 소설 등 몇 천권의 책을 저장할 수 있는 용량이 되거든요. 게다가 노래 등 미디어 파일을 재생할 수 있는 기능도 있어 시각장애인들의 학습과 여가생활에 정말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각종 데이터베이스 기능을 활용하여 노래방 코드집이나 사전 등도 유용하게 이용하고 있고요.

저도 이제는 공동모금회의 지원으로 한 대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노트북에 점자셀을 부착한 제품도 나오고 시각장애인용 PDA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사양이나 기능이 발전된 제품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휴대폰도 대중화되면서 맹학교 때 삐삐 메시지 확인을 위해 공중전화박스를 들락날락 하던 저와 제 친구들은 이제 음성지원이 되는 휴대폰을 이용하여 하루에도 몇 십통씩 문자를 주고받고 있습니다. 비장애인들과의 교류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겠지요. 최근에 모 통신사에서 휴대폰의 메뉴 중 상당 부분을 음성지원하는 휴대폰을 보조기기보급사업으로 지원한다고 하니 기대가 됩니다.”

엉터리 유도블록, 지뢰밭같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볼라드는 흰지팡이가 눈 역할을 하는 시각장애인들을 언제 위험한 사고에 빠뜨릴지 모른다. ⓒ이제승

중도실명하셨다고요. 장애인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데요. 이것은 장애인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할 수 없을 거라고 단정지어버리는 사회의 편견이 가장 큰 원인이죠. 이런 환경을 만들어주면 나도 일할 수 있을 거라고 아쉬워한 적이 있을 듯 합니다.

“공무원이나 사무직 등에서 업무 자체가 문서 위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저를 비롯한 시각장애인들은 업무를 처리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문서가 없다면 아무것도 안될 정도지요. 이러한 문서 위주의 업무 환경을 전자문서 시스템으로 전환해 간다면 상당히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큰 어려움 없이 업무를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성우나 MC 등도 약간의 도움만 있다면 충분히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봐요. 제가 생각하고 있는 시각장애인 유망직종은 취음사, 취향사 같은 것들인데요. 라면이나 술 같은 식료품 개발에 참여해서 맛이나 향을 테스트하는 취음사, 취향사들는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상당히 적합한 직종이 될 수 있을 거거든요. 이러한 직종에서 시각장애인들이 능력껏 일할 수 있으려면 시각장애인 당사자들의 노력과 더불어 사회 전반의 인식전환이 전제되어야 하겠지요.”

-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을 위해 편리한 환경은 어떤 걸까요?

“상당히 포괄적인 질문이군요. 모든 곳에 음성안내나 점자설명이 있다면 시각장애인에게는 참으로 편리하겠지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최소한 시각장애인들도 이동에 있어서만큼은 안전을 보장해 주었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 점자 유도블록을 따라 가다 보면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된다든지, 유도블록이 중간에 끊어진다든지, 어떤 곳에는 유도블록을 따라가다 보면 앞에 턱하니 나무가 심어져 길을 가로막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큰 사고로 이어지는데요. 매일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게 믿어지세요?”

- 구체적으로 어떤 곳에서 사고가 많이 일어나나요?

“수유역 3번 출구를 예를 들면, 한빛맹학교로 가는 마을버스 정류장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를 비롯한 시각장애인 친구들이 많이 오고 가는 곳이지요. 그런데 3번 출구 앞에는 주차방지용 볼라드가 있어 우리들의 정강이는 수도 없이 깨지곤 합니다. 문제는 일정한 곳에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이리저리 옮겨 놓는다는 것이죠. 볼라드의 높이가 흰지팡이로 감지하기 어려운 사각지대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도 골칫거리입니다. 볼라드에 쿠션 있는 스티로폼을 덮는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언제나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요.

지하철 플랫폼에서도 위험은 여전하지요. 지하철을 타는 곳에 있는 노란색 점자블록은 다 닳아 밋밋한 평지가 되어 버린지 오래고, 잘못하다 설로로 떨어지는 일들은 최근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물론 객차와 플랫폼 사이의 간격도 문제가 되고요.”

- 점자블록이 닳으면 감지가 어려운 거군요. 복잡한 장소에선 이런 저런 위험이 있겠는데요.

“지하철역 출구 주변에 택시들이 손님을 태우지 못하게 하려고 펜스로 막아 놓은 것을 보셨을 겁니다. 택시에서 내렸을 때 앞에 펜스가 있다면 참 난감하지요. 나가는 출구가 중간중간에 있는 것도 아니고 펜스 끝부분에 있어 상당히 먼 거리를 움직이거나 넘어가야 하는 일이 빈번하거든요. 시각장애인 혼자서는 참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도 위에서도 여전히 많은 위험들이 있지만 얼굴 높이에 걸려 있는 간판들은 흰지팡이로 감지되지 않아 부딪히면 깜짝 놀라기도 하고 참 황당하기도 하지요. 그리고 길거리에 진열되어 있는 상품들도 큰 장애물이 됩니다. 전에 제 후배가 길을 가다 마트 앞에 있는 계란 10판을 넘어뜨려 가격의 반을 물어준 적도 있어요.

말하자면 끝이 없겠군요. 이처럼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작은 돌 하나도 때로는 생명에 위협을 주는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시각장애인들이 안심하고 보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만이라도 조성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응원합시다]베이징장애인올림픽 선수단에게 기운 팍팍!

*예다나 기자는 ‘장애 경력 18년’을 자랑하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입니다.

“장애인에게 제일의 경력은 장애 그 자체”라고 말하는 예다나씨는 22세에 ‘척추혈관기형’이라는 희귀질병으로 장애인이 됐다. 병을 얻은 후 7년 동안은 병원과 대체의학을 쫓아다니는 외엔 집에 칩거하는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8년간은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했다. 그 동안 목발을 짚다가 휠체어를 사용하게 되는 신체 변화를 겪으며 장애 경중에 따른 시각차를 체득했다. 장애인과 관련된 기사와 정보를 챙겨보는 것이 취미라면 취미. 열 손가락으로 컴퓨터 자판을 빠르게 치다가 현재는 양손 검지만을 이용한다. 작업의 속도에서는 퇴보이지만 생각의 틀을 확장시킨 면에선 이득이라고. 잃은 것이 있으면 얻은 것도 있다고 믿는 까닭. ‘백발마녀전’을 연재한 장애인계의 유명한 필객 김효진씨와는 동명이인이라서 부득이하게 필명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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