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홍순봉 회장이 장애등급제 폐지 후 시각장애인의 복지서비스 축소가 예상된다며 반드시 저지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에이블뉴스

취임 여섯 달째 접어든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홍순봉 회장이 ‘장애등급제 폐지’라는 이슈에 직면했다.

내년 9월 문재인 대통령 공약 중 하나인 장애등급제 폐지를 발표한 가운데, 시각장애인의 불만과 우려가 폭주하고 있는 것이다.

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의학적 관점의 획일적 체계인 등급제를 없애고 사회·환경적, 대상자의 욕구 등을 반영해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으로 이를 위해 종합인정조사표를 도입하고 대상자에게 본인이 원하는 서비스 제공을 위한 방향으로 추진된다.

그렇지만 오히려 시각장애인에게는 서비스 하락이라는 문제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장애등급제 폐지 후 서비스 제공여부를 판단하는 종합인정조사표가 시각장애인의 서비스 양 자체를 줄이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장애등급제 폐지 민관협의체가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3차례 시범사업을 모니터링한 결과 전체 시각장애인 복지서비스양이 7.6% 줄어들고,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은 9.1시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 우려가 아닌 현실이 되고 있다.

이 때문에 연합회는 장애등급제 폐지 추진에 있어 시각장애인의 서비스양이 줄어들지 않도록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왔다. 더욱이 전국 지부장단 회의를 갖고 전국 집회 투쟁을 통해 시각장애인 복지서비스 축소를 저지할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

본지 백종환 대표는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홍순봉 회장을 만나 장애등급제 폐지 추진의 문제점과 향후 대응 방안, 그리고 장애인계 현안에 대해 들어봤다.

Q : 지난 3월 21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회장 선거에서 승리한 후 160여일이 지났다. 최근 연합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향후 장애인등급제 폐지로 인해서 시각장애인은 서비스가 줄어든다는 측면에서 전국 시각장애인들에게 비상령을 동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설명해 달라.

A : 내년 7월 장애등급제가 폐지된다고 결정됐다. 장애등급제는 모든 장애인단체들이 요구했고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으로 약속을 했던 사안이다. 폐지 과정에서 연합회는 꾸준히 복지부와 협의를 했고, 복지부로부터 등급제가 폐지돼도 특정 장애유형에는 피해가 갈 일이 없다고 답변을 들었다.

복지부가 등급제 폐지 후 모든 장애인들의 사회·환경적, 개인욕구 문제 등을 고려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절대 유형에 따라 피해를 입을 게 없다고 얘기를 해왔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현재 받는 서비스는 줄어들지 않는다고)시각장애인인 회원들에게 알리고 있었다.

하지만 장애등급제 폐지와 관련해 책임연구를 맡은 교수들의 연구보고서는 복지부의 말과 달랐다. 민관협의체가 보고서를 갖고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시각장애인은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이 9.1시간, 전체 서비스는 7.63% 줄어드는 결과가 나왔다.

더군다나 등급제 폐지 후 도입되는 종합인정조사표에 따라 시각장애인이 문항대로만 답하면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없다. 문제는 종합인정조사표가 활동지원서비스에 한정돼 사용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시각장애인이 피해를 받을 수 있다는 게 시각장애인계의 생각이고, 이 부분을 가만히 놔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장애인복지가) 역행하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 판단하고, 전체 시각장애인의 우려를 반영해 전국 집회를 지부장단 회의에서 결의했다. 집회 시점, 방식 등에 관해 위임을 받았다. 오는 9월 3일 청와대 앞에 집회신고를 한 상태다.

시각장애계는 등급제 폐지 민관협의체를 구성하면서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하는 당사자 단체들이 들어가지 못했고, 배제된 상태에서 논의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 요구는 간단하다. 장애등급제 폐지 후 서비스에서 시각장애인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홍순봉 회장이 백종환 에이블뉴스 대표의 질문에 답을 하는 모습. ⓒ에이블뉴스

Q : 장애등급제 폐지는 장애계의 오랜 숙원사업이다. 한시련은 장애등급제 폐지를 반대하는 입장인가?

A : 우리단체는 전체 장애계가 수긍하지 않는 장애등급제 폐지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반대했다. 하지만 이미 장애등급제 폐지가 결정된 상태에서 찬성/반대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장애등급제 폐지 후 복지서비스에서 차별을 받는지, 받지 않는지가 중요하다.

장애 유형 가운데 서비스를 많이 받아야 할 사람이 있다. 지금의 종합인정조사표는 모든 장애인의 장애유형이 관계 없이 유형 속에서도 중·경증 관계 없이 모든 장애를 아울러 평가하려 한다. 이렇다보니 또 다른 등급제에 지나지 않는다. 장애등급제가 있을 때 보다 행정편의주의적이라고 생각한다.

Q : 복지부가 지난 22일 내년 장애등급제 폐지 이행내용이 담긴 장애인복지법 하위법령을 입법예고했다. 입법예고한 내용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A : 장애인복지법 하위법령에 우리가 요구한 내용 가운데 반영된 것은 없다. 복지부 장애인정책국에 입법예고 된 내용이 개선될 수 있는지, 시간은 언제까지인지 물어봤다. 내년 7월에 장애등급제 폐지가 이뤄진다면서 이 기간 안에 충분히 수정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수정할 것인지 방안을 내놓으라고 말했으나 모든 사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하면서 구체적인 것은 말을 해주지 않고 있다. 복지부의 말을 신뢰하기 어려울 것 같다.

Q : 정부는 활동지원서비스를 포함해 많은 장애인복지서비스를 종합인정조사표에 따라 제공한다. 점수로 환산하면 시각장애인은 점수를 얼마 받지 못해 차량을 구입하는데도 지방세 감면을 못 받을 수 있다. 비행기·기차 등 교통수단 이용 시에도 감면·할인을 받지 못 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연구를 할 필요성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A : 현행 종합인정조사표는 경증 시각장애인을 늘리고 중증시각장애인에게 주어지던 서비스가 줄어들게 한다는 게 시각장애인계의 주장이다. 종합인정조사표는 세분화 돼야 한다. 이렇게 획일적으로 만들어지면 시각장애인은 굉장히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시각장애인계가 장애등급제 폐지에 대해 우려를 가졌던 것이다.

우리는 종합인정조사표의 문항을 개선해달라고 꾸준히 요구했으나, 개선이 안 된 부분이 있다. 문항 가운데 음식물을 삼킬 수 있는지, 침대에서 혼자 일어날 수 있는지, 배변·배뇨를 할 수 있는지 이런 문항들이 있다.

A : 시각장애인은 음식 삼키는 것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음식을 차릴 수가 없다. 배뇨·배변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외부에서 화장실을 찾지 못한다. 이런 문항들은 시각장애인에게 맞지 않다.

배점 항목 간 점수 차이가 상당해서 답변을 잘못하면 서비스를 못 받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 항목 ‘필요없다’, ‘상당히 도움이 필요하다’, ‘전적으로 도움이 필요하다’ 가운데 ‘상당히’와 ‘전적’의 배점 차이가 굉장하다. 이 부분을 모르면 시각장애인이 ‘상당히’를 고를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답하면 등급 자체가 나오지 않아, 아예 서비스를 못 받을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 종합인정조사표 등 불합리한 부분에 대해 개선을 건의했으나, 전체적으로 다 열어 놓고 고려해 개선하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Q : 장애등급제 폐지 민관협의체가 10차례 회의를 가졌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 시각장애인계의 입장을 전달했을 것이다. 민관협의체가 구성돼 장애등급제 폐지를 논의한 게 1년이 다 되어가지 않는가?

A : 한시련 회장선거에서 당선되고 3월부터 회장 임기를 시작했다. 당시 민관협의체는 7차례 회의를 가진 상태였다. 이 때부터 시각장애계의 요구를 전달했고, 민관협의체는 충분히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답을 했다.

아홉 번째 회의가 끝나고 시각장애인들이 활동지원서비스가 하락되는 시뮬레이션 자료가 공개됐고 이 때부터 시각장애계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본격적인 행보에 나선 것이다.

9월 3일 복지부는 장애등급제 폐지에 관한 장애인단체의 입장을 듣는다. 공청회에서 복지부의 입장을 들은 후 우리의 입장을 정리해 집회를 갖는 것, 공청회를 보이콧 하고 우리의 입장을 정리해 집회를 갖는 것, 두 가지 안이 내부에서 논의되고 있다.

Q : 시각장애인의 투쟁 강도는 높은 편이다. 과거 목적을 이루기 위해 회원들이 한강 투신을 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이와 같은 투쟁을 통해 압력을 가할 생각인지 궁금하다.

시각장애인들은 생존권을 위해 안마업 분야에서만 집회를 수십차례 가졌다. 실질적으로 시각장애인의 복지를 위해 전국적으로 모여 목소리를 낸 적이 없다. 다른 장애유형은 노력하고 투쟁해서 어찌됐든 정부정책에서 우선순위가 됐다.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동안 시각장애인이 해왔던 (한강 투신 등)투쟁이나 움직임·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 한강 투신도 충분히 고려하고 있으며 단식, 정부 주요건물 점거 등 여러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홍순봉 회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에이블뉴스를 장애계의 허파로 표현하며 애정을 드러냈다. ⓒ에이블뉴스

Q : 장애등급제 외에도 시각장애인이 당면한 문제가 있을 것 같다.

당면한 문제 중 하나는 시각장애인의 고용이다. 시각장애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먹고 사는 것이다. 그동안 시각장애인은 안마업을 중심으로 경제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유사 안마직종의 침투가 심하다보니 안마업이 쇠약해지고 있다.

때문에 시각장애인 직업창출을 최우선 목표로 정하고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고용부에 시각장애인을 전담으로 하는 직업능력개발원 설립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시각장애인 직업과 관련해 어떻게 무엇을 지원할 것인지 로드맵이 필요하다.

시각장애인의 정보접근권 문제도 현안 중 하나다. 이 부분이 해소되면 실생활도 많이 편해지지만, 시각장애인의 교육수준도 높아질 수 있어 총력을 쏟고 있다. 모바일 웹 접근성에 대한 개선은 물론 점자정보단말기를 건강보험 급여항목에 포함시켜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Q : 회장 후보시절 공약으로 내건 사항들이 있다. 공약들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 듣고 싶다.

A : 공약 중 하나가 시각장애인의 권익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이 공약의 일환으로 분야별 전문위원회(권익, 내부규정 정비, 복지, 고용 등)를 설치하고 전문성을 가진 위원들을 초빙해 위촉했다. 전문위원회를 통해 시각장애인에게 필요한 정책을 생산하고 정부 혹은 국회에 전달해 적극적으로 푸시할 계획이다.

또한 한시련 이사회의 회의내용은 녹음해 회원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이 외에도 시각장애계의 현안, 활동을 시각장애인 사서함을 통해 공개하고 알리고 있다.

Q : 전임 이병돈 회장이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한국장총)과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장총련) 통합 이야기를 공공연히 말했다. 장총련 김광환 대표도 함께 열심히해서 통합을 이루겠다고 했다. 한시련 회장이면서 한국장총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데, 이에 대한 입장이 궁금하다.

A : 전임 이병돈 회장이나, 장총련 김광환 대표. 두 사람이 두 단체를 통합시키자고 말한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논의한 것은 없었다. 장애계가 하나로 통합하자는데 반대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통합을 하려면 해결해야 할 선결과제들이 많다. 통합할 의지가 있으면 양 단체가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을 각오와 자세가 있어야 한다. (두 사람이)말로써 통합을 하고 한 곳으로 뭉치자고한 것에 대해서는 선언적이고 정치적인 의도가 더 컸다고 생각한다.

또한 물리적으로 통합해야만 통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장애계의 공통사안이 있을 때, 힘을 합치고 연대를 하고자하는 의지가 중요하다. 물리적으로 통합은 쉬운 문제가 아닌 것 같다.

Q : 홍순봉 회장이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A : 그동안 장애계가 항상 통합과 연대를 얘기하면서 실질적으로 큰 문제가 있거나, 힘을 합쳐야 할 때 각 단체들이 유/불리를 따져 행동한 게 많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한다. 진정으로 통합하고 연대하려면 각 단체의 유/불리에 따라 행동하는 것부터 내려놓는 의식이 선행돼야 한다. 장애계 공동의 이익을 위해 내 이익을 양보할 수 있는 입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Q : 홍순봉 회장에게 에이블뉴스란?

A : 신체장기로 볼 때 에이블뉴스는 시각장애인에게 허파와 같은 존재다. 에이블뉴스가 없었다면 정보가 막혀 숨 쉴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에이블뉴스는 허파 역할을 해 시각장애인의 숨통을 틔워준다. 장애계가 에이블뉴스를 발전시키고 키워나가야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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