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가수 김지호가 피아노를 치고 있다. 한 번 치기 시작하면 식사도 거른 채 7~8시간 친다.ⓒ에이블뉴스

9년 전 SBS 놀라운대회 스타킹에서 3연승을 거머쥐었던 ‘영혼을 울리는 목소리’ 김지호(시각장애 1급, 26세)는 한 순간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장애를 넘은’, ‘닉쿤을 울린’ 등 뮤지션이기 전에 ‘장애’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녔다.

이에 김지호는 실력으로 인정받고자 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서울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에서 공부를 마친 후, 이제 26살의 청년 뮤지션으로 생애 첫 디지털 싱글을 내놨다.

9년 전보다 주목이 덜 해도 김지호는 지금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한다. 디지털 싱글 ‘알바트로스’를 공개한 김지호를 만나 김지호를 둘러싼 ‘키워드’ 인터뷰를 나눴다.

■김지호와 스타킹, “2PM 닉쿤을 울린?”

지난 2016년 종영된 SBS 예능프로그램 ‘스타킹’을 기억하는가. 연예인이 아닌 주위에서 한 번쯤 봤을 법한 우리네 이웃들의, 가장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사연과 더불어 장기를 펼쳤던 프로그램이다. 김지호도 ‘스타킹’으로 ‘스타’가 됐다.

2009년 5월2일, 어린이집 특집에 장애아동으로 구성된 한빛맹학교 빛소리중창단과 등장해 ‘크리스마스에는’, ‘슈퍼스타’ 등을 불러 주목을 끈 것. 이후 3연승과 더불어 상반기 왕중왕전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스타킹에 나온 사람이다”라고 반가워하는 대중들도, 팬카페도 생기는 게 마냥 기뻤다.

하지만 언론들은 그를 감동 포르노로 소비했다. ‘2PM 닉쿤이 오열하다’, ‘장애 넘다’ 등의 기사가 쏟아졌다. 김지호는 단순한 동정심이 싫었다. 장애를 넘어선다는 것은 진부하고 뻔했기 때문이다. ‘스타킹’은 그에게 유명세를 가져다준 감사한 프로그램이자, ‘장애 극복’ 꼬리표를 뗄 수 있도록 스스로 채찍질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

“그 때 한참 슈퍼스타K1이 방영될 때였어요. 거기에 시각장애인 가수 김국환씨가 집중됐는데, 저도 같이 이슈가 되다보니까 ‘요새 시각장애인들이 동정심을 유발한다’는 얘기를 들었죠. 그땐 철이 없어서 유명세가 좋았지만, 나이가 들다보니까 장애가 아닌, 실력으로 바라보도록 노력하게 돼요.”

논픽션 창작뮤지컬 ‘더 라스트 콘서트’ 공연 모습. 가운데가 김지호.ⓒ한국장애인국제예술단

■김지호와 갑상선암, “노래 못 부른다는 말이 더 무서워”

‘스타킹’으로 주목을 받으며 여러 무대에 섰던 김지호는 그 해 큰 고비를 겪는다. 목에 혹이 생겨 조직검사를 받았는데 갑상선암 진단과 함께 임파선까지 전이됐다는 선고를 받은 것.

이미 4년 전 목에 혹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부모님은 아들의 수술을 반대했다. 선천성 녹내장으로 16번이나 수술을 받았던 아들이 더 이상 아픈 모습을 보기 싫었기에. 당시 김지호는 암이라는 충격보다 노래를 못한다는 생각이 더욱 두려웠다.

“임파선까지 전이되면 성대신경을 건들 수밖에 없어 노래하는데 지장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세션맨으로 연주자로 살아가야 하는데. 노래를 못 부른다는 게 너무 무서웠어요.”

결국 미루다 미룬 끝에 서울대학교병원 수술대에 오른 김지호는 무사히 수술을 마쳤다. 유능한 의사의 집도로 성대 손상 없이 임파선 159개를 떼어낸 것. 이후 6개월 만에 다시 무대에 서서 자신의 꿈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논픽션 창작뮤지컬 ‘더 라스트 콘서트’로 만들어져 최근 평창패럴림픽 기간에 강릉 아트센터에서 공연되기도 했다. 티켓 오픈 하루 만에 전석 매진돼 큰 호응을 이끌었다.

“어쩌면 마지막 콘서트가 될 수 있지만, 더불어서 또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도 있잖아요. 갑상선암으로 너무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제가 더 깊은 목소리를 낼 수 있게 성숙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김지호와 한국장애인국제예술단 김종우 팀장. 김지호는 김 팀장을 “친형”이라며 따른다.ⓒ에이블뉴스

■김지호와 배은주, “날 키워준 이모”

김지호는 현재 한국장애인국제예술단 소속으로, 뮤지컬, 공연, 강연 등을 펼치고 있다. 5년전 시각장애인 중창단 ‘더블라인드’로 활동하고 있던 김지호를 눈여겨본 배은주 대표가 “키우고 싶다”며 손을 내민 것.

당시 무대가 고팠던 김지호는 정단원이 되며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여러 무대에 올랐다. 2016년에는 ‘김지호밴드’까지 결성해주기도 했다. 그런 배은주 대표는 어떤 존재일까. 김지호는 ‘이모’라고 말했다.

“저는 무대에 오르는 게 가장 좋거든요. 항상 공연도 많이 잡아주시고, 무대가 생기면 꼭 저를 올려주려고 노력하세요. 특히 밥 먹는 거 철저하게 잘 챙겨주시거든요. 어떤 공연을 가도 밥을 꼭 먹일 수 있도록 하세요.(웃음)”

■김지호와 연애, “26년째 모태솔로…긴 머리, 향기 나는 그녀”

김지호의 첫 싱글 ‘알바트로스’는 언뜻 가슴 아픈 이별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런 곡을 소화하기 위해선 연애 경험이 있었을 터인데. 김지호는 “26년째 모태솔로”라며 수줍게 웃었다.

사랑이야기가 담긴 곡을 소화하기 위해서 드라마와 영화를 많이 참고한다. 가장 가슴 아팠던 드라마는 무려 15년전 방영된 ‘천국의 계단’.

“저는 드라마를 볼 때 소리를 통해 머리로 이미지를 그려요. 그 상상 속에서 ‘아, 표정은 웃고 있겠구나’ 하면서요. 10살 때 천국의 계단을 봤는데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마지막에 주인공이 아무 말도 못하고 ‘헉헉’ 댈 때 가슴이 찡하더라고요.”

실전 경험은 없지만, 짝사랑을 많이 했단다. 대학교 동기와 선배를, 교회 친구를 혼자 좋아하며 끙끙댔다고. 고백은 한 번도 하지 못 한 채 혼자 가슴앓이하며 사랑을 배웠다.

그런 김지호의 이상형은 긴머리, 향기 나는 촉감, 그리고 목소리도 예뻐야 한다. 또 교인이었으면 좋겠다고. “성격은 외형적이지도 않고, 조용하지도 않고 적당했으면 좋겠고요. 눈이 높죠? 올해는 연애하고 싶어요!”

김지호 첫 디지털싱글 ‘알바트로스’ 앨범 자켓.ⓒ한국장애인국제예술단

■김지호와 음악, “꿈과 희망, 가장 높이 비상할 것”

김지호는 장애가 아닌 실력을 키우고자 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서울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에 입학해 본격 뮤지션의 길을 걸었다. ‘스타킹’으로 주목받을 때만 해도 김지호는 유명한 가수, 메이저급 가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을 꿈꿨다. 음악을 대할 때도 스토리텔링 보다는 과한 기교를 부리며 멋있어 보이려는데 집중했다.

하지만 26살이 된 김지호는 ‘오래 남는 음악’을 꿈꾼다. 이번 발매된 디지털 싱글 ‘알바트로스’는 팝발라드에 서정적인 곡으로, 김지호의 꿈을 향한 도전과 용기가 담겼다. 특히 작사는 그의 ‘이모’ 배은주 대표가 맡았다. 세상에서 가장 멀리, 가장 높게 비상하고 싶단다.

현재 ‘알바트로스’는 지난 9일부터 각 음악 사이트에 공개됐으며, 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기다리고 있다. 김지호는 다음 앨범에는 스스로 작사와 작곡, 편곡까지 계획하고 있다.

“지금 컴퓨터로 음악을 만드는 미디 작업을 배우고 있어요. 애플에서 로직 프로그램이 있는데 예전에는 시각장애인이 쓰기 불편했거든요. 최근 들어서 개선되면서 시각장애인 뮤지션들끼리 함께 공부하며 음악 작업하고 있어요. ‘시각장애인 뮤지션으로서 초석을 다지자’ 그런 의미에서 공부하고 있어요.”

실용음악학도인 김지호는 과거 대학 재학시절 전자음악 수업시간에 동기들에게 도움을 받거나, 가만히 앉아있었어야만 했다. 이제 누구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신의 음악을 꿈꾼다. 그래서 꼭 자작곡을 내고 싶다고. ‘감동포르노’를 넘어선 김지호는 음악가로 한 단계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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