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선생님’이라 불리는 강남국 씨.ⓒ에이블뉴스

매우 무더웠던 지난 여름, ‘나눔 속에 핀 꽃’이라는 에세이가 에이블뉴스 편집국으로 도착했다. ‘강남국’이라는 자필과 함께 저자 소개 속 ‘소아마비로 인해 정규교육을 받지 못함.’이라는 첫 문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독학으로 영어와 한문을 터득해 스무 살 때부터 영어강사로 활동하며, 문학 전도사, 칼럼니스트 및 에세이스트, 영어교육봉사자까지. 뜨거운 불덩이를 가슴에 안고 있다는 그가 너무 궁금했다.

“하이, 굿모닝~”

서울시 강서구 방화동 방화11종합사회복지관에서 만난 강남국 씨는 정확한 영어 발음으로 기자를 맞았다. 정장을 갖춰 입고 곧 있을 영어수업 준비를 하는 강 씨의 표정은 한결 여유로웠다. 마치 잊고 있던 학창시절 속 은사님이 떠올랐다. 환한 미소와 함께 “땡큐, 유월 웰컴~”이라는 대답과 푸른 대나무란 뜻의 ‘청죽’, 그의 호가 담긴 명함도 함께 건넸다. “항상 싱싱함을 잃지 않고 싶은 마음”이란다.

영어강사가 천직이라는 강 씨는 일주일에 네 번, 소외계층을 위한 영어 수업을 위해 전동휠체어를 타고 25분 거리를 오간다. 몸이 부서질 듯 아파도, 비바람이 불거나 눈보라가 몰아쳐도 수업을 거른 적이 없다.

수업 방식도 딱딱하지 않다. 10명의 수강생들이 도착하면, 따뜻한 커피와 차로 담소를 시작한다. 일상생활도 묻고, 건강 이야기도 오간다. 그저 수강생과 선생님의 관계가 아닌 끈끈한 정이 묻어났다.

몇 달 전 환갑을 맞은 강 씨를 위해 이곳 수강생들은 강의 시간에 배웠던 ‘If I can(만약 내가)’ 영시를 낭독해주기도 했다. 24년간 해온 무료 강의가 헛되지 않았음을 온 몸으로 느낀 순간이었다.

방화11사회복지관에서 열린 화기애애한 수업 시간.ⓒ에이블뉴스

“지금까지 세월이 흘러서 찾아오는 제자들이 많아요. 저한테 2년 반 정도 공부를 배웠던 영우가 기억에 남네요. 뇌성마비 장애가 너무 심해서 온 몸이 틀어지고 말을 거의 알아듣기 힘들었던 친구에요. 그렇게 장애가 심해도, 손가락 하나로 독수리 타법을 이용해서 컴퓨터를 치던 영우가 기억에 남네요. 정이 많이 들었거든요.”

1957년 충남 보령시 삽시도라는 섬에서 태어난 강남국 씨는 2살 때 소아마비로 200호 중 유일하게 걷지 못하는 아이였다.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강 씨에게 교육의 기회는 없었다. 사춘기가 시작되며 극심한 생앓이를 시작했던 강 씨는 뒤늦게 형으로부터 한글을 배워 스스로 영어와 한문을 터득할 수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자체로도 뿌듯했던 강 씨는 쓸모없는 사람이 되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특히 영어에 재미를 붙여 한 달에 대여섯 권씩 영어책을 완독하며, 20대 초반부터 한 때 ‘족집게 강사’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서른 네 살이던 지난 1990년 5월, 제 삶을 바꿨습니다.”

소아마비로 장애가 심했던 강 씨에게 수술의 기회가 찾아왔다. ‘제가 걸을 수 있다면 배움이 간절한 100명의 사람에게 영어를 가르치겠습니다.’란 간절한 기도는 세 번의 수술 끝에 이뤄졌다. 목발과 보조기를 이용해 숱한 이웃을 만나며 1994년 자신의 집에서 장애 아동과 기초생활수급 가정 자녀를 모집해 무료로 영어교육을 시작했다. 2005년부터는 서울 방화2종합복지관과 방화11종합복지관에서 약간의 교통비만을 받으며 강의하고 있다.

“애초에 돈 때문에 교육을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쓰임 받고 있는 자체가 행복하거든요. 내가 살아가는 존재의 이유가 바로 나눔 속에 있죠.”

강남국 씨가 일주일에 두 번씩 강의를 하는 방화11사회복지관, 열심히 강의를 듣는 수강생의 노트.ⓒ에이블뉴스

올해 환갑의 나이에도 강 씨는 한 달에 10권 씩 꼬박 독서를 잊지 않고 있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Life is learning’, 산다는 것은 배우는 것이라는 말처럼 공부를 하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단다. 끊임없이 책을 읽고 공부를 해서 삶의 신선도를 유지하고 싶다는 그는 참 못 말린다.

“제가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쓸모없다는 단어인, useless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가장 슬프고 견딜 수 없습니다. 공부도 뭐든, 죽기 3일 전까지 쓸모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것이 제 지론이거든요.”

강서구장애인단체총연합회 이사이기도 한 강 씨는 최근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됐던 ‘특수학교 설립 논란’에 누구보다 가슴아파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는 빠짐없이 모두 읽으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는데.

“상처는 박박 긁으면 낫지 않습니다. 주민들의 항의와 무릎을 꿇는 사태가 났다는 것은 상처를 박박 긁는 행위입니다. 상처를 낫게 하려면 싸매줘야 합니다.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거죠. 그래도 요즘엔 좋은 소식이 들려오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휠체어 선생님 강남국 씨는 죽을 때까지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무료교육을 놓지 않겠다고 했다.ⓒ에이블뉴스

강 씨는 지난 2007년 ‘서울시 봉사상’ 본상, 2014년 행정자치부 주관 ‘제4기 국민추천포상’ 대통령 표창, 2015년 ‘제27회 아산상’을 수상했다. 아산상을 수상한 해 스승의 날에는 ‘휠체어선생님’이라는 닉네임을 달고 한화이글스 홈경기에서 시구도 했다. 그 날 총 24곳의 언론에서 그의 기사를 다뤘다.

제법 유명인사가 됐지만, 강남국 씨는 여전히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무료교육을 놓지 않겠다고 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인생의 마지막까지 말이다. 그의 묘비명도 이미 정했다. ‘여기 생을 사랑했던 강남국 잠들다.’

“불꽃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식지 않는 뜨거운 불덩이 하나 가슴에 안고 나눔 속에 핀 꽃의 향기를 더 높이 활짝 펼쳐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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