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1일 대학로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진행된 '김지호 밴드와 음악이 흐르는 토크쇼'. 8월 초대손님인 에이블뉴스 백종환 대표가 이야기 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31일 오후 7시 서울 대학로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5층에서는 8월 문화가 있는 날 마지막 순서로 '김지호 밴드와 음악이 흐르는 토크쇼'가 열렸다.

문화가 있는 날은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장애인과 비장애인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프로그램을 풍성하게 준비, 진행되고 있다.

이날 토크쇼에는 에이블뉴스 백종환 대표가 초대됐다. 그동안 연사로 나서 장애인의 인권과 삶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전했지만 이날 만큼은 자신의 인생담을 솔직한 이야기로 풀었다.

토크쇼는 강연자가 주제에 맞는 내용을 일방향으로 풀어내는 방식이 아닌 '키워드 토크'로 진행됐다. 진행자와 백 대표가 피켓에 붙은 종이를 뜯어내고, 그 안에 적힌 키워드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궂은 날씨에도 이음센터 5층에 마련된 공연장에는 백 대표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장애인과 비장애인 청중들이 모였다.

토크쇼 진행자가 키워드가 숨겨진 종이를 때고 있는 모습. ⓒ에이블뉴스

진행자가 종이를 뜯어내자 나온 것은 하얀 카네이션이라는 키워드였다. 생소한 단어가 나오자 청중들은 '카네이션의 색깔은 빨간색인데, 왜 하얀 카네이션이라는 단어를 썻을까?'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백 대표가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에는 5월 8일 어머니의 날(현재 어버이의 날)이 되면 학생들은 어머니에게 빨간 카네이션을 달아드렸다. 반면 어머니가 없는 학생들은 자신의 가슴에 하얀 카네이션을 달았다.

5살 무렵 어머니를 여읜 백 대표도 자신의 가슴에 하얀 카네이션을 달아야만 했던 것.

더군다나 어머니의 날에 함께 진행되는 학예회에서 클라이막스를 장식할 학생으로 선발돼 운동장을 가득 메운 2000여명의 학생과 학부모를 울려야하는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편지글을 낭독할 때 마다 운동장의 학부모들은 고개를 숙이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고 시간이 흐르자 운동장은 울음바다가 됐다.

"학교에서는 어머니의 날 이벤트가 크게 성공했다면서 쾌재를 불렀을 겁니다. 저는 눈물을 파는 탤런트로 이용당한거죠. 이벤트는 동네에서 한번 더 이뤄졌습니다. 편지 낭독이 끝난 후 이장님은 눈깔사탕 두어개를 손에 쥐어주셨고 저는 집으로 가는 길에 가슴 속으로 어머니는 불렀습니다"

백 대표의 애절한 유년시절 가슴아픈 이야기를 들은 청중들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 백 대표의 초등학교 시절의 이야기에 감정이입을 했기 때문이다.

숙연한 분위기도 잠시. 진행자는 토크쇼를 이어가기 위해 다음 키워드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백 대표가 뜯어낸 종이 뒤에는 '호랑이 씹어갈 놈'이라는 키워드가 적혀있었다. 진행자는 "두 번째 키워드에는 욕이 나왔습니다. 이게 무슨 욕입니까"라고 능청스럽게 물었다.

'호랭이 씹어갈 놈.' 이 욕은 지난 2014년 7월 작고한 백 대표의 누나가 정겹게 쓰던 욕이다. 전라도 지역에서 많이 쓰이고 있다.

어린시절 백 대표는 누나의 집에서 머물렀다. 1960~70년대 초반은 우리나라가 너무나 가난해서 대부분 집에서는 숟가락 하나를 더 놓는 것이 큰 부담으로 작용됐다. 때문에 누나는 매형이나 같은 부락에 살고 있는 매형의 본가, 큰집, 작은집들의 눈치를 봐야만 했다.

백 대표가 학급의 회장을 맡으면 누나는 "이 호랭이 씹어갈 놈아, 염병헌다고 회장을 맡아 왔냐? 오살 놈!"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매형과 큰집, 작은집, 동네 사람들은 모두가 들어야 했기 때문에 악을 써가며.

"누나는 자랑을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내 동생이 이렇게 똑똑하고 영리하다는 것을 말이죠. 드래내놓고 자랑할 수는 없었지만 시댁을 향해, 마을 사람들을 향해 숟가락 하나 더 얹은 내 동생이 이렇게 잘 났으니 입 다물라며 부담을 털어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겁니다"

다음으로 뽑힌 키워드는 고아원 선생님이었다. 백 대표는 5살 때 어머니를 잃은 후 가족이 해체되는 경험했다. 8남매는 뿔뿔이 흩어졌고 백 대표는 전남 나주의 한 고아원에 맡겨졌다.

어린시절 백 대표는 아픈 곳이 있어도 어려운 사정 때문에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고아원에서 만난 선생님은 그는 치료를 해주는 마음씨 고운 사람이었다. 백 대표는 선생님의 행동에 많은 감동을 받았고 이 때부터 자신을 치료한 선생님과 같은 고아원 선생님이 되는 꿈을 꿨다.

백대표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고아원 선생님의 꿈을 실행하기 위해 구로공단에 있는 한 교회를 빌려 야간학교를 설립했다. 구로공단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백 대표는 검정고시라도 도전해서 상급학교에 진학하도록 군입대 전까지 3년여 동안 야학교사로 활동했다.

9월 10일이라는 키워드가 나오자 청중들은 궁금증에 휩싸였다. 진행자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 같은지 청중들에게 물었고, "장애인을 처음 만난 날", "에이블뉴스 창간일" 등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이에 백 대표는 머쩍은 웃음을 짓고 토크쇼에 참석한 아내를 보면서 결혼기념일이라고 말했다. 토크쇼에는 백 대표의 아내 뿐만 아니라 자녀 둘도 함께했다.

백 대표에게 결혼은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일생일대의 사건이다. 결혼은 그에게 딸과 아들이라는 행복을 만들어준 것. 특히 남편이 최고라며 팔짱을 끼고 걷기를 즐겨하는 인생의 반려자도 생겼으니 말이다.

시낭송을 하고 있는 에이블뉴스 백종환 대표. 이날 백 대표는 자작시 '장애인은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검버섯'을 낭송했다. ⓒ에이블뉴스

토크쇼의 쉬어가는 코너로 마련된 백 대표의 시낭송은 청중들의 감성을 뒤흔들었다. 때마침 찾아온 가을분위기 때문일까. 숙연한 분위기 속 낭송된 '장애인은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검버섯' 두 자작시는 일부 청중의 눈물을 자아내기도 했다.

백 대표를 생각하면 에이블뉴스가 연상되는 만큼. 키워드에도 에이블뉴스가 포함 돼 있었다. 백 대표는 취재기자 시절 일간지들이 장애인과 관련해 기사화하지 않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한 일간지 기자가 장애인 기사를 독자들에게 내보낼 수 없는게 데스크의 생각이라는 말을 들은 것.

이 일을 계기로 백 대표는 장애인 전문기자가 되기로 결심, 1999년 8월 다니던 신문사에 사표를 쓰고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에이블뉴스 창간작업에 몰입했다. 3년여 끝에 에이블뉴스라는 이름으로 종이신문과 인터넷 신문을 창간하게 됐다.

에이블뉴스는 그동안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척수장애인의 소변배출 행위인 넬라톤 등 장애인들의 삶과 직결된 문제에 관심의 끝을 놓지 않고 이슈화시켜 해결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장애인을 곁을 지켜주는 든든한 대안언론'의 역할을 다하기 위한 노력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에이블뉴스는 상근기자의 기사로만 만들어지는게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 입니다. 장애인의 자립은 사회참여라고 하지요. 에이블뉴스에 참여하는 것도 사회참여의 한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에이블뉴스를 함께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에이블뉴스 백종환 대표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인 청중들. ⓒ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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