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뉴욕마라톤에 참가한 신명진씨가 숨을 고르고 있다. ⓒ신명진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장애인이 있다. 그는 전국장애인체육대회 수영부문에서 금메달을 따냈고 한강을 횡단했다.

백두산을 오르는데 성공했고, 세계 4대 마라톤이라 불리는 뉴욕마라톤의 풀코스를 완주했다. 이 모든 것을 이뤄낸 주인공은 서울도서관 사서 신명진(40·지체1급)씨다.

그는 중도장애인이다. 5살 무렵 호기심에 올라간 기차가 움직이면서 떨어졌고 이로인해 왼쪽 팔을 제외한 다리와 팔이 절단됐다.

움직임에 제약이 있다보니 그는 유년시절 제한된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꿈으로 삼았다. 다른 친구들이 꿈으로 대통령이나 과학자를 말할 때, 그는 약사가 되겠다고 말했다.

약사는 약국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약을 제조하기만 하면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장애가 있어 스스로에게 제약과 한계를 정했다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후 여의도의 작은 광고인쇄 회사에 입사한 그는 일생일대의 전환점을 맞았다. 평소 다를 것 없던 어느날. 업무를 보던 그는 회사 밖에서 '쿵쿵'하는 소리를 듣고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나섰다.

소리를 낸 주인공은 한 지체장애인이었다. 그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계단을 올르면서 휠체어를 끌고 있었다.

"그 분을 보면서 뒷통수를 한대 맞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스스로에게 한계를 그어놓고 살아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되돌아보니 저는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한계를 정한 채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수영 연습을 하고 있는 신명진씨. ⓒ신명진

그는 자신에게 큰 깨달음을 준 A씨와 교분을 쌓아갔다. A씨와 많은 이야기를 했고 인천시의 장애인 수영선수였던 A씨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수영에 발을 들이게 됐다.

수영은 결코 쉬운 운동이 아녔다. 기본적으로 수영을 하기 위해서는 물에 떠야 했지만 왼팔만 있던 그는 신체균형을 잡기 힘들었다. 신체의 장애는 물에 뜨는 것 조차 쉽게 그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포기는 하지 않았다. 계속 반복해서 수영의 기초를 연마했고 마침내 25m 레일을 스스로 힘으로 완주했다. 완주를 통해 수영을 계속할 수 있는 동기를 얻었고 성취감도 갖게 됐다고.

기본에 충실해 가면서 연습한 그는 50m에 이어 100m를 완주하게 됐다. 실력을 쌓아가던 어느날, 자신의 실력이 어느정도 되는지 궁금해진 그는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 출전해봐야 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도서관 사서공무원로 임용이 된 2003년. 그는 처음으로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 출전해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자신감이 붙었기 때문일까? 그는 장애인체육대회에 계속 출전했고 2006년 출전한지 3년 되는 해에 열린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수영으로 얻은 자신감은 한강 횡단으로 이어졌다.

수영을 하면서 자신감과 성취감을 얻어가던 어느날 지인이 데스노트라는 만화책을 건냈다. 만화 속에서 나오는 데스노트는 살생부와 같은 것이다. 이 노트에 이름이 적인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그는 여기에 착안해 노트를 하나 만들었고 이름을 드림노트라고 적었다. 드림노트에는 평소 이뤄내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적어나갔다. 이 노트에 적인 꿈들은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는 생각에서 말이다.

"이 노트에 하나씩 꿈을 적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여자친구 사귀기 같은 소소한 것부터 한강 횡단, 백두산 등반 등도 적었죠. 드림노트에 적힌 꿈들 중 이뤄진 것들도 있습니다."

그는 꿈을 실천하기 위해 꿈을 구체화하는 작업도 같이 병행했다. 이를 위해 실천노트라는 것을 만들어 세부적인 계획을 설정했고 이 것들을 실천을 한 뒤에는 노트에 '실천했다'는 것을 기입했다.

서울도서관 사서 신명진씨가 책을 꼽고 있는 모습. ⓒ에이블뉴스

2009년 백두산 등반, 2012년 한강 횡단을 비롯한 많은 도전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뉴욕마라톤 완주를 꼽았다. 백두산 등반은 보조인과 함께 했지만 뉴욕마라톤은 혼자서 완주를 했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마라톤을 시작한 것은 한 글귀 때문이었다. 인생은 마라톤처럼 길다는 내용을 담은 '인생은 마라톤이다'라는 글귀를 잘못 해석한 것. 마라톤을 한번 해봐야 인생을 느낄 수 있다고 해석한 그는 그렇게 마라톤을 시작했다.

국내 마라톤대회에 참가하면서 실력을 키워나가던 중 2011년 세계4대 마라톤이라고 불리는 뉴욕마라톤이 개최된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는 당시 다리에 종기가 생겨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42.195km라는 풀코스를 완주해본 적이 없었다.

완주를 할 수 있을까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같다는 생각에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처음 도전하는 풀코스 마라톤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더군다나 다리에 생긴 종기는 그를 더욱 힘들게 했다. 악조건 속에 출발한 그에게 한줌의 빛줄기가 내렸다.

캐서린이라는 미국의 한 여성이 말을 걸어온 것. 그녀는 뉴욕마라톤을 통해 자신의 기록을 갖고 싶었을텐데 그의 옆에서 함께 뛰면서 그를 응원했다. 실수로 넘어지기라도 하면 행인들에게 박수를 처 달라고 하기도 했다.

피니쉬라인이 얼마 안남은 지점에서 피로감이 한번에 몰려왔다. 고지가 얼마 안남았다고 생각하니 마음가짐이 틀어졌다고.

"결승선을 향해 가는 한걸음 한걸음이 지옥같았습니다. 그러나 결승선에서는 캐서린이 빙그레 웃고 있었죠. 저는 그분을 와락 안고 눈물을 펑펑흘렸습니다. 만약 그녀가 없었으면 포기를 할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분은 하나님이 제가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수 많은 도전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한 그는 최근 새로운 분야에 도전을 시작했다. 팍팍한 삶 속에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전도사가 되기로 한 것이다.

아직까지는 강사로서 인지도가 적지만 그래도 올해에만 10여회를 다녔다. 주로 강연을 하러 가는 곳은 학교와 단체로, 최근에는 파주시에 위치한 1사단으로 강연을 다녀왔다.

그는 강연을 다니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을 망설임 없이 새터민 지역에 위치한 초등학교로 꼽았다. 이 학교에는 탈북자 가정의 아이들과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 기초생활수급자의 자녀들이 다니고 있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꿈을 이루는 법에 대해 강연했다. 꿈을 어떻게 구성하고 구체화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쉽게 설명하려 애썼다. 강연을 들은 아이들의 피드백은 바로바로 왔다.

메모에는 "나는 굉장히 불우하다고 생각했는데 아저씨를 보면서 나는 불우한게 아녔다. 어떻게 장애를 갖고 많은 것들을 해낼 수 있었는가. 나도 꿈을 찾아보겠다" 등의 내용이 적혀있었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그의 롤 모델은 지체장애인 닉 부이치치다. 누군가에게 희망과 꿈을 이야기하는 희망전도사가 돼고 싶다는 것.

"제가 누군가에게 감히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말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저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으니까, 당신도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서울도서관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신명진씨. ⓒ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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