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나 원장이 원생에게 미술지도를 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너무 잘 그렸는데? 그런데 이 빈 공간에 사람을 넣어 그리면 더 좋을 것 같아.”

앞치마를 두른 한 선생님은 그림을 놓고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이 같이 말했다.

초등학생인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가감 없이 의견을 제시했고 선생님은 아이들의 의견을 경청했다. 대화 내내 웃음이 꽃피었고 서로가 불쾌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경기도 의정부시 신곡동의 본화실미술학원의 수업 풍경이다. 계속되는 아이들의 질문에 지칠 법도 한데 웃으면서 한명 한명의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본화실미술학원 김보나(41·지체4급) 원장을 만나봤다.

그는 어린 시절 그림그리기를 좋아했다. 당시 장애인은 취업을 하기 힘들 것으로 생각한 부모님은 그림을 좋아하는 그를 미술학원에 보냈다.

학창시절 공부를 모나지 않게 했던 그였지만 그림그리기를 더 좋아했기 때문에 입시미술을 준비했다. 그렇게 상명대학교 조형예술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학과에서 모범생으로 통했다. 대학에 재학하는 동안 장학금을 놓쳐본 적이 없을 정도로 학업에 매진했다. 그렇게 대학을 4년 다니고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 쯤, 미술공부를 위해 프랑스 유학을 생각하고 있었다.

틈틈이 프랑스어 공부를 하는 등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그의 지도교수인 구자승 교수가 호출했다. 이 자리에서 구 교수는 그가 생각도 하지 않았던 러시아 유학을 추천했다.

“저는 현대미술은 전공하기 싫었고 프랑스에서 학위를 밟을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도교수님이 러시아 화가들의 그림을 보여주면서 쌍트 빼째르부르그 국립미술대학교를 추천해주더군요. 생각도 못한 러시아였지만 교수님이 보여준 그림을 보고 화풍에 홀딱 반했습니다. 결국 러시아로 갔습니다.”

김보나 원장이 러시아 유학시절 그린 크로키. ⓒ에이블뉴스

러시아로 유학을 간 그는 한국과는 전혀 다른 교육 환경에 매우 놀랐다.

지도교수가 제자의 그림을 평가하고, 평가에 다른 의견이 있으면 그것을 바로바로 표현하는 것을 봤기 때문. 한국의 교수와 학생 사이에 형성돼 있는 수직적인 문화에 익숙했던 그이기에 놀람은 더했다.

또한 한국 사람들은 그림을 그릴 때 앉아서 고상하게 그리지만 러시아 학생들은 바투 선 채로 그림에 몰입하는 것도 충격 자체였다.

러시아에서 석사와 박사를 모두 마친 그는 2007년 귀국을 하면서 모교인 상명대학교 조형예술학과에서 2009년까지 강의를 하게 됐다. 수업시간에 1초만 늦어도 지각처리를 하는 등 깐깐하게 수업을 진행했지만 학생들로부터 인기는 많았다고.

“한 학기 수업이 모두 끝나면 학생들은 교수에게 수업평가를 합니다. 100점 만점 중 80점미만으로 내려가면 재임용이 안 되는데, 저는 이상하게 90점 이상을 매번 받았습니다. 물론 한번 85점을 받은 적이 있지만요. 아마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확실히 지적하고 수업은 충실하게 해서 그런 것 같아요.”

특히 2007년에는 미술과 비평 아트페스티벌에서 우수상 수상했다. 2011년 열린 장애인미술대전에서는 입선과 특선, 2012년 열린 한국아카데미 미술대전에서 우수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김보나 원장이 자신의 작품 인형만드는 소녀를 설명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러시아에서 유학을 하는 동안 막연하게 장애인을 위해 무언가를 해보면 어떨까라고 생각했던 그는 그림을 통해 장애인들에게 다가가기로 마음먹었다.

2007년 3월부터 10월까지 반포사회복지관에서 두드림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미술지도를 했고, 지금은 한국장애인문화협회의 ‘저소득 장애 아동·청소년 문화예술 역량강화 지원사업 '열손가락'를 통해 매주 일요일마다 미술지도를 하고 있다. 자폐성장애인 2명, 청각장애인 2명이 참여하고 있다.

“매주 일요일마다 저희 화실에서 아이들에게 미술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자폐아들은 제게 지도를 받으면 선생님 멋져, 예뻐 이렇게 감정을 표현합니다. 기분이 좋고 재미있다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술에 손을 댄지 십여년. 입시미술학원을 차려서 돈을 벌 수 도 있지만 그는 아이들과 어울리는 게 좋다며 2011년 미술학원을 개원했다. 비록 돈은 적게 벌더라도 일을 통해 행복을 느껴야 한다는 마음가짐 때문이었다.

그는 정말 쉴 틈 없이 살아가고 있다. 일주일 중 목요일을 제외하면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아이들을 가르친다. 특히 금요일에는 성인취미반을 운영해 오후 10시는 돼야 일을 마친다. 일주일 중 유일하게 쉬는 날인 목요일에는 개인레슨을 하고 있다.

이렇게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이지만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누구든 미술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 미술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책을 쓰고 싶다는 것.

미술의 기술적인 기법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미술의 근본적인 것을 엮어 책을 만들어내겠다는 포부다.

“처음에는 아동미술과 관련한 책을 쓸 생각이었어요. 그러나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누구나 쉽게 미술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을 만드는 것으로 생각을 바꿨죠. 여유가 생기면 십여년 동안 쌓은 미술지식과 제 인생을 녹여 책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러시아 유학시절 김보나 원장의 모습. 김 원장이 지도교수인 예레미예프와 가족들 사이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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