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욱씨가 제품 제작에 필요한 천을 가위로 자르고 있다. 그의 가위질에서 장인정신이 느껴진다. ⓒ에이블뉴스

“오후 1시까지는 제품을 완성해서 고객에게 보내야 합니다.”

서울시 송파구 문정로에 위치한 작업실에는 한 장애인이 휠체어용 시트를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규격에 맞지 않을까봐 집중을 하면서 천을 재단하는 그에게 장인의 모습이 연상됐다.

그렇게 10여분이 흘렀을까. 휠체어 시트 제작에 몰두하던 그는 짬이 났는지 “인터뷰 합시다”라며 말을 걸어왔다.

휠체어 리폼 전문제작업체 휠폼 대표 김병욱(42·지체1급)씨를 만나봤다.

IMF가 터지면서 굴지의 대기업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져가던 1997년. 그는 대구시 달서구의 한 길가에서 친구를 만나기 위해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던 중 뺑소니 사고를 당했다.

순식간에 승용차가 그를 들이 받았고 쓰러져 있는 그를 놔둔 채 도주했다. 다행히 뺑소니범은 사고가 난 지 며칠이 안 돼 붙잡혔지만 그는 의사로부터 흉추 9번 완전마비라는 진단을 받게 됐다.

“어머니와 함께 보상을 받기 위해 뺑소니범의 집에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뺑소니범은 없고 단칸방에 그의 자녀들 4명만이 있더군요. 그 모습을 본 어머니는 제게 (보상을 받는 것을)포기하고 살자면서 다독였습니다.”

휠체어 등받이가 잘 만들어졌는지 치수를 재고 있는 김병욱씨. ⓒ에이블뉴스

사고를 당한 그는 하지에 감각이 없는 것을 일시적인 현상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움직여야 할 다리는 요지부동이었다.

테니스 운동선수와 코치를 하는 등 활동적이었던 그는 평생 휠체어를 타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드릴 수 없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도 생각했던 그는 정신병원 문턱 앞까지 가기도 했다. 그러나 어머니를 통해 알게 된 국립재활원의 재활프로그램을 받으면서 장애를 받아드리기로 마음먹었다.

“저보다 훨씬 심한 장애를 갖고 있는 분이 차를 운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재활프로그램을 받으면서 장애인도 사회의 일원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장애인은 평생 누어서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왔던 제 자신에게 창피함을 느꼈죠.”

국립재활원 등에서 6개월 간 재활프로그램을 마친 그는 곧바로 경기도 광주에 있는 직업전문학교 귀금속공학과에 입학해 1년 과정을 마친 후 졸업했다.

이후 2000년 경기도 성남의 한 귀금속 제작업체에 정직원으로 입사해 10여년을 몸담았다. 이 때 같은 회사의 귀금속디자이너였던 지금의 아내를 만나기도 했다.

제봉틀 작업을 하고 있는 김병욱씨. 이 작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에이블뉴스

그러나 갑자기 아내의 건강이 안 좋아졌고 병원에서 수발을 하게 된 그는 정든 직장을 떠나야만 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아내의 건강이 호전됐고, 다시 직장을 찾던 중 우연히 휠체어 전문제작업체에 입사하게 됐다.

귀금속제작 업체에서 제품들의 광을 내는 업무를 맡았던 경험을 살려 휠체어전문제작 업체에서도 같은 일을 하게 됐다.

그러나 휠체어 시트 등을 제작하는 작업에 매료됐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재봉틀 기술 등을 습득해 6년 동안 수백대의 휠체어 시트 등 제품을 만들었다.

“제가 휠체어장애인 당사자이다 보니 어떤 부분이 불편하면 어떻게 보완을 해야 하는 지 잘 압니다. 시트는 0.5cm만 잘 못 재단해도 푸욱 꺼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정말 꼼꼼하고 세심하게 만들어야 하는 작업입니다.”

그러던 중 시중에 유통되는 수입 휠체어에 부착된 시트의 가격이 턱 없이 비싼 것을 알게 됐고, 장애인들에게 합리적인 가격에 높은 품질의 제품을 제공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생각은 바로 실천으로 이어졌다. 회사에서 독립해 휠체어 시트 전문제작업체를 창업한 것.

현재 그는 아내와 함께 고급시트 가격(70~80만원)의 3분의 1가격 수준인 30만원 선에서 시트를 맞춤 제작하고 있다. 시트 뿐만 아니라 휠체어의 알루미늄을 제외한 천으로 만드는 것은 모두 제작하고 있다.

손수 재단부터 박음질까지 '도사'라는 입소문이 퍼지자 제품 제작을 요청하는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고. 현재 제작해야 할 제품은 2주 분량이 남아있다.

“전국 각지에서 많은 분들이 휠체어용 시트 등을 제작해달라고 문의가 들어옵니다. 저와 아내 둘이 고객의 요구를 반영해 맞춤제작으로 만들다보니 만족도가 높습니다.”

김병욱씨가 해진 휠체어 시트를 보여주고 있다. ⓒ에이블뉴스

가족이 쓰는 것을 만든다는 마음가짐으로 제품을 제작을 하고 있는 그는 밀려드는 일에 쫓겨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회사 규모를 늘려 질 좋은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보편화 시키고 싶다는 계획을 밝혔다.

“회사 규모가 커지면 제품의 디자인을 개선해 다양한 시트를 장애인들이 접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장애인에게 최고의 복지는 직업을 갖는 것’이라는 말처럼 장애인들을 직원으로 고용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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