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해 가진 아이가 1개월만에 사경이 왔다. 아무런 원인이 없이 뇌손상이 온 작은 아이를 두고 엄마는 “치료하면 일반적으로 될거야”라는 마음가짐으로 치료에 온 힘을 매달렸다.

많은 경제적 지출과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19년차 ‘민지엄마’로 다시 태어난 이정욱씨(48세, 서울 서대문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지가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웃는다.

19년차 '민지엄마' 이정욱씨.ⓒ에이블뉴스

정욱씨의 맏딸 윤민지(뇌병변1급, 19세)양은 장애정도가 심한 중증중복장애인이다. 뇌손상으로 인한 뇌병변 장애와 그와 동반한 언어장애,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지적 장애, 시야가 흐린 시각장애, 뇌전증, 희귀난치 코드까지. 민지양의 장애를 설명하기에는 많은 덧붙임이 필요할 정도다.

그런 민지를 24시간 동안 지키는 ‘민지엄마’ 정욱씨는 직장맘 수준으로 하루가 바쁘다. 정욱씨의 하루는 새벽부터다. 남편과 둘째딸의 등교를 시킨 뒤 자고 있는 민지를 깨우고, 차로 15분 거리의 특수학교 한국우진학교에 데려다준다.

하교 이후에는 물리치료, 작업치료, 음악치료기관에 들러 오후5시가 돼서야 집에 들어온다. 그것이 끝이 아니다. 저녁식사 준비부터 가사활동까지 정욱씨의 하루는 너무나 길다. 물론 그녀의 하루 속에는 민지가 대부분이다.

“민지는 지적장애와 사지마비까지 있다 보니까 전동휠체어 타기가 힘들어요. 수동휠체어에 자세보조용구를 고정해서 제가 항상 밀어서 등하교를 시키고 있어요. 학교 후에는 물리치료, 작업치료 등 민지를 위해 거의 투자하고 있구요. 민지가 당장 일어서서 걷지는 못하지만 현재의 건강이라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치료를 멈출 수 없더라구요.”

민지가 어렸을땐 ‘어떻게 살아갈까’ 비관하며 살아왔던 정욱씨, 이제는 민지의 건강과 장애에 대해 척척박사가 됐다. 24시간 민지를 위해 살아가는 정욱씨의 모습에 초등학생인 둘째딸은 섭섭할 만도 하지만 오히려 장애를 가진 언니를 너무나 귀여워하고, 잘 보살펴 준다고.

“장애형제를 가진 비장애형제들이 봉사와 배려심이 더 투철해요. 저희 부모들은 비장애형제에게 부담주지 말자 하는 마음이 있는데 자연스럽게 언니를 너무 사랑하더라구요. 구강기를 못 벗어나 손을 빨고 있는 민지를 애기처럼 돌봐주기도 하고, 제가 자리를 비우면 밥도 먹이고, 양치까지 시키더라구요. 그럴 때 참 보람을 느껴요(웃음).”

그러나 집 밖을 벗어난 사회는 냉혹할 뿐이다. 장애아이를 키우는 가정은 장애아이가 최우선이지만, 사회는 장애아이가 최우선이 아니다. 외출시 따가운 시선도, 차별적인 정책 등 모든 것들이 정욱씨네 가족에 유리처럼 박힌다.

“어릴땐 여행을 많이갔어요. 근데 아이가 크면서 여행을 다니고 싶어도 신변처리가 안되니 외출이 줄어들게됐어요. 휴양림에 휠체어 접근로를 만들어놨다고는 하지만 그걸 일일이 밀고 올라가려면 참 중노동이거든요. 한번 크게 몸살난 이후로 글쎄요, 요즘은 전 국민 등산열풍이라지만 우리집은 등산복도 없고, 캠핑도구도 하나도 없어요.”

19년차 '민지엄마' 이정욱씨.ⓒ에이블뉴스

그런 냉혹한 현실 속에서도 훈훈한 미담은 있었다. 4년전 장애아이를 둔 부모들과 설악산 여행을 떠나 숙박시설 근처에 식당을 방문했을 때였다.

낡은 나무 경사로가 있어서 식당 사장이 휠체어를 탄 아이들을 하나하나 올려줘서 식사할 수 있었다.

1년뒤 다시 찾은 식당에서는 나무경사로가 아닌, 콘크리트로 단단하게 경사로를 만들어 놨던 것. 정욱씨는 고마운 사장님의 따뜻한 배려를 잊지 못한다며 “이름이라도 알면 홍보라도 할텐데”하며 안타까워 했다.

‘민지엄마’ 19년차 정욱씨는 최근 5년전부터는 민지만이 아닌 민지와 같은 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들을 위한 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부모회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회장직을 맡아 아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데. 결성된지 5년, 회원은 400명으로 늘었다.

“부모회가 조직된 이유는 자세보조용구때문이었어요. 2002년 당시만 하더라도 자세보조용구 중 이너를 만드는 분이 한 분이셨거든요. 일본에서 수입한 부속품으로 했기 때문에 엄청난 고가였구요. 체형이 커지면 또 바꿔줘야 하구요. 저희 부모들 7~8명끼리 이런 얘기하면서 전동보장구가 건보적용이 된 것처럼 우리도 노력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결성된 것이예요. 4년동안 의원들, 서울시, 건강보험공단 안 따라다닌곳이 없어요. 결국 지난해 10월 건보가 적용이 됐네요.”

전문가가 아닌 자식을 가진 보통 엄마들의 모성애가 큰 정책을 이끌어낸 것이다. 그러나 아직 부모회에서의 과제는 산적되있다. 최중증장애인일수록 기피하는 활동지원제도, 신변처리를 위한 침대형 화장실 등. 부모들이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갈 세상은 아직 멀기만 하다.

“최중증장애인은 활동보조에서도 사각지대에요.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보조인이 와서 ‘내가 이 아이를 맡을 수 있을까’ 판단하고 선택되어지는 약자예요. 여러 가지 도움을 받고 싶지만 그것을 해줄 보조인이 없으니까 2년전부터는 제도를 이용 못하고 있어요. 화장실의 경우도 조금만 공간적 배려를 해준다면 충분히 열고 닫는 침대를 마련할 수 있거든요. 답답한 현실이죠. 아직 멀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욱씨는 웃는다. 눈만 뜨면 민지는 “새아침이다, 행복하다”라고 말을 건넨다. 남편과 가사에 대한 스트레스가 민지의 환한 미소에 날라간다.

하루 일과가 너무나 고되지만 민지의 미소 하나는 모든 것을 보상해준다. 건강하게 내 곁에만 있어주고, 속썩이지 않는 것 그 자체가 ‘효도’라는 정욱씨는 민지가 있어 너무나 행복하다.

“다들 그래요, 무슨 효도를 하겠냐, 자식노릇 할수 있겠냐고요. 근데 우리아이는 엄마와 한번도 트러블이 없었고, 늘 행복하게 해줘요. 남편 때문에 속상하더라도 민지 때문에 모든 것을 보상받거든요. 민지 덕분에 목사님 기도도 한 번 더 받고, 민지 덕분에 주차도 쉽게 할 수 있고 민지는 제게 큰 선물이예요. 민지가 오래오래 내곁에 있어주길 바래요. 그거면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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