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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달팽이의 별' 부부 "우리 사랑 특별하죠"

시청각 중복장애 딛고 15년째 사랑 가꿔온 조영찬·김순호씨 부부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2-03-12 08:19:39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어둠과 적막 속에 세상을 만난 조영찬(41) 씨. 태어날 때부터 그는 잘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다. 나이가 들수록 시력과 청력은 점점 약해져 그는 일찍부터 시청각 중복 장애인으로 살아야 했다.

국내에는 아무런 통계가 없지만 세계적으로는 1만 명당 한 명꼴로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시청각 중복 장애인. 나머지 9천999명은 상상하기 어려운 가혹한 삶을 살아야 했던 그에게 어느 날 한 줄기 햇살이 찾아들었다.

천사같은 여자 김순호(49) 씨. 자신도 척추장애를 지니고 있기에 영찬 씨의 아픔을 헤아릴 수 있었던 순호 씨는 등껍데기 속에 움츠린 달팽이처럼 지독한 외로움에 갇힌 그에게 손을 내밀어 연인이자 친구이자 조력자가 돼주었다. 그렇게 서로 체온을 나눈 지 15년. 그동안 이들의 사랑은 닳지 않았고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더 깊고 단단해졌다.

이들의 삶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달팽이의 별'(이승준 감독)은 지난해 다큐멘터리 분야에서 세계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장편경쟁부문 대상을 받았다.

세계인의 심장을 두드린 주인공 영찬·순호 씨 부부를 영화 개봉(3월22일)을 앞두고 최근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순호 씨는 영화 개봉을 앞두고 "긴장되고 기대도 되고 설레기도 한다"며 "감독님이 우리를 예쁘게 사는 모습으로 잘 편집해줘서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평소에 두 사람은 마치 피아노를 치듯 상대의 손가락 등을 점자 배열로 두드리는 '점화' 방식으로 소통한다. 하지만 이날 영찬 씨는 재학 중인 학교(나사렛대학교)에서 지원해 준 점자 입력 도우미 학생의 도움을 받아 기자의 질문을 점자 단말기를 통해 곧바로 전달받았다.

영화를 눈으로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그는 감독이 준 대본으로 영화를 "읽었다"고 했다.

1997년 만나 10개월의 연애 끝에 이듬해 결혼하고 15년째 애틋한 사랑을 지속해온 부부. 오랜 기간 한결같은 사랑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뭘까.

"비결은 없어요. 가슴에 사랑을 더 깊이 있게 가꾸려고 노력할 뿐이죠. 사람들이 처음엔 좋아서 못 견딜 정도로 좋아하다가 결혼하고 나면 싫증이 난다고들 말하는데, 저는 진정한 사랑은 결혼할 때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연애 때는 내가 저 사람을 굉장히 사랑하는 것 같았는데, 결혼해 살아보니 내 사랑이 굉장히 미숙하고 인격도 많이 부족하고 남을 배려하는 게 참 부족하다는 걸 느끼게 되고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도 많이 들더군요. 조금 더 성숙하고 아내를 잘 이해해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에요."
영찬 씨는 순호 씨와의 사랑이 특별하다고 했다.

"다른 아내와는 다르게 24시간 나와 같이 있어야 하고 가정주부 일만 하는 게 아니라 통역도 하고 설리번(헬렌 켈러의 스승) 역할도 해야 하죠. 어디 갈 때든 항상 그림자처럼 붙어 다녀야 하니까 더 관계가 돈독해야 돼요. '우리가 살아가는 구조 자체가 남다른 특별한 사랑을 필요로 하는 세계로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고 '아내도 각별한 사랑 없이는 이것을 감당할 수 없겠구나' 생각하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의 사랑이 새롭게 느껴져요."

아내에 대한 영찬 씨의 찬가는 이어졌다.

"처음엔 내가 철이 없어서 '그냥 서로 좋아하면서 살면 되겠지' 했어요. 시청각장애인과 담담하게 평범하게 사는 것 자체도 힘든 일인데, 아내는 눈살 찌푸리지 않고 기쁘고 즐겁게 나와 살아주는 게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시간이 갈수록 아내가 더 크게 느껴지고…. 이렇게 손으로 만져보면 키도 작고 손도 작은데, 이상하게 내 옆에 큰 사람이 같이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내 아내 속에는 거인이 숨어 있어요. '사랑의 거인'…."
영화 속에서도 그렇지만, 영찬 씨의 말은 한 편의 시(詩)에 가까웠다.

이들은 대전에 있는 한 장애인선교회 모임에서 만났다.

모임에 나와서도 늘 의자에만 앉아 사람들과 아무런 교류를 하지 못했던 영찬 씨였다. 그러다 선교회에서 함께 연극을 보고 온 어느 여름날 저녁 순호 씨는 영찬 씨와 그 친구에게 저녁은 먹었느냐고 물었고, 인근에 있는 자신의 자취방에 데려가 라면을 끓여줬다. 몇 달이 지나고 친한 누나-동생이 연인으로 발전했지만, 결혼을 결심하기란 쉽지 않았다.

"(영찬 씨) 참 마음으로는 서로 좋아해도 사는 건 현실 문제니까 결심이 쉽지 않았아요. 내가 전혀 경제적인 능력이 없으니까 혼자 사는 것도 어려운데, 사랑하는 사람이 나랑 결혼하면 고생하게 되니까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결혼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이 사람한테 '빨리 좋은 사람 만나서 시집가라'고 했어요. 그런데 정이 들고 내가 많이 외롭고 이 사람 놓치면 더 좋은 사람 만나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내가 돈 벌어서 책임지겠다고 말할 순 없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살 길을 잘 책임져주실 테니 같이 잘해보자'고 기도하면서 결혼하자고 했죠."

순호 씨의 고민 역시 상대를 더 아끼는 마음 때문이었다.

"다른 장애인들도 나름 재능이 있지만, 영찬 씨를 봤을 때 '장애가 중하지만 재능이 참 많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 당시 영찬 씨가 공부할 수 있는 학교가 없었지만, 세월이 지나면 공부할 길이 열릴 텐데 '영찬 씨가 현명한 여자를 만나 내조를 받으면 참 훌륭한 사람이 되겠구나' 싶었죠. 그런데 나는 시골에서만 살다가 도시에 막 올라와서 동서남북 구분도 못 하고 부족한 점 투성이어서 내조를 잘할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결국 결심하게 됐죠."

부부는 지금 같은 꿈을 꾸고 있다.

2006년 일본에서 열린 '시청각장애인대회'에 참석해 '충격적인' 경험을 한 뒤 국내 시청각장애인들의 현실을 개선하는 선구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순호 씨) 일본에서는 시청각장애인들에게 두 명씩 통역과 활동 보조인이 지원돼요. 시청각장애인들이 통역 지원을 받으며 공부하고 사회생활 하고 직장도 다니고…. 그런 걸 보고 되게 충격받았어요. 우리나라에서는 다 방치돼 있는데…, 우리가 먼저 봤으니까 뭔가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깨가 무거워졌어요."

부부가 여러 언론 매체의 취재에 응하고 3년여간 다큐멘터리 촬영까지 허락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영찬 씨) 나는 아내 외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도 어색하고 긴장돼서 표정이 경직되고 사람 만나는 것 자체가 굉장히 힘든 상황인데, 영화까지 찍는다면 얼마나 부담이었겠어요. 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촉발될 수 있다면 다른 건 감수하자고 마음먹었죠."

영찬 씨의 이런 사명감은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금 한국의 시청각장애인들이 방치돼 있어서 이들을 위한 교육이나 복지서비스가 절실히 필요한데, 변변한 단체도 하나 없는 현실입니다. 사람들이 미국의 헬렌 켈러는 기적이니 하면서 존경하는데, 왜 우리나라의 헬렌 켈러에는 관심이 없는지 답답해요. 시청각장애인들이 사회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 헬렌 켈러 못지않게 뛰어난 사람들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습니다. 하루속히 이들이 사회로 나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미국의 시청각장애인 재활·복지제도를 배우고 와 국내에서 실현하고 싶습니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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