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4일 에이블뉴스 사무실에서 백종환 대표이사와 인터뷰를 갖고 꿍따리 공연단 활동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강원래씨. ⓒ에이블뉴스

[이슈와 사람들]⑥꿍따리 유랑단 강원래 단장-(하)

클론 강원래씨가 최근 공연단체 ‘꿍따리 유랑단’ 활동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클론 최고의 히트곡 ‘꿍따리 샤바라’에서 이름을 딴 ‘꿍따리 유랑단’(고정욱 지음/미래M&B 출판)의 이야기가 소설로 출간되면서 관심을 끌고 있는 것.

강씨는 끼가 있는 장애인 동료들과 함께 꿍따리 유랑단을 꾸려 지난 2008년 6월 28일 서울보호관찰소에서 첫 공연을 펼친 이래 전국의 소년원과 보호관찰소 등을 돌며 공연을 펼치고 있다. 입소문이 나고, 소설까지 출간되면서 공연 요청이 많이 들어와 얼마 전에는 중국 공연까지 다녀왔다.

에이블뉴스는 지난 8월 24일 강원래씨를 직접 만나 꿍따리 유랑단을 꾸리게 된 스토리는 무엇인지, 꿍따리 유랑단 활동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 물었다.

강씨는 에이블뉴스 사무실로 직접 찾아와 가진 인터뷰에서 솔직담백하게 꿍따리 유랑단의 풀 스토리를 공개했다. 소설을 넘어 뮤지컬, 영화로까지 준비되고 있는 꿍따리 유랑단의 매력 속으로 빠져 들어가 보자.

백종환: 이제 인간 강원래에 초점을 맞춰보겠습니다. 요새 방송도 하고, 학교에 강의도 많이 나가시면서 굉장히 바쁜 시간을 보내고 계신데, 한주간의 일정이 어떻게 되세요?

강원래 : 일단 일주일에 4일은 라디오 생방송을 해요. 금요일에는 KBS 1TV에서 하는 ‘사랑의 가족’프로그램 월·화·수 3일치 분을 녹화해요.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는 꿍따리유랑단 일정이 있으면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공연도 해요. 그리고 3주에 한번이나 2주에 한번 정도는 강원도 동해시에 있는 한중대학교에서 예전부터 같이 일했던 댄서들과 '춤과 대중예술'이라는 과목으로 유아교육과·간호학과·사회복지학과 학생들한테 춤을 가르쳐줘요. 장애아동한테는 이런 춤, 아주머니들에게는 이런 춤, 하면서 춤을 가르치는 방법을 가르치는 거죠. 그밖에도 댄스학원도 하고 있고, 가끔씩 꿈이라든가 춤이라든가 희망 등 여러 가지 주제로 강연을 하고 그렇습니다. 저녁에는 집에서 우리 강아지하고 송이하고 잠깐 나가서 놀고.

백종환 : 방송인·교수·꿍따리유랑단의 단장이시기도 한데, 항상 ‘클론 강원래’를 많이 얘기하시는 것 같아요. ‘클론 강원래’에 대한 애착이 강하신지.

강원래: 애착인거죠. 내가 제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고. 클론이라는 이름 자체, 그리고 준엽이하고의 관계에 대해서. 사람들이 저를 소개할 때 ‘클론의 멤버였던 강원래’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왜 그런 말을 할까’라는 생각을 하면서부터 ‘클론의 강원래라고 얘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왜 ‘클론이었던’ 강원래지? ‘인기 많았던 강원래씨’는 괜찮아요. 지금은 인기가 없으니까. 그런데 왜 ‘클론이었던’이라고 하지? ‘장애인이 됐으니까 못한다’는 생각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부터 ‘클론의 강원래입니다’라고 말하게 됐죠. 또 앞으로 계속 클론의 음반을 낼 거고요.

내가 스스로 더 자신감 있게 ‘클론의 강원래, 중요한 강원래, 잘생긴 강원래, 인기 있는 강원래’라고 생각을 해야 되는데 ‘나는 불쌍한 강원래, 능력 없는 강원래, 손가락질 받는 강원래’라고 혼자 생각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클론의 강원래, 멋진 강원래, 자신 있는 강원래’하고 더 나한테 주문을 걸게 된 거죠.

백종환 : 혹시 장애인 중에서 구준엽 씨처럼 그렇게 우정이 돈독한 친구가 있어요?

강원래 : 창○이라는 친구와도 친하고, ‘하늘빛 사랑’이라는 사이트에서 아주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많아요. 그 친구들이 저에게 있어서는 영웅이죠. 꿍따리유랑단의 스토리의 소스도 많이 줬던 친구들이고. 특히 그 중에 한○이라는 친구가 있어요. 최근에 캄보디아 여자랑 결혼 했어요. 전신마비인데, 며칠 전에 애를 낳았어요. 그런 친구들하고 친하고, 또 우리 꿍따리 유랑단 멤버들, 특히 나하고 제일 트러블이 많은 형○라는 시각장애인이 있어요. 중학교·고등학교 친구 그 친구가 서울예전 나오고 동숭아트센터 무대감독이었어요. 그 친구의 전문 분야는 세트에요. 이 친구도 나랑 트러블이 많아요.

백종환 : 꿍따리유랑단 책에서도 그런 장면이 묘사가 되잖아요.

강원래 : 많이 싸운 얘기 좀 써달라고 했는데, 고정욱 작가가 아이들 스토리라 많이 뺐죠.

꿍따리유랑단 공연을 하면서 마음의 여유를 찾았다고 말하는 강원래씨. ⓒ에이블뉴스

백종환 : 장애를 입은 지가 10년정도 되죠?

강원래 : 오는 11월이면 9년이죠.

백종환 : 책에 ‘지금의 생활이 예전보다 불편한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래도 이제는 여유를 찾았다’ 이런 언급이 있더라고요. 그 말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강원래 : 욕심이 많이 없어진 거죠. 어제도 공연을 하고 오면서, 그리고 며칠 전에는 영등포 교도소·안양 소년원에서 공연을 하고 오면서 내가 남을 위해 공연한다는 것, 내가 착한 일을 한다는 것을 느꼈어요. 교도소에서 공연을 하는데, 재소 자 중에 할아버지들, 별의별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우리 공연을 보고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제가 사고 이후 심리치료라는 걸 받았거든요. 제가 굉장히 난폭하고 욕하고 이럴 때, 심리치료를 약 8주 정도 받았는데 그 때 심리치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약하기 때문에’였어요. 저도 많은 장애인들을 보면서 포악한 장애인도 많이 봤고, 별 것도 아닌 일에도 화내는 장애인도 많이 봤어요. 그런데 그게 자신의 육체적·심리적 상처를 숨기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만큼 자기의 상처를 숨기고 아픔을 숨기려고 하는 거죠. 그런데 공연을 하면서 그 느낌이 들었어요. ‘저 사람들도 다 착한 사람들인데, 마음이 여리기 때문에 그걸 숨기기 위해서, 부모님이 없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서 어릴 때 말썽을 피웠거나 돈을 훔쳤거나 그런 사람들인데 저 사람들한테도 따뜻한 손길이 간다면, 우리하고 같이 어울릴 수 있다면 저 사람들도 하나의 꿈을 가지고 열심히 살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러면서 내가 참 좋은 일을 하고 있다 이런 느낌이 들었어요.

옛날에 꿍따리샤바라 공연할 때는 공연 끝나고 내려오면 ‘야, 다음은 어디야? 어디 거긴 얼마래? 어저께 얼마 입급 됐냐. 내일은 또 어때’ 이게 하루 일과였고 ‘야, 너는 그것밖에 못하냐’ 이렇게 꾸중만 했는데 지금은 ‘오늘은 이런 공연 좋았으니까 내일은 더 열심히 해보자. 오늘 진짜 좋았다. 너 연기 너무 좋았어’하는 칭찬으로 바뀐거에요. 물론 지금의 나도 완벽하진 않지만 점점 변해가는 게 재미있고 웃음이 나고, 기분이 좋은 거예요. 예전보다 돈은 못 벌고 육체적으로 조금 힘들지만, 여의도에서 일 끝나고 오는 길에 한강을 바라보면서 ‘좋다’ 이런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것, 굉장히 여유 있는 마음, 그게 어떻게 보면 장애인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어쩔 수 없는 방법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좀 더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것, 사람들이 나한테 손가락질할 때 웃으면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최근에도 그런 얘기 많이 들어요. 아줌마들이 아직까지 못 걷냐고, 언제쯤 걸을 수 있냐고 물어요. 그럴 때는 ‘삼사년 안에는 걸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라고 얘기하는 게 편해요. ‘못 걸어요’ 보다 편한 거예요. 전유성씨도 책에서 그런 얘기를 썼더라고요. ‘비겁하게 사는 것도 세상을 현명하게 사는 방법이다. 겁쟁이로 사는 게 현명하게 사는 방법이다.’ 저도 좀 더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을 하고 있죠. 어느 한 순간 변하는 건 아니에요. 경험을 쌓으면서, 또 다른 장애인들을 만나면서 변하는 거죠. 난 휠체어 탄 애들만 봐도 반갑다니까요. 저 친구들도 나랑 똑같은 아픔이 있겠지, 하고 괜히 말 걸어보고 싶고. ‘어떻게 하다 사고가 났어요, 휠체어 어디서 샀어요’ 하고 얘기하다 보면 ‘어디 병원 다니세요? 감각은 있어요?’하면서 금방 친해져요. 얘기하다보면 술 한 잔 마시고 힘든 얘기도 같이 하고. 그러면서 변하는 거죠. 확 여유로워졌다, 너무 행복하다는 건 아니에요. 나도 가끔 변해가는 나를 보면서 깜짝깜짝 놀랄 때도 있고, 그럴 때는 눈물도 나고.

장애인은 힘들다는 편견을 깨고 싶다고 말하는 강원래씨. ⓒ에이블뉴스

백종환 : 장애인으로서 사회를 바라보면 어떤 점이 가장 불편한 것 같아요?

강원래 : 장애인으로서 사회를 살아가는 것이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불편한 거죠. 사람들이 나를 보고 ‘불편하시죠, 힘드시죠’하면 내가 힘든 점을 찾아야 돼요. 예전에 저도, 우리 꿍따리유랑단원들도 많이 얘기했던 거예요. 장애인들 중에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왜 말을 못할까, 걷지 못할까, 왜 이렇게 생겼을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그런데 휠체어 타고 밖에 나왔는데 사람들이 ‘불편하시죠’하면 그때부터 불편해지는 거예요. 흑인이 흑인들 무리에 있다가 백인들 사이에 갔는데 백인들이 ‘넌 흑인 아니야, 괜찮아. 힘내’이러면 미치는 거예요. 사람들이 ‘강원래, 장애인처럼 안보여. 역시 장애인이 아니야’ 라고 말하는 게 날 힘들게 만드는 거죠.

장애인은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야 된다는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난 힘들지 않아요. 힘들게 보기 때문에 힘든 척을 해야 되는 거지. 그게 제일 힘든 거죠. 나는 그냥 강원래면 되는데, 길거리에 나갔을 때 ‘몸도 불편한데 왜 나오셨어요’하는 얘기를 듣는 게 힘든 거죠. 나는 이런 편견을 제일 바꾸고 싶은 사람 중에 하나예요. ‘불편하시죠’이런 질문을 했을 때 ‘불편하지 않아요’ 라고 얘기하기도 뭐하고. 왜냐하면 장애인 주차장 같은 부분에서 어느 정도는 지원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그러니 ‘완전히 멀쩡해’라고 얘기하기도 어렵고, 또 ‘너무 힘들어요’라고 말하면 계속 ‘장애인은 힘든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질 거고. 나도 아직 이 부분에 대해선 결론을 내리기가 힘들어요.

백종환 : 우리 한국적 문화에서 ‘건강하시죠’, ‘쾌차하시죠’처럼 인사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강원래 : 그런 표현 방법에 대한 매뉴얼도 어렸을 때부터 고쳐간다면 아까 얘기했듯이 ‘원래 씨 오늘 까만색 옷 입었는데 멋지다’ 이 얘기를 먼저 하면 좋은데 만나자마자 ‘아이고 돈 언제 벌어요. 애를 못 낳는 다면서요’라고 하면 ‘저는 정자가 모자라서요’하면서 설명하기도 어렵고. 이제는 ‘예, 언젠가는 되겠죠’ 이런 식으로 넘어가는데, 아직까지 사람들의 그런 시선이 불편한 거죠. 시설은 많이 좋아지고 있어요. 그게 2000년 넘어가면서 좋아지고 있다는데, 그 시점에 제가 장애인이 됐으니 어떻게 보면 땡 잡은 거죠. 그 전에는 장애인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백종환 : 에이블뉴스 자주 보시지는 못하죠?

강원래 : 보죠. 가끔이지만. 그런데 ‘사랑의 가족’이나 우리 라디오 작가들은 거의 하루 종일 달고 살더라고요. 소재를 찾아야 되니까. 장애인 사회에 대해서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데, 너무 좁아요. 세상이 좁은 건 맞지만 또 굉장히 넓어요. 그랜드 캐넌이라든가 나이아가라 폭포라든가 그런데 가보면 ‘야 이런 세상에 나는 참 하나의 돌멩이에 불과하구나. 세상은 굉장히 넓고 할 일은 되게 많구나’하는 걸 느끼죠. 세상에는 별의별 것이 다 있는데 장애인들은 그 세계에서만 사는 거예요. 장애인 청소년 중에 거의 70% 이상의 꿈이 사회복지사에요. 반면에 비장애청소년들의 꿈은 연예인이에요. 왜 비장애인 청소년들의 꿈하고 장애인 청소년들의 꿈이 다른지. 그걸 깨고 싶어요. 꿍따리유랑단도 그런 변화에 보탬이 됐으면 좋겠어요. 저도 제가 장애를 가졌을 때 가장 서러웠던 것 중에 하나가 내가 다녔던 학교에 장애인이 한명도 없었어요. 휠체어 탄 애들 중에는. ‘장애인이 아니었다면 다른 애들처럼 할 텐데’하는 안타까움이 있었죠. 지금도 어느 정도 통합교육이 이뤄지고 있지만 좀 더 완벽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보탬이 되고 싶어요.

백종환 : 에이블뉴스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강원래 : 자신감을 가지라는 거죠. 자신감을 갖고, 사람은 누구나 다 죽으니까 이왕 사는 동안 하나의 꿈을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해봐야 되지 않을까요. 저도 꿍따리유랑단을 데리고 세계 여행을 떠나는 것이 지금의 꿈이에요. 그 꿈을 갖고 열심히 도전하다보면 중국 공연도 갔다 오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공연을 보여줄 수 있겠죠. 언어가 달라서 말은 안 통하더라도 장애는 다 통한단 말이에요. 그 나라에도 못 보는 사람이 있을 테니까. 그런 꿈을 갖고, 한 번 쯤은 최선을 다해 노력해보자는 거죠. 쌍코피 쏟으면서.

백종환 : 장시간 고맙습니다.

강원래 : 제가 영광이죠.

강원래씨가 지난 8월 24일 에이블뉴스 사무실에서 백종환 대표이사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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