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론 강원래씨가 꿍따리 유랑단을 이끌고 전국 공연을 펼치게 된 배경을 이야기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이슈와 사람들]⑥꿍따리 유랑단 강원래 단장-(상)

클론 강원래씨가 최근 공연단체 ‘꿍따리 유랑단’ 활동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클론 최고의 히트곡 ‘꿍따리 샤바라’에서 이름을 딴 ‘꿍따리 유랑단’(고정욱 지음/미래M&B 출판)의 이야기가 소설로 출간되면서 관심을 끌고 있는 것.

강씨는 끼가 있는 장애인 동료들과 함께 꿍따리 유랑단을 꾸려 지난 2008년 6월 28일 서울보호관찰소에서 첫 공연을 펼친 이래 전국의 소년원과 보호관찰소 등을 돌며 공연을 펼치고 있다. 입소문이 나고, 소설까지 출간되면서 공연 요청이 많이 들어와 얼마 전에는 중국 공연까지 다녀왔다.

에이블뉴스는 지난 24일 강원래씨를 직접 만나 꿍따리 유랑단을 꾸리게 된 스토리는 무엇인지, 꿍따리 유랑단 활동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 물었다.

강씨는 에이블뉴스 사무실로 직접 찾아와 가진 인터뷰에서 솔직담백하게 꿍따리 유랑단의 풀 스토리를 공개했다. 소설을 넘어 뮤지컬, 영화로까지 준비되고 있는 꿍따리 유랑단의 매력 속으로 빠져 들어가 보자.

백종환: 제가 ‘꿍따리 유랑단’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우리 기자들도 꿍따리 유랑단을 읽고 리뷰를 썼는데요. 제목이 뭔지 아세요? 꿍따리 유랑단 소설은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이런 제목으로 써놨어요. 어디까지가 사실입니까?

강원래: 거의 사실이라고 봐야죠. 일단 꿍따리 유랑단 소설을 만들게 된 것은 소스가 너무 아까운 거예요. 그리고 나도 욕심이 생겼을 거고. 일단 꿍따리 유랑단 공연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를 말씀드리면, 나한테 메일로 제의가 왔어요. 법무부 직원한테, 이름도 기억나요. ○○○계장이라고. 그때가 2003년인가 2004년인가 우왕좌왕하고 힘든 시기였는데, 이 사람이 메일을 보내서 느닷없이 폭주족 애들한테 강연을 해달라는 겁니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답 메일을 보냈죠. 장난 치냐고. 그랬더니 이 사람이 나보고 전화번호 가르쳐 달라고 하더라고요. 싫다고 그랬죠.

내가 집에서 할 게 없으니까 인터넷을 하게 된 거예요. 사고를 당하고, 처음 인터넷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 전에는 하루 부산을 두 번씩 갔다 온 적도 있을 만큼 바빴죠. 최근에도 개그맨 이수근씨를 만났는데, ‘나는 진짜 형들을 보면서 연예인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어요’라고 말하더라고요. 부산에서 싸구려 MC를 보고 있었는데, 우리가 출연해야 되는데, 시간이 늦어가지고 헬기를 타고 왔대요. 헬기타고 바람에 날리는 모습들. 야, 저게 대한민국 연예인이구나. 우린 그럴 마음이 없었는데….

그렇게 바빴던 사람이 할 일이 없으니까 인터넷만 하고 메일이 와서 메일 답장도 보내고…. 어떤 연예인이 장난 메일일지도 모르는데 답장을 보내겠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진지했던 거예요. 통화도 하게 됐는데, ‘원래 형, 한번 내려와 봐요’ 형형 그러면서 진상을 치는 거죠. 법무부 직원이. 차비 정도는 준다고 해서 천안까지 내려갔어요. 내려가서 보니까 아니나 다를까 진짜에요. 보호관찰소라는 게 있는데요. 음주운전, 폭주족, 무면허 그런 거 가지고 감방에 보낼 수는 없으니까 이런 교육을 시키는 거예요. 1교시에는 경찰서장이 얘기하고, 2교시는 범죄심리학 교수가 정신교육 시키고 있고, 3교시는 내가 하는데 애들이 질문을 하는 거예요. 1교시, 2교시 애들 다 잤어요. 문자 보내고 뒤에서 떠들다가 끌려 나오던 애들이 내가 강의하는데 질문을 하는 거예요. 질문을 한단 내용이 ‘아저씨 오토바이 몇 CC였어요?’, ‘보험금 얼마나 받았어요?,’ ‘아저씨 옛날에 오토바이 훔치고 그랬죠?’ 등이었어요. 공감대가 형성이 되면서 애들이 재밌어 하는 거예요. 법무부 직원이 이것을 보고 저를 명예보호관찰관으로 위촉하게 돼요. 2004년도부터 했어요. 이 내용은 꿍따리 유랑단 소설하고 비슷하지요.

그 강연은 일 년에 열 번 했어요. 여름 때 쉬고 겨울 때 쉬고 일 년에 딱 열 번만 하겠다. 한 달에 한번 정도만 하겠다고 했어요. 그렇게 해서 4년, 5년, 6년 쭉 했지요. 그런데 내가 강연의 전문가도 아니고, 강사로 먹고사는 사람도 아니고 솔직히 내가 애들한테 법적으로 뭐 하지마라 얘기할 입장도 안 됐어요. 나도 그랬으니까. 오토바이를 훔쳐도 내가 더 많이 훔쳤고, 술을 마시고 탔더라도 내가 더 많이 탔고…. 대신 나는 사고 날 당시 면허가 있었고, 헬멧을 썼을 뿐이지요. ‘헬멧을 꼭 써라. 면허는 있어야 된다. 그래야 피해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일을 가져야 나처럼 보험금도 많이 받을 수 있다’ 그런 식의 얘기지요.

그때 공연을 하면 안 될까,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우연치 않은 기회에 문화예술위원회에서 그런 지원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지원금이 회당 500만 원이에요. ‘야, 이거 회당 500만원 가지고 어떻게 할까’ 하다가, ‘싼 놈을 써보자’ 생각했죠. 그래서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 나한테 힘을 줬던 놈들한테 한번 찾아가서 꼬셔보자고 생각했죠. 한명씩 불러갖고 ‘유랑공연 할래’라고 하니까, 애들은 너무 좋다고 하는 거예요. 강원래랑 같이 할 수 있으니 자랑도 할 수 있는 거고, 내가 잘난 건 아니지만 홈페이지에도 있어요. ‘너희들 만나면서 나는 삼류가 됐고, 너희들은 날 만나면서 일류인척 할 거다. 하지만 너희들이 일류가 되려면 열심히 해야 된다.’ 당연히 신났죠. 원래형이랑 하면 구준엽도 볼 수 있고…. 이런 식이 된 거죠.

그 친구들한테 맞춰가면서 생기는 트러블이 너무 심했어요. 그런 과정이 제일 힘들었죠. 그런 과정을 나는 소설로 쓰고 싶었어요. 이 소스가 너무 아까웠죠. 나는 항상 하는 얘기가 뭐냐면 그래도 이왕 만드는 거 잘 만들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평소에 눈여겨봤던 고정욱 작가한테 가서, ‘형 이런 얘기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래? 한번 볼께!’ 고 작가가 공연을 와서 봤어요. 그리고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야, 진짜 단순한 거 갖고 사람을 감동을 시키는구나. 여러 사람들이 노는 것도 재밌고 사람들 에피소드도 재밌을 거 같고. 하자!’.

내가 얘기한 거는 이런 이야기 기분 나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내가 형을 초이스한 이유는 딱 하나라고. 아이들한테 편하게 읽을 수 있게 써달라고. 이게 어떻게 보면 하나의 매뉴얼이 될 수도 있는 거고. 이 장애의 특징, 이 장애의 특징 등. 장애인에 대한 에티켓을 이 책에 써주면 좋겠다고. 그렇게 해서 소설이 만들어지고 된 것이에요.

강원래씨는 꿍따리 유랑단의 스토리를 뮤지컬과 영화로 만드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에이블뉴스

백종환: 금방 말씀하신 것처럼 굉장히 편하게 접근이 되요. 작품을 읽는데 금방 읽었어요. 아주 쉽게 읽을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아동들이나 청소년들을 위한 도서로 선정이 되면 많은 분들이 이 책들을 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책을 통해서 장애인 인식 개선에 크게 기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강원래: 솔직히 어느 정도 경험이 있어야 매뉴얼이 생겨지는 것이거든요. 공연하면서 내가 제일 부딪혔던 게 아까도 얘기했지만, 내 스스로 이런 얘기 나와요. ‘이 장애인 새끼들!’ 이런 얘기 나올 정도로….

○○○라는 친구가 나랑 제일 트러블이 심했어요. 안 하겠다는 거예요. 소속감이 없어요. 알고 봤더니 초·중·고등학교를 안다녔어요. 학교 교육이 잘못됐다, 군사적이다, 너무 강압적이라고 지적하지만 소속감이라는 좋은 점은 기를 수 있죠. 학교를 안 가게 되면 선생님한테 혼날 수 있고 부모님한테 혼날 수 있고 결석 다음에 퇴학이라는 절차가 있기 때문에 지켜야 된다는 게 있는 것이죠. 이것들은 그게 없으니까 ‘안할래요’…. 항상 디스카운트로 살아온 것이거든요.

우리 멤버 중에 잘렸던 ○○○라는 친구가 있어요. 이놈은 만날 30분이 늦어요. ‘왜 늦었어?’ ‘장애인콜택시가 늦게 왔어요.’ ‘너, 왜 늦었어?’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겨줄 사람이 없었어요.’ ‘그게 핑계가 되니 이놈아.’ ‘너 만약에 내가 이 시간까지 오면 100억을 준다고 하면 늦을 거냐고.’ ‘사랑하는 여자 친구가 기다린다면 늦을 거냐고.’ ‘네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책임감이 없는 거야. 너 나가!’ ‘예. 잘못 했습니다’가 없어요.

내가 ‘이런 연기 했으면 좋겠다, 해봐!’ 이러면 ‘저, 요 부분은 내가 이렇게 바꿔 보면 안 될까요?’라는 말하는 애들이 한 명도 없었어요. ‘예. 알았어요.’ 이게 끝이예요. 하라면 하란대로 하고 저리로 가라면 저리로 가고, 늦으면 핑계대고 모든 게 디스카운트에요. ‘하지마!’ 그러면 ‘네’하고 나가버리고…. ‘잘못 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이것도 없어요. 개념이 있는지 없는지….

그때 대본은 써놓았어요. 이 친구를 자르면 이 친구처럼 하반신 마비인 사람을 찾아야 됐죠. 하반신 마비에다가 휠체어타고 슬픈 연기를 할 수 있는 애들로 찾으려면 너무 한정이 돼 있잖아요. 휠체어 탄 애들만 눈여겨보는 거예요. 만나서 얘기하면 관심이 없다고 하고.

○○○한테 내가 편지를 썼어요. 미안하다고. 나도 너처럼 힘들 때가 있었는데, 우리 이겨 나가보자. 그 친구가 그 편지를 보고 울은 거예요. 슬프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다시 왔어요. 요즘에는 ‘그때 오빠가 안 잡아 줬더라면 내가 더 힘들었을 텐데, 지켜주고 힘내줘서 고맙습니다. 힘을 실어줘서…’. 저도 변해가고, 그 친구들도 변해가는 거죠.

백종환: 너무 재밌었어요. 지금은 다른 언론을 통해서도 ‘꿍따리 유랑단’이 많이 소개 되고 있잖아요. 책은 많이 팔리나요?

강원래: 많이 팔린다고 얘기를 들었어요. 책 팔리는 거하고 저하고는 별 상관이 없어요. 고 작가한테, 형님이 알아서 유명하게 잘 팔라고 말했어요. 형이 대박 나야 그러면서 장애에 대해서 더 많이 알려질 거니까….

백종환: 꿍따리 유랑단은 작년까지 공연을 마쳤지요? 올해도 계속하는 것인가요?

강원래: 작년까지 하고 끝내려고 그랬어요. 모여서 공연하고 왔다갔다하다가 혹시라도 사고가 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트러블이 날 수 있으니까 끝내려고 그랬는데, 올해 한 번 더 해달라고 제의가 들어왔어요. 작년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지정한 일흔 몇 개 팀 중에서 우리가 2위를 했어요. 우수한 성적으로. 좋은 내용이니 한 번 더 하라고 제의가 왔죠. 작년보다는 700만원 더 지원받아가지고 하는데, 그것도 모자라죠.

강원래씨는 꿍따리 유랑단을 통해 장애라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소외된다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에이블뉴스

백종환: 예산이 많이 줄었어요. 옛날에 제가 장애분야 심사를 하러 다녔는데, 약 300군데를 했는데요. 굉장히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강원래: 저도 심사를 보러갔어요. 분위기가 50개 팀이 밖에 줄 서 있고, 마술하는 사람도 있고, 심리 치료하는 사람도 있고…. 내가 가니까 이 사람들이 기절초풍하는 거예요. 저 사람이 심사위원인가? 뭔가? ‘내가 이런 아이템이 있어서 이렇게 이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문화예술위원회 심사위원들한테 얘기를 하니까, ‘장애 분야에서 지원하는 돈이 더 많은데, 왜 그쪽으로 안가고 이쪽으로 왔습니까?’ ‘저는 그쪽 아이템은 아니고, 소년원 또는 법무부 보호관찰소, 교도소를 다니겠습니다. 그래서 이쪽으로 왔습니다.’ 지원금 적다면서 그쪽에서도 걱정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괜찮아요. 나도 돈 많고요. 후원도 찾아볼께요’라고 말했죠.

백종환: 이제 소년원뿐만 아니라 일반인 대상으로 범위도 넓혀가고 있죠?

강원래: 우리가 넓히려고 그랬던 건 아니에요. 소년원에서 보다가 법무부를 통해서 ‘재밌으니까 기업 신입사원 모임이 있을 때, 그런 교육 있을 때 한번 해봐라’라고 해서 기업에서도 한두 번 정도 한 일이 있었죠. 결정타가 이마트에요. 부사장이 보고 ‘너무 좋다,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제안이 왔어요. 이마트에서 무료 공연을 할 테니 공연을 해달라고 해서 하게 됐죠. 그러다보니까 우리도 욕심이 생기는 거고, 소설을 만들었고, 앞으로 뮤지컬 만들고 영화까지 만들 준비를 하고 있죠.

백종환: 뮤지컬과 영화, 이 부분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나요?

강원래: 뮤지컬은 제가 재작년부터 굉장히 많이 보러 다녔어요. 장애를 소재로 한 뮤지컬, 혹시라도 장애인이 나오는 뮤지컬은 거의 다 봤어요. ‘노트르담 드 파리’까지 봤어요. 장애에 대한 얘기는 아니지만….

제가 눈 여겨 보고 있는 뮤지컬 연출가가 있어요. 아직까지 접촉은 안됐는데, 프랑스에 가 있다고 해서. ‘빨래’라는 뮤지컬로 한국뮤지컬대상 작사극본상을 받았고, 최근 ‘젊음의 행진’을 연출했어요. 바로 추민주라는 연출가인데, 내가 직접 찾아갈 거예요. 그 다음에 송승환 선배님에게 찾아가서 ‘이런 아이템이 있는데, 다 가져가라! 대신 이 뮤지컬만큼은 유명하게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라고 제안할 거예요. 고정욱 작가한테 했던 것과 똑같이 할 거예요. 그렇게 해서 뮤지컬도 만들 생각이고요.

스토리를 조금 얘기를 하자면 꿍따리 유랑단이 주인공이 아니에요. 소년원생들이 주인공이에요. 이 친구들의 꿈은 댄서, 가수에요. 그런데 JYP 갔다가 떨어지고, SM 갔다가 떨어져요. 왜 떨어지느냐면 소년원 출신이기 때문에, 말썽꾸러기이기 때문에, 학벌이 모자라기 때문에, 얼굴에 흉터가 있고 팔에 문신이 있고…. 소년원 출신 3명이 주인공인데, 그 중에 한명의 엄마가 지적장애인이에요. 엄마를 따라 갔다가 꿍따리 유랑단 공연을 보게 되죠. 무대는 서고 싶지, 무시는 당하지. 그래서 꿍따리 유랑단 오디션을 보러가서 장애인인 척을 하죠. 휠체어 타고, 안 들리는 척 하고, 지적 장애인인척 완전히 연기를 하는 것이죠. 자기 엄마를 흉내 내면서. 그 친구들이 꿍따리 유랑단에 합격하면서 벌어진 일들이에요. 예를 들어서 에이블뉴스 기자가 ‘저 친구들을 어디서 봤는데, 어디서 봤더라. 옛날에 SM에서 봤던 거 같은데…’, 그러면서 기사를 쓰는 거예요. ‘강원래는 사기꾼, 가짜 장애인을 모아서 나라 돈을 타먹으려고 공연한다!’ 사실은 그게 아닌데…. 그 친구들과 우리들하고 엮어지면서 생기는 스토리, 그리고 주인공들이 나중에 반성을 하면서 눈물로서 마지막 무대에 서고 많은 사람들에게 기립 박수를 받죠, 에이블뉴스에서도 박수를 치죠.

장애가 다른 것이 아니다. 사람들한테 소외당하는 것, 그런 것에 대한 주제로 뮤지컬을 만들 생각이에요. 영화는 그런 걸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생각하고 있어요. 영화는 어느 정도 오케이가 됐어요.

백종환: 지금 펀드가 굉장히 작잖아요. 기업체 같은데 한번 제안을 해보지 않았나요?

강원래: 저희가 준비가 되면요. 준비가 되고 스토리가 만들어지면…. 어느 정도의 실적을 쌓은 다음에 들고 가야지, 처음부터 아이템 하나 들고 가서는 안 되죠. 제 콤플렉스인지 모르겠지만 무시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있어요. 앵벌이를 하려고 하나 이런 식으로. 저도 그런 팀을 많이 봤거든요.

강원래씨가 지난 24일 에이블뉴스 사무실에서 백종환 대표이사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에이블뉴스

*꿍따리 유랑단 강원래 단장의 이슈와 사람들 인터뷰 다음 편을 기대해주세요. 클론의 차기 앨범 소식부터 장애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까지 솔직담백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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