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제삼열씨.ⓒ에이블뉴스

무작정 국어가 좋아 ‘국어선생님’을 꿈꿨다. 점자가 없는 한자를 일일이 음성을 통해 자료를 읽었고, 스트레스로 인해 눈 수술을 2번이나 받았다. 그렇게 3번의 도전 끝에 합격한 임용시험이었지만, 시각장애인인 그는 차라리 꿈을 내려놓고만 싶다.

지난 2월5일 2014년도 중등임용시험 최종 결과가 나온 날, 제삼열(30세, 시각장애1급)씨는 컴퓨터 앞에서 자신의 합격소식에 가족들과 부둥켜 안았다. 그동안의 노력이 빛을 보는 듯 했다.

선천적으로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난 제씨는 국어가 좋아서 지난 2004년 대구대학교 국어교육과에 입학한 이후, 임용시험에 도전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인 그에게 임용시험 도전은 너무나 힘겨웠다. 책을 보지 못하는 그로써 파일을 구하고 싶었지만, 그런 책이 있을 리 만무했다. 점자가 없는 한자를 일일이 음성으로 읽었고, 타자를 쳐서 정리하는 데만 3달이 걸렸다.

그 뿐이 아니었다. 공부 스트레스 때문에 녹내장 수술을 2번이나 거쳤다. 수술 후, ‘포기할까’하며 1년 정도 공부를 내려놓았지만, 다시 책을 잡게 해준 것은 어렸을 때부터 간절했던 국어선생님이 되고자하는 꿈이었다.

그렇게 도전했던 3번째 임용고시. 경기도 지역을 선택한 제씨는 최종 2차 시험결과에 합격했지만, 기쁜 마음 한 켠으로 발령지 관련해서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시각장애1급인 그는 오로지 대중교통으로만 출퇴근을 할 수 있기에, 먼 곳으로 발령되지 않을까해서.

현직에서 일하는 선배 시각장애인 교사들이 ‘발령은 생활 근거지로 배려할테니 걱정 안 해도 될 거다’라는 조언에 조금은 마음을 놓았지만, 참을 수 없어서 바로 교육청 인사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2차 발표가 나자마자 너무 불안해서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어요. 그런데 전화가 안 되는 거예요. 겨우 누군가가 받으면 자기일 아니니까 메모만 전달해주겠다고 하고. 그러다가 지난 10일 겨우 담당자와 통화했는데 30초정도밖에 못했어요. 이미 발령 작업은 끝났고, 생활근거지하고 필기시험 성적으로 발령지를 낼거다라는 대답 뿐이었어요. 장애인이라고 감안을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너무 바쁘다’라는 말 뿐이었고, 그 나마도 끊겼어요.”

인사 담당자의 무뚝뚝한 말투는 제씨를 더욱 불안하게 했다. 특히 ‘자취를 준비해야 할 수도 있다’라는 대답에 제씨는 ‘1급이 어떻게 혼자 자취를 하냐’고 물었지만 담당자는 또 다시 ‘발표가 나는 수요일을 기다려보라’는 말 뿐이었다.

결국 제씨가 우려했던 것이 사실로 돌아왔다. 12일 그가 발령난 곳은 안산교육청. 수서동에 거주하는 제씨가 안산까지 가려면 지하철로 2시간 30분, 버스로는 2번을 갈아타야 하는 너무 먼 지역이다. 시각장애1급으로 운전조차 할 수 없다.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제씨로써는 임대를 포기하고 자취를 선택할 수도 없다.

‘임용시험’이라는 하나의 어려운 벽을 통과했지만 ‘출근시간’이라는 또 다른 벽이 생겨난 것.

“발령지에 장애를 고려했는지, 안했는지 묻지도 못했어요. 이 사실이 두려워서 2차 시험발표가 나자마자 바로 교육청에 전화를 했던 것이지만, 전화도 안됐고. 제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어요. 배려를 했다면 안산보다 가까운 지역도 물론 있었을텐데. 수원정도만 됐어도 이렇게 섭섭하진 않았을 거예요.”

오는 19일 신규교사 배정통지서 수여식을 앞둔 제씨는 지금 상황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장애인을 배려하지 못한 교육청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토로하는 것 뿐. 그는 국민신문고를 통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민원을 넣고 있다.

국민신문고에 제씨가 민원 신청한 글.ⓒ화면캡쳐

‘저는 시각장애1급으로 먼 거리 출퇴근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장애가 있는 저는 발령지가 너무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장애 때문에 어려운 상황을 조금이나마 이해해주시고, 발령지 발표 때 조금이나마 장애를 감안해달라는 저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2시간 넘게 걸리는 곳에 발령을 해주시면 저는 출근을 하지 말라는 의미인가요? 어렵게 공부해 합격한 후라 너무 기뻤는데, 발령지 때문에 너무 속상합니다.’

“이미 발표가 났으니까 또 무슨 방법이 있을까요. 저는 출퇴근 편하자고 이러는 게 아니잖아요. 장애를 감안하라는 법은 없지만, 분명 담당 장학사의 재량이 들어가는 부분인데, 조금만 배려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너무나 커요. 필기시험 커트라인도 10점을 웃돌았는데 아마 비장애인에 비해 더 못 봤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거겠죠. 답답해요. 발령을 취소할 수도 없고.”

한편, 이 같은 사항에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신규임용 발령 관련해서는 일반적으로 장애인을 위한 특별한 배려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담당 장학사의 재량이 들어가는 것도 없고, 선발선정 순위에 따라 결정나는 사항"이라며 "장애인에 대해 발령 순위 혜택이 있다면 장애가 없는 분들에게 항의가 들어오지 않나 싶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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