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1급인 규리씨를 22년간 키우고 있는 최경혜씨.ⓒ에이블뉴스

‘따뜻이 손잡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모님의 사랑에 감사를 전하는 어버이날. 자녀로부터 카네이션을 받고, 뿌듯한 마음으로 직장으로 출근하는 부모들 사이, 조금 낯선 풍경이 있다. 바로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이다.

이들은 카네이션 대신 피켓을 들고 천막이 쳐진 국회 맞은편 이룸센터 앞으로 모여든다. ‘어버이날’ ‘발달장애인법 제정 촉구’ 농성장에서 만난 최경혜씨(51)씨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우리아이들이 지역사회에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외치고 무기한 농성에 들어간 지 벌써 49일. 4개 단체로 구성된 발달장애인법제정추진연대에 속해 있는 최씨도 순번이 돌아오면 아이를 떼어놓고 농성장으로 와 밤을 새곤 한다.

5월8일, 오늘은 어버이날. 남들은 특별한 날이라고 이리저리 선전하지만, 지적장애 1급인 김규리(22)씨를 키우는 경혜씨에겐 특별하지 않은 그저 ‘보통날’일 뿐이다. 이날 경혜씨에겐 꽃 한 송이 들려있지 않았다. ‘어버이날’이라는 말에 그저 씁쓸한 웃음만이 전부였다.

“우리 규리는 ‘어버이날’이라는 것 조차 잘 몰라요. 당연히 꽃도 받아보지 못했구요. 할머니랑 같이 사니까 제가 규리한테 ‘할머니 꽃 달아드려’ 했더니 싫다고 하더라구요. 결국 선물만 전해주는 걸로 대신했죠. 예전에 학교 다닐 때는 선생님이 만들어준거 저한테 달아주긴 했는데, 왜 달아줘야 하는지, 어버이날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죠. 성인이면 좀 알아야 할텐데…”

22살로 올해 ‘예쁜 아가씨’가 된 규리씨. 예쁜 치마를 입고, 연애도 할 나이지만, 그녀는 부모회가 운영하는 ‘꿈더하기지원센터’에 다니며 바리스타 등의 교육을 받고 있다. 발달장애인의 부모라면 누구나 느끼는 것. 경혜씨의 마음도 뜨거워진다.

“발달장애인은 어렸을 때는 그냥 뭐 치료받으면 좀 나아지겠지라는 희망으로 살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는 참 큰 문제예요. 미래가 너무 불투명해요. 비장애인의 경우 어렸을 땐 힘들지만, 커서는 그렇지 않잖아요, 발달장애인은 성인이 되면 돌처럼 더 무거워요. 그러다보니 자괴감도 생기고, 폐쇄적으로 변하게 되고, 너무 힘들어요. 정말.”

지난해 장애계를 발칵 뒤집은 ‘원주 귀래 사랑의 집’ 사건. 최근 열린 증언대회에 참석해 이야기를 들었다던 경혜씨는 “남 일 같지 않다”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우리아이도 언제든지 그런 시설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시설에 있는 지적장애인을 보면 비장애인들은 ‘엄마가 아이를 버렸구나’ 라는 생각을 먼저 하는 거 같아요. 그게 아니예요. 잠깐 한 눈을 파는 사이에도 없어지는 게 우리 아이들이에요. 잃어버리면 들어가는 게 시설이구요. 그러다보니 사랑의 집 사건이 남 일 같지 않아요. 우리 아이 손을 잠깐이라도 놓치면 언제든지 그런 시설로 들어가 인권 침해를 당할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프고, 짠해요.”

아이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지는 경혜씨. 최근에는 그런 아찔한 경험도 당했다. 30분이면 돌아와야할 아이가 돌아오지 않아 지옥을 경험했다는 것.

“아이가 센터가 끝나면 혼자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는데 30분이 걸려요. 그런데 어느날은 4시간이 되도록 오질 않는거예요. 눈이 핑 돌아서 119,112 든 다 신고를 하고 아이를 찾으러 다녔죠. 그런데 4시간 반이 돼서야 아이가 돌아왔어요. 혼자 지하철을 타고 빙빙 돈 거예요. 그렇게 잘 찾아와서 너무 다행이죠. 잘 못됐을 땐 생각하기도 싫어요.”

몇일새 여름처럼 뜨거워진 날씨에 농성장 천막 안은 사우나를 방불케 했다. 그런 곳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경혜씨는 ‘우리 아이를 위해서라면 할 수 있다’는 묵묵한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순번 마다 돌아오는 농성일에는 아이를 떼놓고 농성장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데, 아이 걱정에 잠도 잘 오지 않는다.

“아이를 떼놓고 오면 걱정이 많이돼요. 그런데 뭐 우리 규리는 엄마가 왜 가는지도 잘 모르니까. 그런걸 보면 참 안타깝지만, 규리를 보며 힘을 내게 되요. 부모들도 다 똑같은 마음일 거예요. 엄마가 강해야죠. 오죽하면 장애부모들이 이렇게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겠어요. 대중들은 물론, 정부가 많이 알아줬음 좋겠어요.”

농성장 풍경.ⓒ에이블뉴스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서의 ‘발달장애인법 제정 촉구’ 천막농성은 8일 현재 49일째를 맞고 있다. ⓒ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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