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열린 '2016제주국제철인3종경기대회'에 참가한 서정국씨. 서정국씨가 사이클을 타고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서정국

1996년 7월. 장애인선수로는 최초로 철인3종경기 풀코스를 완주한 서정국(42세·지체 4급)씨는 이날을 잊지 못한다. 운동을 좋아하고 꿈 많던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불행은 소리 없이 다가왔다. 강원도 철원에서 군복무를 하던 중 비무장지대 작전 수행에 나서 지뢰사고를 당한 것. 이 사고로 다리를 절단했고 얼굴 안면에는 지뢰파편이 박혔다. 광대뼈가 부서졌고 2개월 간 중환자실의 신세를 져야만했다.

담당을 했던 군의관은 그의 부모에게 아들을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한다면서 장례절차 수속을 밟을 것을 권했다. 하지만 기적같이 의식을 회복했고,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막상 정신을 차려보니 몸이 불편했다. 그의 다리는 절단돼 있었고 얼굴은 상처투성이였다. 충격은 너무나도 컸다. 고등학교 내내 유도선수로 경북도 대표를 하는 등 활동적인 성격이었던 그였기에 '장애인의 삶'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군 복무 중인 서정국씨. ⓒ서정국

"처음에는 장애를 받아들인 줄 알았습니다. 군병원에는 저보다 몸 상태가 안좋은 사람들만이 있었기 때문이죠. 병원에서는 휠체어를 타고다니면 밀어주는 사람, 불편함을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회에 나오고 장애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병원 밖 사회는 적응하기 힘든 곳이었다. 아직은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한 1997년. 특히나 상처가 많은 얼굴을 보이기 싫었던 그는 낮에는 PC방에서 게임을 하며 밤을 보냈고, 낮에는 잠을 잤다. 그렇게 2년가량을 허송세월로 시간을 보냈다.

75kg 수준을 유지하던 몸무게는 100kg이상까지 불어났고 몸이 무거워지다 보니 외부활동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자신을 돌봐준 할머니와 부모님, 친구들을 생각했지만 방황을 끝내기는 여간 쉬운 게 아니었다.

그러던 중 문득 앞날을 생각하게 됐다. 나이는 들어가고 결혼도 해야 했지만 방황 끝에 남겨진 것은 불어난 몸무게 밖에 없었다. 마음을 다잡은 그는 다시 학교에 복학하고, 졸업을 했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등 또 다시 방황의 수렁으로 빠졌다. 그러던 2002년 인생에 큰 전환점을 가져다 준 일이 벌어졌다.

제32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수영종목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서정국씨가 시상대에서 기념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정국

"당시 제가 졸업했을 때 장애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제한돼 있었습니다. 또 다시 방황의 길로 들어섰죠. 그러던 중 평소 알고 지내던 대구보훈병원의 한 관계자분이 수영을 배워볼 것을 권유했습니다."

수영은 그에게 큰 성취감을 가져다 줬다. 입문한 지 1년이 됐을 무렵 출전한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수영을 하면서 100kg을 넘나들던 몸무게는 85Kg까지 줄었다.

대구광역시 수영선수 대표로 4년간, 이후에는 경상북도 대표로 10년간 활동하는 동안 금메달 5개, 은메달 8개, 동메달 5개를 따내기도 했다.

2013년에는 철인3종경기에 입문하게 됐다. 2012년 경북장애인체육회 우수선수 시상식 차 경북지역을 방문한 철인3종경기 이준하 선수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됐다.

철인3종경기는 수영, 사이클, 마라톤을 휴식 없이 연이어 실시하는 경기다. 197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이래 전 세계에서 수많은 동호인이 참여하는 인기 스포츠 종목으로 극한의 인내심과 체력을 요구한다.

철인3종경기에 관심이 있던 그는 이준하 선수에게 운동방법과 경기규칙 등에 대해 꼼꼼히 물어봤다. 이준하 선수는 선배로서 자세한 설명과 함께 자신이 소속된 대구수성철인클럽을 추천해 줬다.

그는 수영은 자신 있었지만 사이클과 마라톤은 해본 적이 없어 당장 출전을 생각할 수 없었다. 당시 체중감량을 위해 걷기 운동을 하고 있는 상황으로 100m도 걷는 게 힘들었고 뛰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앉으면 눕고 싶고, 누으면 자고 싶은 게 사람입니다. 저는 100m, 200m을 걷고 점점 늘어나니까 뛰고 싶더군요. 결국 노력 끝에 뛸 수 있게 됐습니다. 철인3종경기에 참가할 수 있는 몸이 만들어지고 있었죠."

지난해 8월 필리핀에서 열린 철인3종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3위에 오른 서정국씨. 시상대 맨 오른쪽에 서정국씨가 서 기념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정국

그렇다고 조바심은 내지 않았다. 철인3종경기 클럽에서 사이클을 배우면서 차근차근 준비했다. 1주일 동안 꾸준히 수영과 마라톤 사이클에 각각 시간을 배분하고 연습을 했다.

그렇게 2013년 6월 열린 경주에서 열린 철인3종경기 장애인부경기에 참여했고 4위에 입상했다. 뛰는 용도의 의족이 아닌 걷기용 의족을 찬 채 이뤄낸 성과여서 성취감은 더욱 남달랐다. 성취감은 또 다른 목표를 세우는데 원동력이 됐다.

철인3종 경기대회 4위 입상은 입소문을 타고 대구보훈병원에까지 들어갔다. 이 병원은 그가 철인3종경기에 원활히 참가할 수 있도록 조깅정도를 할 수 있는 의족을 지원했다. 이 것이 끝이 아니었다. 2014년에는 에이블복지재단에서 육상선수가 쓰는 선수용 의족과 고가의 사이클을 지원받았다.

좋은 장비가 갖춰지자 기록은 더욱 좋아졌다. 2014년 6월 22일 열린 문화체육관광부장관배 장애인 철인3종경기 선수권대회 출전한 그는 1시간 20분 29초로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1위에 입상했다. 여러경기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국가대표로 발탁, 지난 2015년 8월 필리핀에서 열린 장애인 철인3종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3위를 거머쥐었다.

지난 10일 열린 '2016제주국제철인3종경기대회'에 참가한 서정국씨(사진 맨 오른쪽). ⓒ'2016제주국제철인3종경기대회 조직위원회

특히 지난 7월 10일 제주도에서 열린 '2016제주국제철인3종경기'에서는 장애인선수로는 최초로 철인3종경기 풀코스를 완주하기도 했다. 경기 내내 조깅용 의족을 끼고 진통제를 먹으면서 이뤄낸 쾌거다. 풀코스는 수영 3.8km, 사이클180km, 마라톤 42.195km로 진행된다.

"풀코스를 준비하면서 하루에 15km정도를 뛰었습니다. 최고로 뛰어본 것도 27km 정도 뿐 입니다. 전 풀코스인 42.195km를 뛰어 본 적도 없이 대회에 출전했습니다."

풀코스에 임하는 내내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떨쳐내게 한 것은 중국의 유통기업 알리바바 마윈 회장의 "가장 큰 실수는 포기하는 것"이라는 글귀였다. 마음 먹은 일은 끝까지 해내는 성격도 큰 도움이 됐다.

그는 장애인 최초 풀코스 완주라는 도전목표를 달성했다. 하지만 여전히 도전을 갈구하고 있으며 벌써 사이클지도자 자격증 취득을 준비하고 있다. 사이클지도자 자격증까지 취득하게 되면 운동을 시작하고 획득한 자격증은 12개가 된다.

특히 국가대표로 발탁돼 철인3종경기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겠다는 도전의지도 내비췄다. 국내 철인3종 경기에서 해볼 수 있는 것은 다 해봤기 때문이다.

"제가 운동을 시작한 것은 건강을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신체조건을 갖고 조금씩 나아가니까 저 자신한테도 대견하더군요. 성취감은 물론이고요. 제 몸이 허락하는 때 까지 도전하고 기회가 된다면 세계선수권대회에도 출전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여건이 된다면 철인3종경기에 관심을 갖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노하우도 전수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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